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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Nov 20. 2018

25. 편의점 알바 김씨의 '멘탈 관리'

아무 것도 아닌 데에 화가 나는 날엔 이렇게 합니다.


계산대 앞에서 핸드백을 뒤적거리며 지갑을 찾는 손님의 행동이 유난히도 답답하게 느껴지고,


평소라면 별 것도 아니게 넘겨버렸을 손님의 말에 내 온 신경이 곤두서버리는, 그런 날이 종종 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뭐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던 일이었기에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었지?" 하며 혼자 머쓱해지는, 그런 날. 아마 다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셨으리라.







서비스 업계 일이 잔혹한 것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손님에게 '최소한의 친절'이라는 것은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든, 컨디션이 바닥이라 입꼬리조차 올리기 힘든 날이든, 심지어 제대로 진상인 양반들 앞에서조차. 친절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어쩔 수 없지만 친절해야 하는' 순간들은 반드시 찾아온다. (물론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우리네 생활 속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곤 하는 일이다)


워낙 갈등 자체를 유발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성격 덕에 지금껏 큰 문제 없이 일을 해온 필자이지만, 실제로 이런 경우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도 하고, 자칫 별 이유 없이 손님과 부딛히는 일이 앞으로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왜 괜히 별 것도 아닌 걸로 손님에게 화가 난 걸까?

어떻게 이런 상황을 대처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 따라 일이 너무 바빠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저녁을 먹기 시작했는데, 이 놈의 일이 어찌나 바쁜지, 그 늦은 시간에 한 술 뜰라치면 손님이 오시고, 한 술 뜰라치면 또 손님이 오시는 것이 아닌가?





하... 이거 미치겠네...

점장님 오시기 전에 빨리 먹고 치워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11시 반 경에 점장님이 오시면 눈치가 많이 보이기에, 얼른 먹고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 때, 나이드신 손님께서 카운터로 오신다. 그런데 이 손님...

어마어마하게....












.












물건을 내려놓으시는 손이,

지갑을 꺼내시는 파들파들 떨리는 손이,


어쩜 이렇게 느리실 수가....







후.... 저걸 내가 대신 해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미치겠구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수록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시간은 더욱 더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이 자연불변의 법칙.


게다가 꺼내신 지폐마저 꼬깃꼬깃. 구겨지고 접혀 펴고 하는데 드는 시간과 수고가 머릿 속에 스치는데 거기에서 또 스트레스가...







그렇게 힘겨운 계산을 마치고 의자에 털썩,

앉아서 밥을 한 숟갈 떠 입에 탁! 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방금 저 분이 나한테 정확히 뭘 잘못하신 거지...?'




자... 그 손님의 행동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자.




1.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고,

2. 느린 손으로 주섬주섬 지갑을 찾아서,

3. 꼬깃꼬깃 접힌 지폐로 계산을 하셨다.



음... 

1)느린 손, 2)꼬깃꼬깃 접힌 지폐 정도가 그 분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힘이 부족해 움직임이 느리신 것은 뭐 그 분이 잘못하신 것이 사실 아니고, 지폐야 내가 펴면 되는 것이니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잘못하신 게... 딱히 없는데....? 그럼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었던 거지...? 설마....?!'





그렇다.






밥. 밥이 문제였다.






점장님이 오시기 전에 어서 먹고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나머지, 죄 없는 손님에게 불쑥 화가 나버린 것이다.





허허 이것 참... 민망하기 그지 없구만...


웃을 일이 아니다 사실. 이 얼마나 어리디 어린 생각이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내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형체도 없는 화를 냈으며, 또 실제로 기분 나쁘게 만들고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더더욱 무안해지고, 급기야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지금껏 일하면서는 문제는 크게 없었다지만, 앞으로 나의 이런 태도가 작은 불화에서부터 큰 문제로까지 불거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엄연히 성인으로서 반성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하며 쉬이 넘길 일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그 덕이라고 해야할지 그 날 이후로는,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과 마주하게 되거나, 손님을 대하며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경우에는 항상 나의 안 좋은 기분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하려 노력하게 된 것 같다(바빠서 당장 생각이 나지 않으면 계산이 끝난 이후에라도). 

확실한 것은 이런 식으로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을 하면, 그리고 하다못해 이렇게 하려는 시도라도 하는 것이 내 멘탈을 다스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혹시나 내 실수로 인해 생길지도 모를 갈등 예방에 효과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예정이다. 물론 진상들에게까지 내 기분이 나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화를 내가며 일을 하는 것은 나나 손님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으므로.








음... 글이 조금 조잡스러워졌지만 오늘의 결론은 결국 두 가지이다.




1. 이유를 막론하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에는 그 화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2. 밥은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두고 먹자.




(라고 해놓고 11시 넘어서 식사 중)




"웁웁.... 어 즘증늠 으그 그그 으느그... 읍읍...."











.... 사랑합니다 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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