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소속이 어딘가? 저는 주방입니다만

메인 사람과 소속된 사람의 차이

by 아는이모


알람이 울린다. 오전 5시 50분 알람을 해제한다. 뻑뻑한 눈을 게슴츠레 떠본다. 손을 뻗어 안경을 찾는다. 찾은 안경을 일단 정수리 위에 가져다 놓는다. 다시 잠을 청한다.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달콤한 건 늘 쏜살같이 끝난다. 그새 20분이 지났다. 뻑뻑한 눈에 힘을 줘본다. 아까보다는 수월하다. 안경을 쓰고 뭐에 홀린 듯 주방으로 간다. 밥솥 뚜껑을 열어본다. 밥솥 안 내 솥이 보이지 않는다. 싱크대 위에 내 솥이 엎어져 있다. 그 옆으로 크고 작은 냄비가 숨 막히게 엎어져 있다. 저녁 설거지를 야무지게 한 남편의 짓이다. 공기가 통해야 물기가 마른다는 사실을 그는 정녕 모르는 걸까?


내 솥을 흐르는 물로 헹구고 쌀통 앞으로 가져간다. 10킬로 쌀통의 쌀이 무섭게 줄어들고 있다. 아침을 먹을 때 저녁 메뉴를 물어보는 열 살 아들의 식욕이 이바지한 결과다. 쌀과 보리쌀을 섞어 여섯 컵을 채워 붓는다. 쌀을 내 솥에 바로 씻지 말라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르침을 가뿐히 무시하고 물을 받는다. 쌀 사이로 손을 넣어 오른쪽으로 다섯 바퀴 돌린다. 뽀얗게 일어나는 물을 비워내고 다시 물을 받으며, 왼쪽으로 여덟 바퀴 정도를 더 돌린다. 어디서 주워들은 쌀뜨물에 효능 덕분에 대강 씻어도 마음이 찝찝하지 않다. 취사 버튼을 누른다. 밥솥 액정 화면이 네모를 그리며 깜빡인다.


두 아이를 차례로 깨운다. 첫째와 둘째의 살결과 정수리 냄새가 갈수록 달라진다. 자기 얼굴만 한 새집을 머리에 인 첫째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침대 모서리에 아슬하게 걸려 잠든 둘째가 밥솥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인다. 계란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세 남자의 취향을 고려해 아침 메뉴를 생각한다.


계란프라이, 간장계란밥, 계란야채볶음밥, 계란찜, 계란만둣국......


갓 지은 밥으로는 간장계란밥이 딱 이란 생각에 프라이팬을 꺼내 계란 네 알을 터트린다. 가장자리는 빠삭하게 노른자는 물컹하게를 좋아하는 남편과 첫째를 위해 계란 프라이 두 개를 먼저 그릇에 옮겨둔다.


밥솥 액정 위 돌고 있는 네모가 숫자로 바뀌었다.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기까지 14분이 남았다는 신호다. 둘째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나도 들어가 세수를 한다. 물로만 하던 아침 세수 대신 쫀쫀한 거품으로 얼굴 구석구석을 문지르고 혈 자리를 찾아 누른다. 세로로 축 늘어난 모공이 눈에 띄기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쌀보다 얼굴을 더 정성스레 씻는 데 일말의 가책이 줄어든 탓도 있다. 얼굴을 씻는데 시간도 거품도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세 남자를 위한 밥도 기꺼이 차릴 만하다.


스킨과 에센스를 바른 손을 다시 씻고, 행주를 물에 적신다. 식탁을 닦을 때마다 보풀 가득 핀 분홍 행주대신 하얀 거즈 행주로 바꾸길 잘했다고 칭찬한다. 물기가 남아 있는 식탁 위로 수저 네 벌이 놓이면, 때마침 기다리던 소리가 들린다.


‘증기 배출이 시작됩니다. 쉬이-시식-치-익-’


프라이팬에 노른자가 포실하게 익은 계란을 마저 꺼내 둘째와 내 그릇에 옮겨 담는다. 밥솥 액정 글자가 취사에서 보온으로 넘어가면 뚜껑을 열어 주걱으로 밥을 뒤적거린다. 네 개의 그릇에 비슷하게 밥을 담은 후 씻은 쪽파를 가늘게 잘라 넣고 들기름을 두르고 깨소금을 뿌린다. 꽈리고추 장조림이 들어있는 반찬통을 열어보고 찰랑거리는 간장 물을 확인하고 네 개의 그릇에 차례로 두른다.


‘참, 김가루도 남은 게 있었지.’


서랍을 열어 애매하게 남은 김 가루를 두 아들의 그릇에 나란히 뿌려준다. 운동을 마친 남편이 욕실에서 나와 식탁에 앉으면, 옷을 갈아입은 두 아들이 덩달아 자리에 앉는다. 각자의 자리에 간장계란밥이 놓이면, ‘잘 먹겠습니다.’란 인사를 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접시에 김치를 덜어놓고 나면, 둘째가 나에게 그릇을 내민다.


“엄마, 비벼주세요.”


열 살 꼬마는 밥을 비벼달라고 할 때 자신이 막내임을 확인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부탁은 유효기간이 있는 걸 알기에 밥알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정성껏 비빈다.


“내 밥엔 왜 김가루가 없어?”


다 큰 어른의 투정을 가뿐히 모른 척하고 쪽파도 깨도 뿌리다 만, 비비지 못한 내 그릇의 밥을 보여준다. 세 남자가 각자의 사회로 향하면, 먹다 남은 김치와 남은 밥을 비빈다. 입안에서 터지는 밥알, 젓갈에 빠진 고춧가루, 잇몸에 달라붙는 깨를 느끼며 오물오물 입을 움직인다. 마지막 밥숟갈을 내려놓으면, 나의 쓰기 생활도 비로소 시작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 일상의 최우선이 되었다. 주방에 발이 묶인 채 눈물로 쌀을 씻고 행주를 던지며 마음도 그곳에 묶어버렸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들을 위해 주방을 기웃거리던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나의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도 이런 시절을 통과했을 거란 걸.

매일 똑같은 하루의 시작, 셋을 먹이고 나를 먹이는 일의 의미를 곱씹는다. 각자의 고된 사회를 마무리하고 먹는 밥 한 숟갈의 저력을, 손수 지은 밥이 또 다른 내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힘의 원천이라 믿는다. 매일 같이 주방에서 작고 크게 세상에 기여할 방법을 찾는다. 메인 사람과 소속된 사람의 차이라면 차이일 테다.


묶여있는 사람에서 소속된 사람이 된 후로 똑같은 일을 하는 수고가 좀 더 편안해졌다. 묶여있을 땐 몰랐다. 그들을 위한 일이 곧 나를 위한 일이었다는 걸. 나만을 위한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반복되는 일의 의미를 찾는 게 곪아가지 않는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어쨌거나 현재의 난 소속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설거지를 끝내고 냉동실을 여니, 급속냉동고 안 음쓰(음식물쓰레기 준말)가 벌써 가득이다. 수없이 비우고 채우는 건 쌀통뿐만은 아니리. 주방을 책임지는 나의 의식도 비우고 채우며, 익어가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음쓰 걱정 없는 고기와 쌈을 준비해야겠다.


벌써부터 둘째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야? 김치도 구워줄 거지?”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 <살림 생활자의 글쓰기 생활>은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쓰고 있습니다. @단미 @Jina가다 @치유의 하루 @미칼라책방 작가님들의 매거진도 방문해 보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