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하나로 묶인다. 난 화가 나면 청소기를 돌려야 하고, 핸디 청소기가 없으면 꼼짝을 못 한다. (분명히 말해두자면, 내 기준에서의 깔끔함으로 청결을 유지 중이다) 답답한 마음이 불쑥불쑥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청소기를 찾는다. 어쩌면 난 청소기에 의존하며 하루를 보내는 건지 모르겠다. 왜 이런 몹쓸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추측하건대 나를 존재하게 한 두 여인의 탓이 크다. 그 사연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말해볼까 한다.
나의 할머니, 김오연 여사는 빨래 비누와 락스를 사랑했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빛바랜 목욕 의자에 앉아 항상 무언가를 빨았다. 고무 대야에 나무 빨래판을 걸쳐두고 하얀 거품을 묻힌 옷가지와 수건을 사정없이 비벼댔다. 할머니에게 락스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았다. 어디든 찝찝한 무언가가 묻으면 할머니는 락스를 찾았다. 김오연 여사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음에도 하늘색 통 위에 쓰인 '락스'란 글자는 모양으로 구분했다. 글을 몰라 답답한마음도 어쩌면 락스가 깨끗이지워준 건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우리 집 행주와 화장실에는 비슷한 향이 났고, 내가 아끼는 분홍색 팬티는 얼마 못 가 하얀색이 되었다. 다섯 살 아래인 동생이 카펫에 실수라도 하면 할머니는 락스 물 묻힌 솔을 들었다. 거실 카펫은 연보라색이었는데, 할머니의 솔이 지나간 자리마다 무늬가 더해져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엄마는 할머니의 세탁 생활을 존중했다. 할머니가 거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면, 엄마는 소리 없이 먼지떨이를 들었다. 종종 제 기능을 상실해 훈계를 가장한 위협적인 도구로 변했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먼지떨이의 몫이 크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할머니의 기억이 선명한 집은 난방기능이 미흡한 오래된 주택이었다. 두꺼운 커튼이 방마다 천장에 매달려 있었고, (그 시절 뽁뽁이는 없었다)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커튼의 먼지를 털어냈다. 외풍을 막아주는 고마운 커튼을 사정없이 때리는 엄마가 난 가끔 무서웠다. 커튼에게 화풀이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건, 버틸 수 없는 삶을 건너온 여자에 대한 존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괴팍한 시어머니와 무정한 남편 사이에서 장애를 지닌 아이를 돌보며 직장생활을 한 엄마. 감히 내가 넘볼 수 없는 삶을 산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고 보면 청소기가 있는데 비질을 하는 엄마와 세탁기가 있는데 손빨래를 하는 할머니는 은근히 닮은 점이 많았다. 묵은 때를 빨고 문지르고, 털고 쓸며 모든 날을 견뎠다. 손가락과 손목으로 허리와 무릎으로 헌 것을 새것처럼 만들며, 지저분하고 더러워진 마음과 화해를 했다.
그녀들에게 빨랫비누와 락스 그리고 먼지떨이와 빗자루가 있었다면, 지금 나에게는 다이슨 청소기가 있다.
이슬아 작가가 말하길, 청소란 우리에게 공간의 미래를 선사하는 노동이라 했다. 하지만 나에게 공간의 미래는 치킨을 시키면 따라오는 무처럼 부수적인 것이다. 어디까지나 청소는 나를 위한 노동이기에. 기꺼이 하는 의식적인 행위인 것이 맞겠다. 어질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싶을 땐 창문을 열고 청소할 준비를 한다. 머리카락 한 올이 내 눈을 괴롭힐 때도, 지우개 똥이 발바닥을 간지럽힐 때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온갖 것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청소기가 지나다닐 면적을 확보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공간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백 위 ‘윙’ 소리가 더해지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깨끗한 바닥을 볼 때면 뭐든 할 용기가 생긴다. 건조기 안 방치된 빨래를 꺼내올 여력도, 싱크대 잠수 중인 그릇에 손을 댈 의욕도 생긴다.
강력한 흡입력, 높은 필터의 효율을 지닌 다이슨 청소기는 콘센트 구멍으로 받은 기운을 나에게도 나눠준다. 여러모로 혜자롭고 기특한 녀석이다. 삶의 태도 또한 녀석에게 배우려는 중이다. 높은 천장도 가볍게, 단단한 바닥은 부드럽게, 들러붙은 먼지는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청소기처럼만 산다면. 낮은 곳을 쉽게 보지 않고, 높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힘을 주지 않고 살아낼 방법을 청소기를 돌리며 생각해 봐야겠다.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먼지들과 화해를 하며. 나의 할머니, 그리고 엄마가 그랬듯이 말이다.
* 이 글은 다이슨 제품협찬 광고 그런 거와는 무관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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