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현관, 아래위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신발을 신는다. 볼록한 가방을 메고 영혼 없이 “다녀오겠습니다.”란 말을 남기고 밖을 나선다.
잔소리 폭탄으로 시작한 아침을 보낸 날이면, 그 아이는 다녀오겠다는 말 대신“안녕히 계세요.”란 말을 하고 떠난다.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들은 날은, 마음이 심란하고 유독 안녕하지 못하다. 자식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엄마가 된 것만 같아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내 눈을 피하는 사춘기 아들과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아서.
그럴 땐 알아주는 이 없는 애를 쓰며 사는 세상 어미들을 생각한다. 이 또한 풍경처럼 지나가리란 희망을 품고 현관을 돌아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때, 현관 앞에만 서면 난 종종 쓸쓸해졌다. 둘째를 안고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할 때면 남모르는 질투가 차올랐고, 누런 코가 줄줄 나오는 두 아들을 두고 돈을 벌러 나갈 때면 묘한 해방감이 따라왔다.
질투심도 해방감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던 날. 현관 바닥에 짝 잃은 신발 한 짝을 볼 때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뒤집어진 신발 한 짝만도 못해 보였다. 가지런히 모으지 못한 마음이 어디로 튈지 몰라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바라던 어른의 모습과 멀어져만 갔다.
걷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혼자 자주 걸었다. 혼자 걷다 우는 이상한 아줌마로 변한 내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글을 쓰는 행운. 무언가 쓸 때만큼은 괜찮은 내가 된다는 기분이 나를 계속 쓰게 만들었다. 깜빡이는 커서와 친해지자, 이상하리만큼 현관을 드나드는 마음도 가벼워졌다.
뒹굴던 신발 한 짝을 발로 차지 않고, 짝을 찾아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떠났다가도,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으로 집을 들어섰다.
더 이상 현관은 나에게 눈치를 주지도, 나를 구속하지도 않았다. 탈출과 해방, 그리고 안정과 평온이 서로 어색하지 않게 나를 길들였다.
돌봐야 하는 집이란 장소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긴 하다. 부탁할 수도, 시킬 수 없는 자잘한 일들이 결국은 내 몫이 될 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를테면, 베란다 하수구에 끼인 빨래 먼지라든가, 현관 구석에 질식 중인 머리카락이라든지, 신발장 안 쌓인 모래라든지. 이런 작고 가벼운 것들이 똘똘 뭉쳐 뚫어지게 날 쳐다보고 있으면 아직도 난 숨이 덜컥 막힌다.
어쩔 수 없이 청소기와 크고 작은 솔을 번갈아들고 집 안 곳곳을 누빈다. 작고 가벼운 것들은 유난히 좁고 깊숙한 곳에 모여있다. 허리를 숙이고 구석구석 쌓인 먼지 뭉치를 찾아 모은다.
낑낑거리다 숨이 차면 접힌 허리를 펼치러 나만의 피신처이자 대피소 베란다를 찾는다. 창문을 열고 목을 뒤고 젖힌다. 그리고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기지개를 편다. 작은 공간은 금세 괴성으로 가득 찬다.
‘크 아아아아-’
베란다 방충망 너머로 바깥세상을 힐끗 쳐다본다. 하늘 위 구름은 무사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고, 가냘픈 나무도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구름과 나무에게 뭔가 모를 위로를 받고 나면, 덜컥 막혔던 숨이 싱숭생숭한 마음과 함께 부풀어 오른다. 삶에서 노동에서 여러모로 멀어진 기분이 들면 걸레에 물을 묻힌다.
빨지 않고 방치 중이었던 걸레에 빨래 비누를 문지른다. 또 할머니가 생각난다. 빨래 더미에서 식초냄새가 나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쉰내는 신 것으로 잡는다는 신념으로 누런 식초를 세탁기에 붓는다. 그러고 보니 식초는 싱크대에서도 제 몫을 다한다. 첫째가 좋아하는 오이 양파 장아찌에도 투입되지만, 스텐용품의 위생을 책임지며, 때로는 하수구에 뿌려진다. 식초의 쓰임을 생각하다 덩달아 물티슈의 쓰임도 생각한다.
물티슈는 모름지기 보풀이 일어날 때까지 헹구고 다시 써야 마땅하다. 물티슈 한 장은 현관 바닥과 베란다 창틀, 방충망과 청소기 주둥이를 닦고 나서야 최후를 맞이한다.
식초를 붓다 물티슈의 최후를 생각하다 내 삶의 최후도 생각해 본다. 물티슈만큼이나 쓰임이 많은 삶을 살다 갈 것인가. 보풀을 가득 품은 채 닳고 닳을 정도로 무엇을 열심히 하다 저물 수 있을까. 다녀오겠다는 인사 대신,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날 수 있을까.
여하튼 많이 웃고 재밌게 살고 볼 일이다. 흔쾌히 작고 가벼운 것들의 뭉치를 치워가며, 지나가는 구름과 흔들리는 나무를 눈으로 가득 담아볼 것이다.
매거진 <살림 생활자의 글쓰기 생활>은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쓰고 있습니다. @단미 @Jina가다@치유의 하루@미칼라책방 작가님들의 매거진도 방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