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굳고 엉킬 때마다 글을 쓴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

by 아는이모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은 시시 때때 충동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내가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게 못할 짓 같았으니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에는 묘한 죄의식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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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죄의식,

애써 무시했던 나의 의식이다. 뱃속에 다른 생명이 자리 잡는 순간부터 벅참과 묘한 죄의식이 공존했다. '나 때문에 혹시...' 란 물음은 시시때때로 엄마란 존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엄마'로만 살기에 한 여자의 인생은 충분하지 않았고, 행복할 수도 없었다.




'이 감정의 정체가 뭘까?'

지치고 복받치는 마음을 집중 탐문했다.

글을 쓰면서 여자, 엄마, 노동자라는

집합 명사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고

김지영이라는 고유명사로서의 삶을

지켜내고자 버둥거렸다.

...

네모난 수영장에서 눈부신 바다로

나아간 이십 대,

나에게 글쓰기는 곧 안간힘 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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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아'라는 고유명사를 찾아보려 10년을 버텼다.

삶이 굳고 마음이 엉킬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내 안의 울컥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솟구치는 무언가'를 어떻게 써내야 할지가

다음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니까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언어, 다른 지식, 다른 관점이 필요했다.


세상의 말들은 오염되어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앞날이 결정된다는 둥 몇 살에 해야 하는 몇 가지라는 둥 존재를 옥죄는 책들이 버젓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부모의 재력, 학벌, 계급에 따라 아이의 삶을 거래하는 말들의 유통에 화가 났다. 아이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그 시기에 나는 일하느라 가정 통신문에 도장 찍을 시간이 없었고, 아이의 중간고사가 언제인지 잘 알지도 못했다. 괜한 죄의식이 생겼다.


이십 년 된 스무 평 아파트에 짐짝처럼 네 식구가 끼여 살자니 불편했다. 세상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사는 기분이 드는데 이 간당간당한 삶에서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는 광고 문구는 정작 집을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전도시켰다.


하나같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 경쟁과 출세와 소비를 촉구하고 재생산하는 집요한 언어였다. 삶의 가치라는 고귀한 물음을 봉쇄하고 주변에 있는 타인의 삶에 등 돌리게 하는 씁쓸한 말들이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에 대한 통념과 상식은 남들이 만들어 낸 언어로 구성되었다.

세상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는 자들의 언어로는 이 세상의 모순과 불행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미 어떤 가치 체계에 휘말려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을 배려하지 않았음을.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 이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이다. 모든 경험은 언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런데 재테크나 피부 관리에 관심이 없고 자식 명문대 보내기를 삶의 주된 동기로 삼지 않는 나는, 가방에 학원 전단지 파일을 넣고 다니고 휴대전화에 유명 강사의 연락처가 저장된 목동 엄마들과 달리, 등단한 '여류 작가'도 아니면서 감히 일고 쓰는 나는, 아이들 사교육비보다 내 책값과 내 공부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나는, 그냥 한마디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느끼고 꿈꾸고 회의하는 감수성 주체로 살아가는 여자 인간은, 있어도 없는 존재이자 이 시대의 사라지는 종족이었다. 여기 사람 있다, 는 내게도 유효한 외침이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 걸까, 정말 나는 나쁜 엄마인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나를 설명할 말들을 찾고 싶었다. 나를 이해할 언어를 갖고 싶었다. 뒤척임으로 썼다.


쓸 때라야 나로 살 수 있었다.

산다는 것은 언어를 갖는 일이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기억했다.


아이 둘을 낳았을 뿐인데 인생에서 '내'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하면 괜찮은 인생이 될 줄 알았지만 그것 또한 녹록지 않았다.

이상한 내가 평범해야 하는 나와 수없이 충돌했다. 급기야 마음속 전쟁은 나의 공간으로 이어졌다. 갑옷의 무게에 짓눌린 폐로는 들숨과 날숨이 조화롭지 못했다.


그러다 자판을 두드렸다. 갑옷을 벗어던지니 숨구멍이 터졌다.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되었다. 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글로 메아리를 쳤다. 돌고 돈 내 안의 메아리가 글이 되니 무심해졌다. 별거 아닌 것, 지나간 것이 되니 갑옷을 입어도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분명 '쓰는' 일은 쉽지 않다. 남들이 봐줄 만한 글을 쓰는 건 더욱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를 뻔뻔하게 만드는 한 문장이 있다.

'어떠한 인생도 책이 된다.'


쉬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내 마음속 파동이 온몸을 지배하려 들 때, 뭐라도 뱉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을 때 엉킨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 물러 앉아 지켜보고, 나만의 언어로 다듬으며 견딘다.


시간을 견디다 보니 내가 애틋해졌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애틋하게 봐야 할 존재라 외치고 싶었다. 오지랖 떨며 느껴 봐 달라 애원하며 책 쓸 용기를 다지고 다졌다.

시작은 어렵지만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쓰기'의 세계, 삶의 최전선에서 만나도 좋지만

이제는 사소한 일상에서도 만나고 싶다.



아는 이모 블로그 포스팅의 일부를 다듬은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onlykhsaq/222694939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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