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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이모 Apr 14. 2022

종순씨의 파김치

시대의 밑바닥을 갈며 살아낸 그녀


‘고난에 찬 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생애와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던 그들의 작은 몸을 생각했다.

할매은 그 몸을 시대의 밑바닥에 갈면서 살아냈다.’  


- 김훈. 연필로 쓰기 중 -    







칼의 노래로 유명한 김훈의 산문집에서 발견한 글.

그의 글은 날이 서 있다. 그런데 날카롭지만은 않다. ‘할매’라는 단어가 정감 있지만 아픈 것처럼.   


  

종순씨는 나의 시어머니다. ‘할매’라고 부르기에는 그녀의 머리색은 서양 자두(푸룬) 색에 가깝고(그녀는 헤나염색에 꽂혀있다.) 주름은 굵게 몇 가닥 있지만 탄력진 피부를 소유하고 있다.(그녀는 존슨즈 베이비 로션만 바른다.)      


육 남매 중 장녀인 종순씨는 동생들의 끼니를 걱정하다 10살 남짓한 나이에 서울로 돈을 벌러 갔다. 피아노 공장, 미싱 공장을 전전하며 번 돈은 동생들의 식비와 학비로 쓰였다. 배고파서 돈을 벌어야 했던 시대를 산 그녀에게 먹을 것은. 그러니 김치는. 쌀밥과 함께 입으로 삼키는 그냥 반찬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이 지키고 싶은 이들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


그것이 몇십 년간 종순씨를 지배한 노동의 이유였다.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드는 일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받는 일이다. 흡사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상통한다.     

 

따사로운 햇볕이 익숙해질 이맘때면 종순씨에게 전화가 온다.     


“얘야 파김치 담아놨다. 와서 가져가라.”


몇일의 수고로 몇 달의 끼니가 풍성해질 거라는 기대에 허리디스크 중증환자 종순씨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대야 한가득 양념에 질식한 파를 치대며 종순씨는 꼭 나에게 통깨를 뿌리라 한다.


찰찰찰.


갓 볶은 꼬순 통깨가 골고루 뿌려지면 나는 김치통을 마른행주로 닦는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파김치를 덜어 가지런히 김치통에 넣는다. 대가리 방향을 통일해야 집게로 덜었을 때 파가 엉키지 않고 나란히 딸려 나오는 걸 알기에 배열에 신경 쓴다. 남은 양념도 누운 파 사이로 자박하게 밀어 넣는다. 그렇게나 정성스레 담아온 파김치면 뭐하나. 집으로 모셔온 파김치는 푸대접을 당한다.      


'빈 속에 먹으면 속이 아려서, 마스크 안으로 오전 내내 젓갈 냄새가 올라와서 이빨에 잘 끼어서 등...' 파김치를 먹지 않을 이유는 많다.     



원래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나와 달리 남편은 김치와 함께 밥심을 키웠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유독 파김치를 반기지는 않는다. 파김치는 천덕꾸러기다. 김치통이든 글라스락이든 어디에 담겨오든 결국 버려지기 일쑤다.     


아이들도 새콤 시원한 백김치와 양념이 덜 묻은 배추김치의 흰 심지를 좋아한다. 배추로 담근 김치만 잘 먹는다고 몇 해를 걸쳐 강조해도 종순씨는 계절마다 파김치, 우엉김치, 고들빼기, 오그락지,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등을 해서 우리를 부른다.      


뒤늦게 알았다. 그 수많은 김치는 우리를 호출하기 위한 종순씨의 계획적인 핑계였다는 것을. 김치는 빌미로 아들과 손주에게 ‘나’를 보러 와달라는 요구의 표현이었다. 종순씨의 자발적인 ‘희생’을 생색낼 수 있는 수단은 김치가 유일했다.


60이 넘어도 사람에게는 칭찬과 인정, 보상 따위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로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종순씨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해 주기로 했다. 시대의 밑바닥을 갈며 살아낸 종순씨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어머니 맛있어요. 하나도 안 짜요. 이제 거의 다 먹어가요. 이번에는 애들이 그것만 먹네요. 금방 다 먹었어요. 호호호”     


(이번엔 정말 반이나 먹었다.)



마음에 없는 빈 소리를 하면 입 주위가 굳어지며 억양마저 딱딱해지는 나는 이제 연기를 제법 한다. 그녀를 위한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서로 편한 것을 택했을 뿐이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아직도 파김치가 올라온다

고속버스 트렁크를 열 때마다

비닐봉지에 싼 파김치 냄새     

텃밭에서 자라 우북하였지만

소금 몇 줌에 기죽은 파들이

고춧가루를 벌겋게 뒤집어쓰고

가끔 국물을 흘린다     

호남선 터미널에 나가면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못 잊어

젓국에 절여진 뻣뻣한 파들이

파김치 되어 오늘도 올라온다

우리들 어머니 함께     


-강형철의 시 <사랑을 위한 각서 8- 파김치>-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기에 우리는 종종 주말에 김치를 가지러 간다. 3시간이 넘는 거리였다면 종순씨의 파김치도 고속버스를 타고 왔겠지.  


매실이 익기 전 종순씨를 보러 가야겠다. 김치의 가짓수가 더 늘어나 있지 않길. 종순씨의 허리가 성할 때 다녀와야겠다. 그녀를 위한 안티에이징 로션을 사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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