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없다더니 연락 왔네. 두 번째 책 나오는 거야? 이번엔 동화작가로 데뷔하는 거야?"
밤 10시에 메일을 보낸 담당자에게도 내가 느낀 기쁨과 황홀을 나눠야 한다 생각했다. 이십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밀당 없는 담백한 어투로 메일을 보냈다.
'부족한 원고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란 인사와 함께 통화 가능한 시간대를 남기는여유를 부리며.
내년에는 내 책도 여기에 있길
불과 2년 전만 해도 직업란에 '주부'외 다른 것을 적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글을 쓰고 가끔 강의도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기에 '전업 주부'란 타이틀이 내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세 남자의 밥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탈출구는 글쓰기다. '글'을 쓰고 난 이후로 자질구레한 살림에 애정이 생겼다. 책이 세상에 나오고 '작가'라 불러주는 사람이 생겼지만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살림하고 애 키우는 여자'다. 쓰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나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내 자리에 당당해졌다.
태생부터 누군가에게 경제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편이 아니었다. 유능한 남편과 자녀를 내조하는 것보다 나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게 중요했다. 누구에게 기대기보다는 혼자서 알아서 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남한테 기대는 게 지는 거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생겼을 지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대비를 해야 한 단 생각이 강했다. 이기적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들과 남편의 성공보다 난 나의 미래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일까? 늦지 않게 두 번째 책을 쓰고 싶었다. 이왕이면 나만이 쓸 수 있는 책. 술술 읽히는 마법 같은 책, 재미도 있는데 감동도 있는 책, 꼭 내 얘기 같은 책. 메시지가 분명한 책. 표지가 세련된 책......
정체성은 주부인데 마음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다.
'정신 차려, 너 초보 작가잖아!'
그렇다. 입상, 등단 뭐 그런 건 해보지 않았고, 문예창작과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글을 제대로 쓴 기간을 따져보니 3년 정도가 전부다. 백 단위가 넘는 책 쓰기 코칭도 돈이 아까워 받지 않았다.
'쓰고 싶은 사람이 쓰면 되는 거지, 굳이 배워서 책을 써야 하나?'
~출신, ~자격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거스르고 싶어 무모하게 도전했을지도 모른다. 근본 없는 용기의 효력을 오래가지 않았다. 객기가 사라지자 첫 책을 쓸 때만큼 난 다시 쫄보가 되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뭘 써야 할까? 내 글을 누가 읽어줄까?' 이도 저도 아닌 내가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네가 뭐라고 또 책을 써. 사서 고생하지 마. 그냥 놀아. 책 쓴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씁쓸한 유혹에 넘어갔다 돌아오기를 수 십 번,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하나가 나를 붙들었다.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를 한 번 써볼까?'
결코 동화를 얕봐서가 아니었다. 두 아들의 엄마로 쏟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아들에게 수 없이 했던 고해성사를 글로 풀다 보면 더 나은 내가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무얼 쓸까 떠올리는 일상이 하루 이틀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