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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Aug 10. 2021

당신의 삶을 무엇으로 채워졌나요?

아프다고 해도 환자로 정의되지 않는 삶

석 달째 치료하고 있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편의상 A님이라고 칭하겠다. A님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진단을 받으셨고 발성을 내는 근육도 약하고 혀의 움직임도 뻣뻣하여 초기 상담 때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보호자(아내)와 초기 상담을 주로 진행하고 A님께는 치료 목표 설정에 대해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상담을 마쳤다. 매일 치료가 진행될 때마다 A님과 그의 가족의 맥락을 조금씩 알게 되는데 그때마다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A님과 관련해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오늘은 한 꼭지만 나눠보고자 한다. 




"저희 아빠의 인생에는 여행, 술, 축구가 전부였어요."


퇴근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A님의 둘째 따님으로부터 뜬금없이 카톡 연락이 왔다. 작업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보내온 것이다. 마침 며칠 전 A님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짧게 대화를 나눴었는데 따님의 메시지 덕분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A님과는 치료 세션을 지나오면서 치료적 롸포가 쌓이긴 했지만 여전히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어떻게든 소통을 해보려고 더듬더듬 알고 있는 지화, 수화(수어)도 알려드려 봤지만 어눌한 손동작에 내가 알아 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보통 치료사인 내가 주저리 떠들고 A님이 긍정 또는 부정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해나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따님이 보내온 A님에 대한 이야기는 치료시간에 나눌 대화 소재를 훨씬 풍성하게 해 주었고 A님을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말로 소통이 어려웠지만 표정과 제스처 등으로 느껴졌던 A님의 삶과 따님을 통해 알게 된 삶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A님은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왼쪽은 따님의 보내온 문자고 오른쪽은 나의 답장이다. 




따님이 치료사인 내게 왜 연락을 했을까 생각하다가 며칠전 치료시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A님은 현재 간병인을 쓰고 있다. 입원 초기에는 아내가 간병을 했었지만 켜켜이 쌓이는 피로감과 남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열흘만에 어쩔수 없이 간병인을 쓰게 된 것이다. 아내가 있을 때는 간병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신을 타박한다고 보호자는 농담반 진담반 치료시간에 하소연을 하기도했다. 이제 A님은 아내 없이 생활한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침대에서 다리 힘을 기르는 매트운동을 하면서 A님께 내가 물었다. 


"지금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했더니 검지 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인다. 


"마누라가 제일 보고 싶다고요? 손주들도 있고 아들 딸들도 있는데요?" 라고 되물으니 손바닥을 펼쳐 절래 절래 하신다. 그러면서 검지를 다시 치켜올리고 엄지를 치켜 올린다. 


마누라 알기를 최고로 아는 남편은 찐하게 멋진사람이라고 맞장구 치며 다시 말을 건내며 한마디 했다. 

"제가 아내분한테 전화로 아버님의 마음을 전해드려도 될까요?"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신다. 그렇게 A님과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날 급한 일로 칼퇴를 하면서 보호자분께 전화드리기로 한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치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A님이 내 손을 툭툭 치신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해를 잘 못하겠어서 재차 물었다. 가만 보니 손으로 전화 표시는 하는 것 같았다. 아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작업치료

내가 보호자(아내)분께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했을지 밤새 궁금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니 민망하고 죄송해서 치료를 도저히 진행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로 가서 보호자분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를 시도 했다. 다행이 보호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작업치료사 장윤호입니다. 제가 어제 아버님과 한 약속을 못 지켜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네? 무슨.."

"어제 치료하다가 아버님한테 제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내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걸 전화로 어머님께 전해드리기로 약속을 했는데 제가 깜빡 잊어버려서 숙제 완료 하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조금 감동하신 목소리..)" 


그리고  보호자분은 아프기 전에 A님이 얼마나 자상한 남편이고 아빠였는지를 이야기를 덪붙여 주셨다. 거기에 내가 짖궂은 질문을 드렸다. 


"그런데 아프기 전 A님, 가장으로서 점수를 매긴다면 몇점을 주실건가요?"

"아...70점? 80점?" 

"와~ 생각보다 점수가 높은데요?"


그렇게 훈훈하게 전화를 끊고서야 A님의 치료를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님이 A님 점수를 80점이나 주셨다는 것도 전달드렸다. 따님은 아마 이날 엄마를 통해 내용을 전달 받으시고 무언가 내게 아빠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여러분의 삶을 무엇으로 채워졌나요?


A님의 딸이 아빠의 삶을 '여행', '술', '축구'로 다 설명된다고 했다. 어찌 한 사람의 인생을 이 세가지로 다 표현하겠는가. 그러나 가장 뚜렷하게 남는 무엇가로 드러난다는 건 그 만큼 본인 뿐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A님은 넉넉한 벌이는 아니었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가족여행 그것도 아내와 단 둘이 다니는 여행도 챙길 정도로 자상한 아빠였고 남편이었다. 


눈이 많이와도 석가래로 눈을 치우고라도 축구를 하실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셨다. 직접 여쭤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했고 중고등학교 때에는 선수생활도 했다. 최근 유로 2020 경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어서 30분 치료 후 30분은 유로 2020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다.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이 사지마비 진단을 받은 환자라는 사실을 잊게 할만큼 마음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는 '작업'을 가진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볼 때 A님은 그럴 수 있는 분이다. 


A님은 여전히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고 이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얼마간 재활치료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A님이 자신만의 삶을 병원에서 잘 준비해 가족들과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매일 조금씩 스케치 하고 있다. 환자가 아닌 '작업적 존재'로 설명해주는 A님의 작업을 통해서 말이다. 더 섬세하게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가족들과 더 소통해야 하고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유형 무형의 지지체계를 구축해야만 A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으로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작업치료사인가요? 클라이언트인가요? 누가 되었든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설명하고 있나요? 이게 나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만의 작업활동을 꼭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 작업을 맛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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