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철렁한 오후
메멘토 모리
"병원에 들락날락하는 시간에, 글 한 자라도 더 쓰고 죽자. 그것이 평생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고 외쳐왔던 내 삶의 최후진술 아니겠는가. 종교인들이 죽음 앞에서 의연하듯 말일세"
이어령 선생님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과 죽음 앞에 놓인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 낸다. 인생에 마지막 인터뷰가 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메멘토 모리 1)를 이렇게 담담하게 언급한다.
치매어르신들이 낮시간에 생활하는 데이케어센터 컨설팅 가는 날이었다. 오늘은 집중 운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이라서 일찍 도착해 운동 도구들을 준비해 두고 자리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려고 하는데 팀장님이 다가와 입을 뗀다.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주말에 000님이 돌아가셨어요."
"어떡해.... 아... 어떡해.... 어쩌다가요..."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막혔다. 심호흡을 네다섯 번 하고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20명 남짓 있는 센터 어르신들 중에서 가장 건강했던 분이셨다. 또한 컨설팅 초기에 우리가 진행하려는 프로그램에 가장 비협조적이었으며 실수하고 잘 못 따라오는 분들에게 험한 말을 쏟아내셨던 분이었다. 이 분이 우리 컨설팅의 가장 큰 숙제처럼 여겨졌던 그런 분이셨다.
그렇게 완강하셨던 분이셨지만 최근 한 달 운동 체육 프로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주고 강도를 맞춰주는 모습을 보이셨다. 이런 아버님의 모습이 너무나 감사해서 일부러 찾아가 악수로 인사를 건네고 한 번이라도 더 칭찬해드리곤 했다. 2-3주 전부터는 피포페인팅(유화 그리기), 양말목공예도 스스로 선택해 참여하시고 완성되어 가는 작품들을 보며 웃어주시기도 하셨다. 지난 금요일 체력장 프로그램까지 잘 마치고 악수까지 나눴는데.... 토요일 벌초하러 산에 오르다 낙상 하셨는데 119 도착이 늦어지는 사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렇게 인생이 허무할 수가 없다.
아무리 메멘토 모리를 외쳐도 사람이 얼마나 둔한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버리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할 때라야 온몸을 떨며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음을, 나도 예외가 아님을 실감한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인데 늘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사니 인생이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다.
아버님의 유품이 되어버린 완성하지 못한 유화(피포페인팅)를 완성해서 가족을 방문해볼까 한다. 그리고 평균 연령이 80이 넘은 이곳은 다른 곳보다 '죽음'과 많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년 넘게 함께 시간을 보낸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의 미소가 떠올려지는 밤이다. 나와 함께 했던 즐거운 활동들이 여생의 마지막 활동이 될 수도 있으니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해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주석>
1)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