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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Oct 30. 2023

2023 가을 러닝 기록

나홀로 하프 연습 기록장

11월 첫 주 지방 강의 준비를 한다고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해서 점심 먹고 무작정 나가 뛰었다.  운영하고 있는 작업공방 운동 모임 오픈방에서 엊그제 한 멤버가 평일에 하프를 뛴 걸 인증했는데 그게 여운이 남았다었나 보다. 뛰자마자 '시작한 김에 하프를 뛰어볼까?' 생각하고 계획에 없던 롱런을 하게 되었다. 


혼자 뛸 때 굳게 목표를 정하고 뛰지만 그날 컨디션에 따라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는 사실을 러닝을 해본 사람은잘 안다. 고작 1km를 뛰었는데 소화되지 점심이 복부 통증을 만들며 아우성이다. '아뿔싸, 하프는커녕 10km만 뛰어도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속도를 낮추고 복통이 잦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페이스를 만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하프 마라톤을 꽤 많이 출전했는음에도 정작 연습으로 하프를 뛰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가장 길게 연습한 게 09년도 첫 마라톤 연습 때였다. 17-18km 정도로 기억하는데 응암에서 성산-양화-서강대교를 돌아서 오는 코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프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도 전혀 감이 없고 어떤 속도가 나에게 적절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뛰었던 첫 마라톤 기록이 10년 동안 최고의 기록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러닝은 내 삶에 안착했고 평일 낮에 하프거리를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10km 가까이 오니 작은 크로스 백에 물통만 달랑 넣어서 나온 게 후회스러웠다. 대회라면 이때부터 계속 단것과 에너지 음료가 차려져 있었을텐데...물통 하나로 하프를 뛴다고 생각하니 슬퍼지며 힘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고양시 창릉천을 지나 마포구로 넘어가는 연결 지점에 요구르트 아줌마가 늘 있음이 떠올랐고 당충전을 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힘을 낼 수 있었다. 

10km 지점 즈음으로 기억했는데 11km 지점에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역시나 계셨고 나는 당장 물보다 요구르트 차 위에 올려놓은 양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몸속으로 흡수시켰다. '양갱이 이렇게 맛있었나?' 생각하며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입을 헹구듯 들이키고 남은 절반 거리를 채우기 위해 한강으로 향했다. 


평소 10km 정도는 꾸준히 뛰고 있어서 괜찮았는데 12km 넘어가니 확실히 다리가 무거웠다. 15km부터는 다리에 작은 쇳덩어리를 달아 놓은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이 너무도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17km부터는 종아리 쪽에 근육 경련이 올 듯 안 올 듯 나를 놀렸다. 성산대교를 지나 양화대교가 보이는 한강 길목까지 21km를 딱 채웠다. 


이날 러닝을 통해 아직 장거리에는 몸이 전혀 준비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점심 먹고 소화도 안 된 상태로 뛴 무모함 그리고 고열량을 써버리는 장거리런에서 당충전 준비 없이 뛰면 x고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12월 2일 올해 시즌 마지막 마라톤 신청해 두었는데 나에게 러닝 경험을 이식해 준 첫 직장 팀장님과 뛰기로 했다. 지금 훈련을 멈추지 않고 하프 연습을 이어갈 수 있다면 좋은 기록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나아가 30킬로 이상 거리를 늘려 내년에는 풀마라톤도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동기부여가 된다. 

 

23년 4월 1일 경주 벚꽃마라톤

이날 죽을 것 같은 상태로 2시간을 넘어 들어왔는데 4월 경주에서 1시간 42분을 찍은 사람이 같은 사람이었던가? 거짓말하지 않는 몸은 훈련한 만큼 결과를 보여준다. 편법이나 요령이 절대 안 통한다. 러닝의 이런 정직함이 러닝을 더 좋아지게 만든다. 


뛰다가 잠시 멈춰 찍는 풍경이 너무 이쁜 요즘이다. 고통을 견디고 있는 러너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랄까. 긴 러닝을 하고 나면 몸은 며칠 묵직하지만 마음은 묵직한 느낌과 반대로 한껏 가볍다. 어지러운 일상에 다시 질서가 잡히는 느낌이 든다. 그래, 오늘도 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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