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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고의 기초가 관계를 강화하고 지속하게 하는가

by 작업공방 디렉터

하루 치료를 하면서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머릿속 내가 아는 부부들을 한 커플씩 떠올려 보았다.

여수부모님, 우리부부, 병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연령대의 부부들이 생각났다.

우리 부모님도 밖에서 보기엔 남부러울게 없는 분들이지만 나름의 문제도 있고 갈등도 있다.

그렇지만 그냥그냥 지금까지 잘 살고 계신다.


우리 부부도 결혼8년차에 접어들면서 신혼 초보다는 성숙해졌다 말하지만 한번씩 서로의 마음에 타격이 있는 갈등 또는 부딪힘이 여전히 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도 그냥그냥 잘 살고 있다.


지금 치료 하고 있는 입원 환자분 중에는 퇴원하면 집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내의 반대에 못이겨 입원 치료 중인 분이 계신다.


환자분은 치료시간에 내려와서 ‘속터져 죽겠다’, ‘열불라 죽겠는데 내가 환자라 말도 못한다’, ‘도대체 대화가 안된다’라고 하며 치료시간 내내 열을 식히느라 치료시간을 다 써버릴 때도 있다.


관계를 지속하다보면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게 아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그 갈등을 푸는 방식의 저변에 깔린 오랜 관계 속에서 자동화 되어버린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에 소개한 환자분의 보호자(아내)는 늘 남편이 혼자 있다가 낙상이라도 해서 다칠까하는 걱정에 자신의 아픈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그런 아내다.


문제는 환자분(남편)이 치료시간에 나와 같이 있을 때 무릎도 아프고 어디도 아프다고 치료사한테 푸념하듯 늘여놓으신다는 거다. 거기다 '운동을 안하려고 한다', '저 사람은 아직 위험해요~ 아직 안돼요' 이런 판단이 섞인 말들도 함께 쏟아 내신다.


이렇게 되면 상대를 생각한 마음이 전달되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짐덩이로 여겨지는 그런 불편한 감정선을 형성하게 해버린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대화가 계속 반복되면서 갈등이 심해져 가는 모습을 본다.


다행히 하루는 치료사인 내가 보증한다고 해서 보호자가 무릎 아픈 건으로 다른병원 외래를 어렵게 마음먹고 나가셨다. 그런데 알고보니 외출하시면서 주변 가까운 간병인들 몇 명에게 남편을 감독해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환자분이 '어찌나 간병인들이 귀찮게 하는지 오줌누러 갈 수도 없었다'고 하시며 치료시간에 나와 화장실을 함께 다녀왔다.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같은 사람도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사람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그럼 그 사람의 문제인가?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타인의 문제인가?


이것은 관계마다의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관계는 단순 명료하게 설명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 명제 안에서 겸손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어떤 도구(민감하고 신뢰할만한)로 파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내부적 외부적 맥락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목에 대한 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다만, 오늘 떠올려 본 부부들을 통해 든 생각은 이렇다.


관계를 좋게 지속해나가고 강화시켜 나가고자 한다면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을 <다 안다고>, <알 것 같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모른다' 는 생각은 좋은 관계를 위한 토양

오히려 상대에 대해서 나는 <모르는게 아직 많고> 모든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더 알아가야>하고, 어떤 갈등도 이 사람을<더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자라게 하는 토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생각하는데 매우 능숙하고 빠른 존재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관계 속에 들어가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받아 들을 수 없게 된다.


오래 같이 살거나 함께 했을 수록 ‘내가 당신을 몰라?’, ‘당신은 항상 그래~’, ‘그럼 그렇지’ 이게 자동으로 나오기에 자기중심적 관계를 멈추지 못하고 관계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어떤 갈등 앞에 긴 시간 살아온 사고 방식으로 자동 반응되는 나를 멈추고 심호흡 한 번 하며 <나는 당신을 다 안다고 생각한건 내 착각이자 교만이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이 사람과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더해진다면 그 때부터 선순환의 성숙한 관계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는 지속되는 관계가 될 가능성에도 훨씬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작업치료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갈등이 많은 부분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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