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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업공방 디렉터 Oct 18. 2020

관점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결과의 초격차

어떤 시각을 가진 작업치료사이고 싶은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손상과 장애가 이 분이 치료를 받는 이유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동시에 손상과 장애가 결코 이 사람을 정의하지 못하며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이라고 하는 거대한 원에 한 부분뿐이라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손상'과  '장애'라는 점보다 더 많이 이 사람에 대해 알게 해주는 수많은 점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삶'을 치료할 수 있다.

지난글 손상과 장애라는 점 외에 알아야 할 수많은 점들 중


지난 글에서 정말 중요한 '관점(시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보느냐가 나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말이 더 와 닿을 수 있는 예시를 들어보겠다. 여러분이 치료실에 있다고 상상해 보면 좋겠다. 


여기서 실습생인 여러분에게 치료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작업치료사가 어떤 시각을 갖는지에 따라 어떤 결과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느껴 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습생도 치료 참관에 들어갔을 때 어떤 눈을 준비해야 실습지에서 예비 작업치료사로서 더 잘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지도 짐작해 보라는 거다. 




아침 첫 타임에 신환이 들어왔다고 병동에서 메시지가 왔다. 치료복을 갈아입고 타 병원 기록지, 의료&간호기록지를 확인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이름 : 홍길동

나이 : 39

진단명 : Lt. hemiplegia d/t BG ICH / 상하지 강직( 상지 더 심함) 

발병일 : 1년 경과

입원 경로 : 00 대학병원 4주-->00 재활병원 5개월-->00 재활병원 6개월-> 본원 입원 

보행 : 최근에 독립 보행이 가능하나 매우 느리고 낙상의 우려가 높아 보호자 항상 동행

손기능 : 좌측 강직성 마비, 보행 시 팔이 외전 됨. 

BADL : 엄마의 최대 도움 필요




여러분이 치료사라면 위의 정보를 보고 처음 만나는 클라이언트와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의료 & 간호 기록지 내용을 살펴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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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을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어쨌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할지 결정을 했을 것이다. 분명 그게 어떤 '평가' 든, '상담' 이든 또 다른 무엇일 것이다. 만약 내가 여러분과 마주할 수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 판단과 결정이 여러분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신환이 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지 재활병원마다 다르다. '평가'를 가장 먼저 하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평가'와 '상담'을 함께 하는 곳도 있다. 드물겠지만 '평가'나 '상담'은 안 하거나 최소화하고 '어쨌든' 치료를 바로 시작하는 곳도 있다. 각자 그렇게 하는 그곳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프로세스가 그 조직이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 결과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두 가지 시각으로 위에 소개된 의료 & 간호 기록지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이름 : 홍길동

나이 : 39

진단명 : Lt. hemiplegia d/t BG ICH / 상하지 강직( 상지 더 심함) 

발병일 : 1년 경과

입원 경로 : 00 대학병원 4주-->00 재활병원 5개월-->00 재활병원 6개월-> 본원 입원 

보행 : 최근에 독립 보행이 가능하나 매우 느리고 낙상의 우려가 높아 보호자 항상 동행

손기능 : 좌측 강직성 마비, 보행 시 팔이 외전 됨. 

BADL : 엄마의 최대 도움 필요


<손상과 장애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을 가졌다면 다음 단계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 치료사의 생각 및 평가 

: 걸을 때 팔이 외전 될 정도로 팔의 강직이 심함 ->팔과 손 강직 및 손기능 평가 진행 

: 최근에 걷기 시작하지만 불안정하다고 함 ->균형 평가 진행


- 치료 

: 팔과 손의 강직을 줄여 줄 수 있는 다양한 이완술과 스트레칭 진행

: 균형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실 내 기구 사용, 운동법 가이드


평가 이름과 세부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해 보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평가'로 시작하고 그 결과에서 보여준 저하된 기능에 초점을 둔 치료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3개월 뒤 퇴원 평가 결과 강직과 손기능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었고 균형능력은 소폭 개선되었다. 덕분에 병원 주변 평지 산책은 가능하지만 먼 거리나 대중교통 이용은 여전히 보호자 없이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직장 복귀는 정말 엄두가 안나는 일이 되어가고 체념하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우울감도 더 심해지고 엄마와 관계도 겆잡을 수 없이 안 좋아졌다. 


<손상과 장애라는 점보다 더 많은 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시각>을 가졌다면 

- 치료사의 생각 및 상담

: 젊은 나이다. 직장인이었을 수 있는데 휴직했을까? 1년 가까이 재활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생활은 어땠을까? 최근에 걷게 되었는데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을까? 외출이나 동네라도 나가봤을까? 1년이나 지났는데 BADL이 최대 수준이다? 이전 병원에서 일상생활치료를 안 받았나? 이유가 있겠지. 최대 도움을 받고 있고 낙상 위험 때문에 항상 보호자가 동행한다.  60대로 예상되는 보호자(엄마)의 피로도도 만만찮을 것 같다. 둘의 관계는 괜찮을까? 강직이 심한데 손이나 팔의 변형은 없을까? 강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생활에서 잘 대처하고 있을까? 

- 상담을 진행했고 클라이언트와 보호자의 상반된 욕구를 확인했고 조율했으며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치료 

: 상담을 해보니 직장에 복귀하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했다. 반면 보호자는 잘 걷지 못하고 팔의 강직이 심하기 때문에 업무 복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로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상담 과정에 여실이 드러났다. 치료사는 두 사람을 분리해 상담을 진행했다. 재활을 진행한 기간에 비해 일상생활 의존도가 높다는 것, 가장 원하는 직장복귀 욕구 필요한 기본적인 일상생활 제대로 평가하고 훈련하면서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과제를 늘려 가는 성공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상/하의 옷 입기, 샤워하기, 지하철 이용하기, 택시 이용하기, 우산 펴고 접기, 가방 메기 등 출퇴근에 필요한 다양한 활동을 치료 목표로 설정했다. 손에 심한 강직 때문에 손의 구축이 진행될 우려가 있어 보조기 제작을 의뢰했고 스스로 스트레칭하는 법, 걸을 때 환측 팔 관리법을 실제 외출해 걸으면서 연습했다. 


<손상과 장애를 중심으로 보는 시각>의 결과는 상상해 적은 것이지만 실제로 이 분은 1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팔과 다리를 낫게 하는 치료를 받아왔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기다리는 직장에 복귀하고 싶은 욕구에 비해 실제 일상생활 독립 수준이 뒤따라 주지 않음을 인식하면서 병원 생활 내내 우울한 상태였다. 위와 같은 추론은 클라이언트가 퇴원 때에 해준 말이기도 하다. "제가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차이를 느꼈는가? 예시 내용을 매우 축소하고 요약한 내용이지만 두 시각의 차이가 어떤 결과로 연결되는지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분은 3개월 치료 후 곧바로 직장에 복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치료사가 만약 손상과 장애에 초점을 둔 작업치료 서비스만을 제공했다면 이 분이 과연 그토록 원하던 직장복귀를 할 수 있었을까? 보호자와의 관계가 나아질 수 있었을까? 우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확언할 순 없지만 아마 3개월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은 분명하다. 


여러분은 어떤 시각을 챙기는 실습을 하고 싶은가? 어떤 시각을 가진 작업치료사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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