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끄적였던 기록을 이렇게나마 가져와보기로 했다. 시간은 지체없이 흘러간다. 나는 그사이 감독이 되었고 결혼도 했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나 또한 아팠다. 그리고 오늘.
뭐 어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Date : 2012.01.18
새해.
시간이 고개 도리질 하며 부지런을 떤다고 그것이 진정으로 더 빨리 흘러간다던지, 느리게 흘러간다던지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모두가 일찍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이 모두 죄인양 여겨버리기에 그 죄책감에 짓눌려 떠밀려 앞으로 휘휘- 걷고 뛰기도 했지만. 그런다고 시간이 더 빨리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오지 않을 것 같다가도 한 번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애진작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오롯이 혼자서 흐르는 시간을 지켜 본 사람들은 국수 말아먹듯 시원하게 비켜가는 시간도, 느릿느릿 몸 바로 옆을 꿀렁대며 넘어가는 시간도, 사실은 일정한 마침표를 찍고야 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해피뉴이어~!를 외치는 일주일간,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못한 내 시간은 여지없이 느물느물 흘러갔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에 대놓고 나는 불평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내가 비뚤어지고 있지 않은가... 찌질스런 고민을 반복하던 나는, 걸어가는 시간에 끌려 일주일이 지나고, 주위 연락을 단절하다시피 굴 안으로 파고들어 결국에 하고자 하는 것을 기어이 찾아낸다. 그러고는 어떻게 그 곳으로 가야하는지 알아보고 고민하고 사색한다. 마치 당장이라도 결심하려는 것처럼. 이러한 순간까지 흐르고 나면 한참이나 멀게 느껴지는 그 시간도 어쨌거나 차곡차곡 내 발 앞으로 깔릴 것이라는 차분한 믿음을 구하기에 이른다. 헌데, 이번에는 그 지점까지 손 안에 아무것도 쥐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혼란스러움이 같이 느껴져서 쉴 새 없이 뒤엉키고 만다. 복잡하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속이 꽉 막혀 나오는 말이 결국 복잡하다..라는 말 뿐일 시점. 이럴 때는 여지없이 보드를 타고 싶다며 눈밭을 찾아갔다.
꽁꽁 얼어버릴 추위 속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 그럴싸하다. 여전히 넘어져서 크게 다치지는 않을까.. 하며 겁을 내면서도, 슬로프를 내려가고 올라가다보면 도시에서 뒤엉켰던 시커먼 덩어리가 카각- 거리며 보드가 눈을 긁듯이 머릿속에서 긁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실컷 라이딩 후, 스키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꼭 해장국이나 순대국을 먹자며 일행을 조른다. 일행들이 보드보다 떡밥에 더 관심 있냐며 나를 바라봐도, 나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밥집도 보드 타는 것의 일부라 우겼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람과 기억을 공유하는 데엔, 역시 밥보다 좋은게 없으니까. 하핫. 겸연쩍게 웃으며 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밥집으로 들어가 다 같이 뜨끈한 국물로 속을 녹인다. 이들 모두가 각자의 시커먼 덩어리와 싸우러 일상으로 돌아가니까, 나도 힘내자 하며...
.....
아무튼, 새해인 것이다. 시간의 점선을 뜯어내는 것처럼, 작년이란 헌 종이가 뜯겨나갔다. 뜯겨진 헌 종이에는 내가 끄적인 이야기와 망친 그림들이 뒤섞여있었다. 새해라는 곳에 단어를 적을라치면 원래 알고 있고, 이미 쓰였던 단어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져 두려워졌다. 뭐든지 ‘첫’이라는 글자가 붙어서 마치 일생에 다신 지워지지 않을 기억처럼 남게 될 것 같다할까.. 입에 일상적인 대화 한마디 뱉어낼 때, 단어가 신선한 야채 다발과 같이 탱탱하고 충분한 물기를 머금어서 살짝 입에 물면 아삭, 하고 입안에서 흩어 부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새해의 첫날이 가고 둘째 날이 오고 셋째 날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스쳐간 순간은 벌써 지난 시간에 낱낱이 적혀가고 있다.
그리하여- 새해하고 열여덟째 날. 남들보다 복잡하게 늦은 첫날의 기도를 올리려 한다.
다시 연말이 오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피부에 스치고 베이며 스스로의 사전을 진실히 채울 수 있기를. 매순간 너무 아파하며 아쉬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