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42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죄송합니다. 한 오조칠억 번쯤 입 밖으로 내뱉었던 것 같다.
혼나기 싫어서 죄송합니다. 화내기 싫어서 죄송합니다. 불안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그냥 제가 다 죄송해요.
나중에는 설명하기 귀찮아서 남 몫까지 떠안으며 죄송합니다. 그렇게 외쳤더랬다.
오히려 그게 편했다. '아니, ' 혹은 '그게 아니라, ' 따위로 시작하는 말은 대개 핑계의 형식을 띈다고 여기거나 변명의 일종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결과는 아주 편했다. 욕을 좀 듣더라도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면 구차한 설명을 뒤에 덧붙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잘못을 떠안고 혼나는 것보다 설명을 하는 일이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욕먹는 것쯤이야 수명이 늘어나는 방법이라고 여겼고, 평생 볼 사람도 아닌데 한 때 나쁜 인상이 새겨져도 내 인생, 그리고 상대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혼란이 왔다.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구나. 내가 그 잘못을 기어코 저질렀구나. 무엇이 진실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더라.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잘 분간을 못했다.
그래서 그냥 많이 외로웠다.
돌봐줄 마음이 없어서 더 그랬다.
나조차도 내버려 두었던 마음들이 속에서 곪아 진물이 났다.
슬펐다.
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그 당시에는 그랬다.
지금은?
지금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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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