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 그리고 입시 과열 현상
-스카이캐슬
2019년을 강타한 첫 번째 주자는 스카이캐슬이었다. 이 드라마는 1%라는 미미한 시청률로 시작해 최종회 기준 23.4%를 달성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특이한 줄거리와 빠른 전개, 배우들의 연기력은 비지상파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이라는 놀라운 기록들을 세웠고, 뉴스를 비롯한 모든 미디어 매체,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재생산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의 비정상적인 입시 과열 현상과 학벌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었다.
스카이캐슬은 누구나 살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는 곳, ‘SKY 캐슬’에 사는 상류층 자제들의 대입을 그린 드라마다.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호화로운 주택단지, 캐슬의 사람들은 ‘서울 의대’에 자식을 보내는 것이 최종적인 성공이라 믿고, 이를 가족 전체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캐슬의 평화는 서울 의대에 가장 먼저 합격한 엄친아 영재네의 파국을 맞이하며 요동친다. 영재 엄마의 자살 때문에 그들은 캐슬에서 나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 들어온 우주네는 캐슬의 문화와는 정반대의 사람들이었다. 우주 엄마는 캐슬에 살면서 입시 과열 현상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며 영재네를 모델로 한 책 ‘누가 그 여자를 죽였을까(SKY 캐슬)’를 쓰려 한다. 이를 알게 된 캐슬의 사람들과 입시 코디는 우주 엄마의 행동을 막으면서 점점 그들의 밑바닥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입시 코디네이터의 존재를 비롯한 하버드 거짓 입학,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등 대학 입시계의 추악한 현실들이 고개를 들이밀고 표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코디라는 존재에게 의지하고, 전교 회장 사퇴를 사주하며 시험지를 빼돌리는 등 기이한 입시 과열 현상은 과연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작가는 대한민국의 실제 대입 판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 글은 철 지난 스카이캐슬을 단순히 복습하고자 하는 바를 넘어, 갓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의 파릇파릇한 기억을 더듬으며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소금 한 주먹 뿌리고자 기획하게 하였다. 이에 비교적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서 자라며 상대적으로 최근 입시를 끝마친, 소위 말하는 ‘대치동 문화’를 줄곧 겪고 지켜본 입장에서 주위의 경험을 환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입시 과열 현상은 드라마 속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도 드라마 못지않게 존재한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사람들이 가장 주목한 요소 중 하나는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여지없이 그들은 존재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입시 컨설턴트, 입시 매니저, 입시 코디네이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명칭이 다르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똑같다. 학생이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수시전형이 확대되고, 학생부 종합 전형의 시대가 열리며 그들의 존재와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사소하게는 자기소개서 첨삭부터 시작하여, 학생부 종합전형 1차(생활기록부 서류 심사)에 어떠한 항목이 부족한지,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할 내용을 어떠한 스펙으로 채울 수 있는지, 길게는 3년 전체의 계획을 짜주기도 한다. 따라서 유명한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는 것은 비싼 상담료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 또한 경쟁을 거쳐 선택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
내가 합격시켜 줄 테니깐 얌전히, 조용히, 가만히 있어. 죽은 듯이.
우리는 드라마 속 예서의 모습을 봤을 때,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아니, 애 인성이 왜 저래?” 그러나, 예서의 사회적 학습 조건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학교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고, 예서는 모든 공부를 학원에서 배운다. 사교를 위한 행동은 존재하지 않고, 성적을 위한 노력이 예서 인생에서 전부였다. 예서가 사회적, 교육적 학습을 하는 곳은 김주영 선생님과 한 팀을 이룬 명문대를 졸업한 강사들의 수업이다. 우리는 입시 코디를 비롯한 학원 강사들 모두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표현을 쓰곤 한다. 선생님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학생들을 윤리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이다. 교육 윤리와 같은 수업은 교사로서 필수로 들어야만 하는 수업이다. 교사는 학생의 도덕적인 측면까지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봐 온 수많은 입시 강사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교육에 필요한 윤리를 배우지 못한 채, 명문대 학위만으로 학생에게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스킬만을 가르친다. 그들에겐 어떠한 윤리적 덕목도 배우기 힘들다.
학원에서는 10시가 되면 학원 1층 문을 걸어 잠그고 수업을 계속 진행한다. 10시까지만 학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불법을 통해 학습한 지식은 점수와 함께 정당화된다. 오직 실적만이 학원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떠한 것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발언에도 제한받지 않는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하기도 하고, 수강생에게 패륜의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다. 갑을 관계가 역전된 사업에서 누릴 수 있는 을의 특권이다.
착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선생이 아니라 성적 트레이너입니다. 어떤 학생들도 여러분을 은사로 모시지 않을뿐더러 어떤 학부모들도 여러분을 자식의 스승으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오직 결과만이 여러분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명문 대학 입학의 조건을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조부모의 재력이라고 말한다.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유머로 보인다.
입시는 정보와의 싸움이다. 학부모는 누구보다 빠르게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정보를 얻어야 하고, 그 정보를 아이에게 적용해야 한다. 아이를 학교나 학원에 보낸 뒤 엄마들은 브런치 카페에 모여 서로의 정보를 새롭게 업데이트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원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헤어진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거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포장해 학원 근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아이를 기다린다. 물론 학원이 끝나는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야 한다. 학원 문 바로 앞과 가장 가까운 자리는 선착순으로 마감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차에 타면 샌드위치를 건네주고 다음 학원으로 이동한다.
입시계에 깊게 발을 담그고 있으면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학원에 무슨 강사가 강의를 론칭했다.” 등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꼭두새벽부터 학원을 등록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마감되기 전에 빠르게 전화로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좋은 강사를 만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주는 자료와 정보, 그리고 강의력이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다른 선택지가 없다. 대입이 애초에 운으로 결정되는 문제였던가. 재수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러니까 현역이 재수생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문제를 분석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재수학원과 다르게 학교 수업이 중점인 현역들은 정보력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보다 사교육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누군가는 불리한 조건에 있음을 인정하는 이야기였다. 과연 공정한 경쟁인가.
-이건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무한한 경쟁의 시대.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자만이 승리한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학습했다. 학벌주의가 팽배해지고 대입에 목숨 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친구를 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상대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다닐 땐, 우수반, 수준별 수업, 야간 자율 학습 자리 배정까지 모든 것이 다 경쟁이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모두를 수준별 수업으로 편성해서 누군가가 ‘상’반에서 내려와야만 내가 ‘상위권’ 반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우수반에 들어가기 위해선 눈에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해야만 한다. 친한 친구가 우수반에서 쫓겨나야 내가 우수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자율 학습자리는 매 시험이 끝나고 등수대로 정해진다. 문과반과 이과반 간의 대결 구도를 취하기도 하고, 문, 이과 각 계열 내에서의 경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습이 시작되기 전, 상위권 친구는 어떤 문제집을 푸는지,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을 시작한다. 친하지 않은 친구가 찾아와 문제집을 빌리고, 필기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난감한 순간들이 찾아올 때면, 그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나아가, 각 계열의 상위권들은 계열 내의 경쟁, 계열 간의 싸움을 대표하며 체스판 위의 말처럼 다뤄지기 때문에 더욱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압박을 못 견딘 우리 학교 이과 1등은 전학을 갔다.
-특별반 폐지요. 이름만 정독반이지. 교내 경시대회 정보도 걔네한테만 미리 알려주고, 상도 빼주고. 나머지 애들은 들러리인가요? 아무리 학교가 입시 공장이 되어버렸다지만 눈앞에서 대놓고 반칙하는 거 참을 수가 없어서요.
올해도 역시나 수능이 끝나고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매년 수능이 끝나면 이러한 비극적인 이야기는 우리를 찾아온다. 그들은 도대체 어떠한 마음으로 죽음을 택하는 것일까. 대입 실패를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그 현실에 대해 쉽게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올해로 3번째 수능을 본 후, 4번째 수능을 준비하는 친구와의 대화 중 그 마음에 대한 공감의 실마리를 찾았다.
“내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무엇보다 좋은 대학을 가야겠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어. 반대로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반드시 내가 증명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친구네 아줌마나, 주변 어른들이 나에게 대학을 물어볼 때 그들이 가지는 심리는 나의 미래를 내다보고 평가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내가 그들의 기준에 적합하지 못한 대학을 이야기한다면, 너는 성실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런 부류의 인생을 살겠구나. 라는 평가를 하거든. 안타까운 동정과 함께.
“왜 너도 알잖아,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재수생 때, 내가 9월 모의고사를 되게 잘 봤거든. 시험이 어려웠는데도 전 과목에서 하나를 틀렸나? 그런데 주위에 다 같이 고생하는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 그래서 아무에게도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어. 물론 학원 담임이 어디서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내 입으로 성적을 꺼내기 싫었지. 엄마에게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거든. 근데 성적 발표하고 1주일이 지났을 때쯤, 동네에 사는 친구네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는데,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고. 축하한다고. 우리 엄마도 모르는 내 9월 모의평가 점수를 그 아줌마 입에서 들으니 얼마나 무섭던지. 너도 알잖아.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소문에서 살아남으려면 실제로 보여줘야 하잖아.
“이젠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대학에 목메는지. 이렇게 대학을 가서, 내가 온전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냥 일부가 되어 버린 거지. 이제 와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가지 못한다는 건 정말 지난 노력이 물거품 되어 버린 느낌이 들기도 해. 대학 가서 뭐 하고 싶냐고? 솔직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어느’ 대학을 갔느냐지, 그 대학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니까. 내가 과연 온전한 대학 생활을 할 순 있을까? (웃음)
-야,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하루종일 학교로 학원으로 내몰리는 아이가 스트레스가 없겠니? 니 식대로 하면 학원 당장 관둬야지. 난 그렇게 못해. 한국 같은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학원을 끊어. 난 내식대로 내 딸 관리해.
일부는 이야기한다. 명문대를 가면 뭐가 달라지는데?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 주변에도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무언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학을 이렇게 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명백한 ‘확률’ 때문이다. 남들의 시선, 사회의 인정 모두 중요하지만, 명문대를 나오면 좋은 직장을 구할 확률이 높다는 것 또한 우리가 학벌에 집착하는 이유다. 물론 SKY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도 100% 확신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지독한 확률 싸움에서 그들은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선망하고 바라는지 모른다.
-니 아들 그렇게 방치하다가 명문대 못 가면, 이 빌어먹을 경쟁 사회에서 걔가 니 남편만큼이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과연 대학이 그 마무리였을까. 스카이캐슬 주인공들은 서울 의대에 합격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었다. 영재의 탈선도, 예서와 부모의 갈등도, 심지어는 혜나의 죽음마저도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풀릴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두 대학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어느 대학 다니세요?’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학으로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대학 간의 서열 싸움에서 이미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인생의 첫 번째의 실패였다.
최근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5년 전과 비교해 약 7만 명 상승하였다. 증가한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상징하는 바는 취업난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는 취준생들의 심리로만 볼 수 없다. 이는 대학생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장 첫 번째의 실패인 대입을 뒤엎으려 계속된 도전을 시도한다. 학벌을 반영하지 않고 시험으로만 경쟁을 하기 때문에, 다른 취업 조건보다 지고 들어가는 것이 적다고 판단한다. 공무원 시험 도전자는 올해도 많을 것이다. 고등학교는 대입으로, 대학은 공시로, 자꾸만 멍 들어간다.
-대학 들어가면 스트레스도 사라질 거니까. 그래, 난 이렇게 해서라도 내 딸들 명문대 보낼 거야. 응,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 그래야 내 딸들도 최소한 나만큼은 살 수 있으니까.
영재 엄마 영주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믿었던 아들의 탈선, 남편의 폭력,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 대한 후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들의 탈선과 남편의 폭력, 그리고 영주의 후회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그건 바로 우리다. SKY에 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영재 엄마는 덜덜 떨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없고, 손가락질할 사회가 두려웠다. ‘그 난리를 치더니 서울대 못 간 거야?’ ‘쟤 아빠가 의사라던데, 아들은 엄마 머리를 닮았나?’ 나는 괜찮은데, 손가락질받을 아이를 생각하니 막막하고, 남편이 쥐고 있던 것들을 아이는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을 것이다. 영재엄마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사회가 만든 끝없는 지옥 길을 아직도 걷고 있다.
SKY에 들어가지 못한,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진다.
누가 또 그 여자를 죽일 것인가.
우리 반 십육 번
박정호가 죽었네
영어학원 건너가려다
뺑소니를 당했네
레커차 달려오고
경찰차 달려오고
사이렌 시끄러워도
그 아이 텅 빈 눈은
먼 하늘만 보았네
박정호가 죽었어요
훌쩍대는 전화에
울 엄마는 그 아이
몇 등이냐 물었네
‘그 쇳물 쓰지 마라’의 저자, 댓글시인 제페토.
‘명절이 지나고 다니는 학원 수가 더 늘었어요’ 기사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