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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라이프 Aug 09. 2019

아빠의 현실 육아 46일 차

애기랑 둘이 있기

오늘은 아내가 단유 마사지를 받으러 조리원에 갔다. 아기와 함께 아내를 조리원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단둘이 있었다. 집은 이미 난장판. 아침에 먹은 설거지도 그대로, 거실도 이것저것 정리가 안되어 있어 산만하고. 깔끔한 걸 좋아하지만 일단 정리하기 전에 우리 아기가 잠을 좀 주무셔야 치울 시간이 난다.


작년 6월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 부부는 잠시 떨어져서 아내는 서울에서 회사를 계속 다니고, 나는 제주에 내려와 시골 농가주택을 셀프 리모델링을 했었다. 올해, 2019년 3월에 아내도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에 내려와 딱 1년만 살아보자! 고생한 우리에게 1년 제주살이의 안식년을 선물하자! 그렇게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하다가... 하다가... 하다가... 11월에 아기가 생긴 걸 알게 되었다. 아직 계획에 없던 아기였는데,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계획의 전면 수정도 필요하고...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그렇게 나는 8개월 정도의 짧은 제주살이를 정리하고 올해 3월, 서울로 컴백했다.


그렇게 백수생활을 하며 아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다행히 그동안 모아둔 비상자금도 있고 해서 출산준비는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제주에 내려갈 계획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막연하게 아기가 3살쯤 되면 내려가자 라고 했지만,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 인생이란 계획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인가...


짧은 제주살이의 향수가 남아서 아기와 함께 100일이 지나면 내려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얘기했지만, 아내는 현실적인 질문으로 답했다.

"가면 뭐 먹고살게?"


 나의 계획을 말해줬지만, 설득은 어려웠다.

(나의 계획은 추후에 다시 글로 남길 예정)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아기와 나는 일단 좀 잠을 청했다. 아기를 재우려다 보니 나도 잠이 왔다. 이제 46일 된 아기는 침대에서 혼자 놀다가 잘 자는 법이 없다. 들고 어르고 달래고 놀아주다가 잠이 오면 칭얼대다가 짜증을 내기 시작해서 울어 버린다. 보통은 배가 고프면 더 심하게 자지러지게 운다. 하지만 잠투정은 앵앵하면서 짜증이 좀 가미된 울음이다. 오늘은 심하게 울지는 않고 쉽게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나도 잠깐 자둘까 하다가 그냥 침대에서 일어났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우리 집의 베란다에는 작은 나만의 공간이 있다. 그곳으로 갔다. 사실 너무나 작은 집이라 문만 열면 베란다지만 나는 미뤘던 팟빵 라디오도 다시 듣기하고 메말라가던 식물들에게 물도 주며 짧은 혼자만의 여유를 보내고 있었다. 참 이런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육아 전에는 몰랐다. 예전엔 선택의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백수 아빠의 육아지만 정말 혼자 독박 육아하는 아내분들은 대단하다. 아니 위대하다. 우리 부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함께 육아를 한다. 이 육아의 시간을 혼자서 감당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울증 온다. 오늘같이 아내가 볼 일이 있어 잠깐 외출하면 짪은 3~4시간의 독박 육아지만 이것도 아기가 많이 울고 안 자고 보채면 나는 슬슬 울컥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짧지만 달콤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아기는 2시간 30분의 수유 텀을 칼같이 지키면서 깬다. 우는 것도 단계가 있어 슬슬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하기 전에 입에 젖병을 꽂아야 한다. 아기는 다행히 먹고 나면 또 잘 잔다.

먹고 트림시키고 놀아주다가 스르륵 잠들기까지 보통 40~5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렇게 잠이 들면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방을 정리하고 빨래를 갠다.


10시 50분에 나갔던 아내는 2시가 넘었는데 소식이 없다. 예정된 시간은 집에 오면 1시 30분 정도 됐을 텐데. 아기가 품에서 잠든 틈에 전화를 했다. 아내는 볼일이 있어 잠깐 교보문고에 들렀다고 한다. 아내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중. 같이 육아하는 입장에서 너무나 이해 가는 부분이다.


 

"점심은 먹었어?"

"아니, 오빠는?"

"나는 애기 잠깐 자는 동안에 아침에 김치찌개랑 간단하게 먹었지~(아직 못 먹었는데...) 자기도 점심 사 먹고 들어와.

그리고 천천히 볼일 보고 들어와. (일찍 들어왔음 싶지만, 나도 나중에 나갈 거니깐...ㅎㅎㅎ)"

"응, 좀 있다가 들어갈게."


그렇게 잠깐 통화를 하는 중에 애기가 깼다. 다시 달래고 놀아주다가 이번엔 안 잔다. 피로가 슬슬 올라온다. 나도 밥 먹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후 3시가 좀 못돼서 점심을 허겁지겁 먹었다. 애기는 잠깐 아기침대에 눕혔는데 찡찡댄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도 배고프다고...ㅠㅡㅠ.


 아내는 4시가 좀 넘어서 들어왔다. 손에 색종이  같은 게 있길래 물었더니 아기 50일 셀프 촬영을 위해 좀 꾸미는 걸 만들려고 사 왔단다. 잠깐! 미안해진다. 어제 50일 촬영을 스튜디오 가서 찍었는데, 최하 49만 원에 원본 파일에 앨범 등등을 껴서 판매한다는 스튜디오를 뒤로하고 무료 4컷 앨범만 신청하고 나왔었다. 어제 아기가 너무 고생하면서도 울지 않고 이쁘게 찍은 원본사진들이 아른거렸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섰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크슯.


아내는 또 점심도 안 먹었단다. 아이고.


아기는 엄마가 와서 반가웠는지 맘마 달라고 운다. 딱 2시간 30분이 지났다. 아내가 분유를 먹일 동안 나는 좀 쉬었다. 그렇게 교대하면서 육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 말했다. 육아는 신세계라고.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겠지... 스스로 최면을 건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아기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 육아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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