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어제 점심 먹으면서, 그러니까 2019년 7월 25일 12시가 넘은 시각. 우리 부부는 고속터미널 옆 신세계 백화점을 갔다. 다가오는 장모님 생신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이제 태어난 지 한 달 된 사랑하는 딸을 산후도우미 이모님께 맡기고 둘만의 오븟한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나름의 스케줄을 만들어 나온 것이다. 백화점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우린 경부선 고속터미널 지하 식당가를 먼저 둘러봤다. 점심시간이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 상권답게 식당들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하 식당가 맛집인지는 모르겠지만 굴반계탕을 파는 식당은 줄까지 서서 대기하는 풍경도 보였다. 요즘 산후조리 한약을 먹는 아내와 소화기관이 약해서 한약을 또 같은 한의원에서 만들어서 먹고 있는 나는 둘 다 밀가루 음식을 안 먹고 있다. 식당을 고르는 기준에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자동 탈락. 먹을 수 있는 게 더 없다. 경부선 고속터미널 지하 식당가를 한 바퀴 크게 돌았지만 딱히 당기는 식당은 없었다. 오랜만의 외출인데 그저 그런 집에서 한 끼를 때우듯이 그렇게 먹고 싶지는 않았다. 이 많은 식당들은 사람들이 많고 많은데 아내가 유심히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뭔가 만족스러운 표정의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나도 한번 창 너머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딱히 맛있어하며 음식을 먹는다기 보다 점심시간이고 나는 배가 고프니 예민한 위장을 이 음식물로 채워서 달래 보아야겠다, 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여기 식당들은 장사하기 쉽겠다. 딱히 맛이 있던 없던, 한번 먹고 다시 안 오던 사람들은 계속 오니까..."
우리 부부는 경부선 고속터미널 지하 식당가를 미련 없이 떠났다. 그냥 그런 식당에서 무난한 식사를 하면 우리 둘에게 너무 미안할 거 같았다.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신계계 백화점 바로 옆에 파미에스테이션으로 갔다. 여긴 호남선 고속터미널 식당가라고 보면 되겠다. 신계계 시티를 만들면서 세련되게 리모델링한 공간에 프랜차이즈 식당가가 길게 줄 서서 들어와 있다. 사실 여기는 한식 위주의 경부선 식당가에 비하면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허나 밀가루 음식 안되고 쫌 건강한 식사를 하고 싶은 우리들을 만족시킬 만한 식당은 없다. 슬슬 다리도 아파오고 배도 고파온다. 그냥 아무 식당으로 가기엔 그만큼 들인 시간이 아깝다. 돈가스집에 갈까 하고 메뉴판을 보는데 가격도 15,000~25,000대 결코 알뜰하고 합리적인 가격대는 아니다. 막상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 그냥 분식집 같은 가게 인테리어. 이 돈 주고 여기서 그냥 그런 돈가스면 너무나 슬플 거 같다. 아까 지나가면서 본 구슬함박 식당에 가보자. 구슬함박 간판을 여기저기서 봤는데 맛은 아직 못 봤다. 많이 생기는 건 이유가 있겠지. 어떤 함박스테이크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스테이크 함박, 아내는 로제크림 함박을 주문했다. 가격은 각각 ₩15,500 , ₩13,500 정도, 내 기억으론. 이 정도의 점심 식사면 만족스러워야 한다. 기본 식사 가격이 많이 올라서 ₩7,000 짜리 한 끼는 찾기 힘들고 기본 ₩8,000~₩9,000 원하는 식당들에서 여기 파미에스테이션의 식당들은 기본 월세가 비싸서인지 평균 가격이 ₩12,000 ~ ₩15,000 정도는 하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은 생각이다. 여하튼 구슬 함박에서 식사를 기다리면서 잠시 사람들이 먹고 나가고 또 들어오고, 홀 직원들도 바쁘게 식사가 끝난 테이블을 정리하고 닦고 다시 세팅하고, 새로운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빠릿빠릿 처리하고 있었다. 문득 이 집 사장님은 참 좋겠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CCTV로 감시하나? 두리번두리번 했다. 스테이크 함박과 로제크림 함박이 나왔다. 두꺼운 주물팬에 아기자기하게 담긴 함박 위에 숙주볶음과 부챗살 스테이크, 일본산 밥 위에 올리는 가루를 뿌린 테니스공 반만 한 크기의 흰쌀밥 그리고 함박스테이크 소스가 있었다. 구성은 나쁘지 않았다. 로제크림 함박은 함박스테이크 위에 로제크림소스가 뿌려져 있고 굵게 썰어 튀긴 감자튀김이 3조각, 그리고 숙주볶음과 똑같이 밥. 이미 맛있는 식사 찾기에 시간을 허비해서 비주얼만은 맛나게 보였다. 그리고 식사를 했다. 스테이크는 조금 질기고 함박은 먹을만했다. 숙주볶음의 식감은 괜찮았고 밥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로제크림 함박도 먹을만했다. 중요한 건 '먹을만했다'다. 여기 고속터미널에 와서 거의 20곳 가까운 식당을 돌고 돌아 선택한 것에 비하면 실패다.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대충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쁜 직장인들은 이렇게 점심을 먹는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주어지는 식사시간에 딱히 고민하지도, 아니 고민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한 끼로 허기를 달랜다. 식사를 하지만 만족스러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식사를 했으니 커피 한잔의 여유를 찾는다. 또는 오후의 졸음을 쫓기 위해 잠깐 10분이라도 잠을 자기도 한다. 거의 쪽잠이다. 식사는 보통 회사 근처에서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식사를 한다. 건강한 한 끼는 없다. 자극적이고 빨리 나오고 배가 부르다. 햄버거는 아니고 밥을 먹는다. 그나마 밥이라 건강한 거 같기도 하다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회사로 들어가 또 일을 한다. 그러다 문득 건강이 안 좋아지면 병원에 가기도 한다. 사실 건강한 라이프는 아니다.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 또는 세 들어 사는 월세를 벌기 위해, 구입한 아파트 담보대출을 갚기 위해, 이제 태어난 아기의 양육비와 우리 가족이 생활할 생활비와 보험료, 미래를 대비한 일정 정도의 비상자금을 벌어 놓기 위해 일한다. 그렇게 일하고 또 점심을 먹는다. 돌고 도는 하루, 일주일, 일 년... 그러다가 문득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한다. 일상에 지쳐갈 때쯤 한번 훌쩍 여행을 간다. 잠시나마 재충전이 된다. 다시 일하러 간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렇게 돌고 돌고 돌고. 3포 세대, 5포 세대... 이것저것 다 포기하면서도 일은 계속해야 한다. 힘들어도 버틴다. 그러다가 아프면 병원비를 내야 한다. 또 그렇게 때우듯이 점심을 해결한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렇게 힘든 일상이지만 나에게 작은 행복을 주고 싶다. 주말엔 내가 좋아하는 맛난 한 끼 식사를 위해 인스타도 찾고, 블로그 후기도 보고 먼길을 찾아 먹는다. 맛있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인스타그램에 소중하게 색보정을 하고 갬성 가득한 한줄평을 남긴다. 마무리는 해시태그로.
#소확행
#행복은멀리있지않아
오늘 먹을만한 식사를 하다가 아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소확행까지 갔다. 나는 소확행이 인스턴트 푸드 같다고 했다. 쉽고 편하고 빠르다. 누구나 대확행을 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군들 한상 가득 건강한 산나물이며 걸쭉한 청국장찌개를 산속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2~3시간씩 지인과 즐겁게 사는 얘기하면서 먹고 싶지 않을까. 시간이 없다. 하지만 소확행은 그나마 나에게 작은 행복감을 빠르게 그리고 확실하게 줄 수 있다. 이렇게라도 일상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소비하지 못하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집도 어쩌면 미래도 포기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현실이라는 지금 이 순간을 도저히 살아낼 이유를 못 찾겠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기까지 이어졌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만든 건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고 어느 정도의 부도 이루었을 것이다. 시간적인 여유는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면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일상이고 소소한 이야깃거리의 소재이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소확행이 절실히 필요한 생존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