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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필 Dec 17. 2022

덕후도 계를 탈 수 있다.

#13 엄청나게 조용하고 믿을 수 없게 착한





 '끌림'이라는 감정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억지로 강제할 수도 없는 개인 고유의 것이다.

 팔로워에게 팔로잉은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친해지고픈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팔로잉한 사람이 나를 팔로잉할 확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기에, 내 마음에 상응해 맞팔이 되어 준 귀인(?)에게 내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른과 어른 사이에도 궁합이 있듯이 아이와 어른 사이에도 궁합이 존재한다. 학원에서 유달리 마음이 갔던 아이들의 공통점은 차분히 자신의 것을 해내는 아이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부분 '자신의 것'을 해내려고 하는 아이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반복되는 학원 일도 아이들과의 기싸움도 지긋지긋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내 새끼'들 덕분이다.












 내가 아는 두 명의 '린'이는 위와 같은 부류의 아이들이었다.

 큰 '린'이는 올해로 중3, 작은 '린'이는 올해로 초4. 지금은 두 명 다 내 품을 떠났지만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꼭 이름에 '린' 자를 넣어야겠다 다짐할 정도로 예뻐했던 아이들이었다.






 큰 린이를 만난 것은 린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린이가 수업을 듣는 시간대는 린이 말곤 수강생이 없어 단 둘이 오붓한 수업을 즐길 수 있었다. 전교 1등의 관상을 갖고 있는 린이는 늘 최선을 다했다.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가 린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또래보다 정답을 잘 맞혔고, 글쓰기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워낙 잘하는 학생이다 보니, 이 정도 되는 아이를 내가 가르쳐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나마 글을 끼적일 줄 아는 잔재주로 선생님의 체면을 세웠다.



 중학교 2학년 첫 내신 기간, 당시 내가 담당한 학생들의 학교가 전부 달라 부득이하게 린이는 다른 반 선생님께 맡기게 됐다. 한 달 후, 혹시나 했던 린이의 성적은 역시나 올백. '말로만 듣던 걔'가 바로 린이였다. 경이로운 생명체를 보는 나의 눈빛에 린이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이 정도 되는 친구라면, 자신의 실력에 우쭐할만하건만 린이는 처음 만났을 때나 마지막에나 참 예의 바르고 속이 깊었다. 워낙 내색을 안 하고 아쉬울 게 없을 아이라 나에 대한 마음도 특별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등원하자마자 수줍게 무언갈 건넸다.









 초코바 하나가 뭐가 대단하겠냐 싶겠지만 또래 친구가 아닌 어른에게 나눌 줄 아는 아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선물 받은 초코바가, 그리고 전달된 린이의 마음이 소중해 방 한편에 보관하고 한동안 먹지 못했다.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린이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린이가 고마웠다. 너같이 올바르고 잘 자란 아이가 선생님이 되고싶다니 다행이라 말해주었다.
















 작은 린이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 3학년이 되기 전, 겨울방학이었다.

 린이는 또래보다 컸기 때문에 겉으로 봤을 땐 4학년이나 5학년 정도로 보였다. 린이는 그런 게 싫었던 건지 자신의 학년을 많게 본 거에 대해 시무룩해했다.


 그땐 학원 일도, 선생도 처음이었기에 아이들 학년과 이름을 외우는 게 참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외우기 쉽지 않지만 학교, 학년 이름을 암기하는 요령은 생겼다. (헷갈리면 일단 부르지 않는다.)



 문제는 작은 린이와 꼭 붙어 다녔던 아이의 이름이 린이와 비슷했다.

 몇 번이나 린이를 그 아이 이름으로, 그 아이 이름을 린이로, 엉뚱한 제3의 이름으로 부르기를 여러 번.

 순수한 동심을 깬 극악무도한 어른이 된 것을 깨달은 이후로 린이의 이름만큼은 실수하지 않게 됐다.




 작은 린이도 큰 린이처럼 또래에 비해 잘했지만 그 '잘'하는 것의 바탕엔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늘 한결같은 자세로 조용히 자신의 공부를 하던 작은 린이.

 린이가 오는 시간대는 늘 아이들이 많았기에 기본적인 돌봄 외에 다른 것은 해줄 수 없었는데 그것마저도 린이는 늘 감사해했다.





일주일 내내 설사했던 시절, 애기한테 설밍아웃 당함...


 내가 예뻐하는 내 새끼가 똑같이 나를 좋아해 준다니...



자리를 비우면 언제나 린이가 붙여놓은 스티커가...�









 내가 특별히 좋은 선생님이라 이런 아이들이 내게 온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요즘 애 XX', '맘 X', '노 X네', '김 X사'.

 나 아닌 타 집단에 대한 혐오만이 남은 이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싸우고 혐오해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인터넷에 올라오는 요즘 애 XX와 부모에 대한 혐오의 홍수와 눈총에도 건강하고 올바른 아이로 길러내기 위한 보이지 않은 부모님들의 노력과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인터넷 속 세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세상을 배워야 한다고.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보고 배울 현실이 인터넷 속 혐오로 가득한 세상이 아닌 인정과 화합이 가득한 이곳임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나 부모의 세계에서나 집단을 해치고 이기적으로 구는 타인들로부터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덕을 바로 세우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자기 것만 챙기는 것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고 나눌 줄 아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예시를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부모들이 아이에게 우선적으로 알려줘야 하는 가르침이다.



 

 내가 특별히 더 예뻐한 '내 새끼들'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신을 아끼고 타인을 존중하며 자랄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장차 어른이 될 내 새끼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될 것 같다.







작은 린이가 준 다꾸 선물

















크리스마스이브.


설레는 크리스마스이브.




"나 오늘 생일이다~" 주책맞게 작은 린이한테 생일임을 자랑했다.


아이의 눈이 커진다.

"오늘이 생신이세요?"


"응~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이다~ 신기하지~?"

생일 자랑만 실컷 하고 일을 하러 갔는데 잠시 뒤 린이가 다가온다.

린이의 손에는 쪽지가 들려있었다.








'선물을 준비 못했어요. 죄송합니다.ㅠㅜ'


미... 미안해 린아...

뭐 받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데...


철없는 선생님의 주책에도 작은 린이는 순수하게 제 맘을 건넸다.

(나란 인간 나쁜 인간...)







 

큰 린이, 작은 린이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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