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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Apr 23. 2019

분홍 날개- 2화(종결)

 15일째 아침이제 오전 8시에 기상하는 소연은 어제 핑크가 주고 간 소설책 <제인 에어>(핑크가 전날 가지고 온 물건이며 그녀가 처음으로 읽은 문학책이었다)가 머리맡에서 사라졌음을 확인했다역시나 다음날이 되면 사라지는 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달그락달그락 주방에서 누군가가 요리하는 소리가 났다소연은 조심스레 주방으로 갔다진귀한 광경이었다밥솥 위에는 핑크가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조리대 앞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분주하게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핑크는 소연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 주방 어딘가로 사라졌다

“엄... 마...?”

소연이 일어났구나.” 

 엄마는 주방 일을 멈추고 소연을 향해 미소 지었다.

엄마 핑크... 아니 고양이가... 엄마를?”

고양이라니?”

 소연은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얼굴머리카락을 만져보고 더욱 가까이 가서 그녀의 향을 맡았다엄마는 좋아 보였다.

소연아이제 달리기는 하지 않는 거니?”

안 해달려도 달려도 닿아지지 않으니까엄마 거기는엄마가 계신 곳은 어때요?”

여긴 하루 종일 벚꽃 잎이 떨어져어느 날 왕벚꽃나무에서 커다란 꽃잎들이 떨어지길래 떨어지는 꽃잎을 잡았더니 어느새 여기 와있지 뭐야.”


 엄마가 차려준 아침 밥상에는 그녀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로는 만들 수 없는 반찬들로 가득했다소연이 엄마의 요리 중 가장 좋아했던 잡채도 있었다소연은 엄마가 가득 차린 한 상을 깨끗이 비웠다.

엄마 음식 먹으니까 입맛이 다시 도는 것 같아.”

 모녀는 5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이야기했다소연은 지난 2주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핑크 덕분에 떠올린 지난 시절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어머니는 회사 동료였던 아버지와의 연애시절부터 결혼 후 진급이 빨랐던 어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삐걱대기 시작하던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소연이 초등학교 운동회 때 계주에 나가 앞선 두 명을 제치고 일등을 했던 얘기를 할 때 모녀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추억 속에 빠져 이야기하는 동안 밤은 찾아왔고 소연은 어머니와 나란히 누웠다잠을 자지 않기 위해 어머니에게 계속 이야기를 걸었다중얼중.... 얼.... 중................ 얼...............................


소연은 다음날 아차 싶은 마음에 움찔거리며 잠을 깼다

엄마엄마?”

집안의 적막이 모든 소리를 잡아먹은 것 같았다그녀는 낮은 한숨과 함께 노트와 펜을 꺼내 들고 핑크를 기다리며 어제의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고개를 든 소연은 방 한가운데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핑크와 눈이 마주쳤다오늘은 어떤 걸 가져왔을까 핑크를 유심히 살폈다.


투욱투욱


은근한 분홍을 띤 핑크의 날개가 바닥에 한쪽씩 떨어졌다날개 한 쌍을 가지런히 남긴 채 핑크는 안방 뒤쪽 어딘가로 유유히 사라졌다


핑크는 다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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