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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현정 Jan 05. 2020

진실 그리고 구원

김은국 작가의 소설 <순교자>

김은국 작가의 소설 <순교자>는 그가 32세 때 쓴 첫 장편소설이다. 전쟁의 상처와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1964년, 그 시절 젊은 청년이었던 작가가 전쟁이라고 하는 인간성의 극한에 달하는 배경에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625 전쟁 직 후 평양에 국군이 진군을 설치했을 무렵 공산당에게 잡혀간 14명의 목사들 중 12명이 처형을 당하고 2명이 살아 돌아온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 속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추적해가면서 ‘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소설 속 화자인 나(이대위)와 14명의 목사 중 살아남은 신목사는 모두 진실을 말하는 것과 대의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신목사는 처형당한 12명의 목사들이 사실 죽음 직전 신을 부정하고 현실과 타협하려 한 배교인들이라는 사실을 목도했다. 신목사는 또한 그들 중 유일하게 공산당 간부와 맞서서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12명의 목사들은 진정한 순교자였고 본인이 배신자였다고 공표한다. 그리고 순교자들은 이러한 자신조차 용서해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대위 역시 중공군이 내려오는 상황에 평양을 버리고 퇴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정보군 소속으로서 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입장이 된다. 국군은 마치 전쟁에서 시민들을 지켜줄 것처럼 전단을 뿌리고 주민 자치행사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위장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시민들을 지켜줄 수 없는 현실에서 진실을 얘기해 불안과 공포를 주느니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고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신목사는 신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나약하고 힘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거짓으로 12명의 순교자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들 순교자의 힘은 더 많은 기독교인을 생성해내고 전쟁 속에 희망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만큼 많은 힘이 된다. 신목사는 이를 알고 있기에 스스로 유다가 되고 진실을 감춘다. 더한 사실은 신목사가 죽음 이후에 하느님의 세계는 없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다른 배교자들처럼 살아오며 목도했던 인간의 고통과 비극적인 삶은 신이 존재한다면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진실은 때론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내용으로 바뀐다. 그것이 만약 좋은 의도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더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진실은 만들어진다. 


신목사는 순교자로 날조한 일 이후에 더욱 활발하게 활동한다. 순교자들을 내세워 교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수백 명의 피난민들을 교회로 받아들여 그들을 보살핀다. 그는 남쪽으로 피신할 기회가 계속 주어지지만 흔들리지 않고 평양에 남아 교인들과 함께한다. 후에 남쪽의 외딴섬에서 북에서 피난 온 신자들을 위해 교회를 운영하는 고 목사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북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이 신목사를 봤다는 것이다. 결핵 말기여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목사가 북한 여기저기서 목도된다는 것은 그가 예수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아이러니 이게도 신을 부정한다는 진실을 감추고 있는 신목사는 신의 부정과 상관없이 그의 온전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예수로 부활한 것이다. 


소설은 인간이 신을 향해 질문하는 많은 세상의 부조리한 일들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얘기한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시키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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