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끝없는 욕심

[끄적끄적 한 페이지] 읽고, 쓰고, 사색하는 서가일상

by 오직서가


30평대 아파트에 내 공간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부부가 쓰는 큰 방엔 4단 붙장이장과 더블 침대, 작은 화장대 하나 들이니 꽉 찼다. 나머지 두 방은 세 아이 짐과 물건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7년 전 천안에선 식탁도 두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고, 집을 짐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 않다는 작은 몸부림이었다.


식사 때도 불편하지 않던 식탁을 내 공간의 필요성을 느낄 때 간절히 원했다. 작은 다이어리 펴 끄적댈 작은 나만의 공간에 대한 소박한 꿈. 회사 사람들에게 물려받은 전집으로 가득 찬 책장, 노란 파란 원색의 뽀로로 매트, 4단 보관함에 가득 차다 못해 여기저기 널브러진 장난감과 레고 조각들.


작은 내 공간 하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안방 베란다를 샅샅이 살폈다. 대가족 텐트, 캠핑용 매트와 의자 다섯 개, 크고 작은 냄비, 화로대, 겨울 난로와 주방용품들까지. 캠핑용품으로 점령당한 공간을 뚫어지게 본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여기에도 네 자리는 없단다...'


등산 가방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접이식 의자 하나를 안방 베란다 창문 앞에 뒀다. 퇴근해서 세 아이 밥 차려주고 집 정리 하고, 설거지도 끝내고, 아이들까지 다 씻겨 잘 준비를 마친 어두컴컴한 밤. 접이식 의자에 앉아 창문 열어 밤공기 쐬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식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책도 보고 사부작사부작 이런저런 것들을 할 수 있게...'




사려니 애매하고 안 사자니 아쉬웠던 식탁을 인천으로 이사하며 구입했다. 드디어, 나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잠들기 전 식탁 한 편에 둔 필기도구와 책은 다음 날 새벽 독서를 위한 루틴이었다. 3년쯤 식사와 공부 공간으로 식탁을 겸용 사용하다 보니 슬슬 책상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도 책상 생각뿐이었다.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어떻게든 책상 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이리저리 집안을 살폈지만 마땅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안방에 있는 4단 붙박이장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 건 남편이었다. 언제든 떼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장롱. 한쪽 벽으로 인식하며 살아선지 분리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스스로 좁은 틀에 생각을 가둔 채 살고 있었다.


붙박이장 하나 떼내고 작은 책상을 들였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신중하게 진열품 하나하나를 고민하고, 스탠드 색상과 밝기를 고르고, 책 올려놓고 읽을 거치대를 샀다.


4개의 방, 하나의 거실을 합친 것보다 작은 내 책상이 넓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온라인 수업마다 노트북 들고 아이들 방을 전전하지 않아도 식탁에서 가족 오가는 소리에 예민해질 필요가 없었다.


장롱 한 칸 버리고 책상 들인 지 3년쯤 됐으려나? 양쪽 높게 쌓인 책, 앉을 때마다 의자를 다 뺄 수 없는 비좁음 슬슬 신경 쓰였다.




'장롱 한 칸 더 뺄까?'

뭐든 처음이 어렵다. 한쪽 벽면 다 차지하고 있을 땐 분리하면 큰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하나 빼고 나니 하나 더 빼도 괜찮겠다 싶었다. 계절 옷, 겨울 패딩, 캠핑 용품들을 더 줄여 공간을 만들었다. 옷 장 한 칸을 빼내고 세로로 둔 책상을 가로로 틀었다. 걸리는 것 없이 쑥쑥 빠지는 의자와 같은 책상이 맞나 싶게 넓어진 책상까지.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갈수록 욕심이 생긴다.

책 둘 공간을 더더더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독서 공간을 더더더 근사하게 꾸미고 싶다는 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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