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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2. 2019

혁신학교,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포럼 & 이슈 / 오윤주_숙지고, 새로운학교네트워크 경기지부 연구위원장

    

        

1. 들어가며      


한국 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시작된 혁신학교 운동은 기대와 찬탄, 의구심과 경계어린 견제를 한 몸에 받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혁신학교 운동은 그간 우리 교육과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 왔고, 어디쯤에서 멈춰 서 있으며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조국 사태를 보며,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모두가 당사자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교육에 대해 뭔가 ‘맺힌 것’이 있다. 학교가 잘못되었고, 대입 제도가 문제이며, 공교육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저마다 의견을 보탠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이 뜨거운 난상토론의 장에서 주로 논제가 되는 것은 대학입시의 문제다. 정시냐 수시냐에 대해, 무엇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인가에 대해, 입이 있는 이들은 모두 다 말을 보태는 형국이다. 정말 문제는 그것인가. 대입 제도가 공정해지면, 교육도 우리의 삶도 더 나아지는 것인가. 혹은 그 역시 다만 꼬리에 불과한가. 


진짜 문제는 우리가 ‘더불어 좋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으며, 감히 그런 삶의 형상을 그려 보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다만 ‘생존’하고자 하거나 남보다 더 잘 ‘생존’하고자 하며, 핏발 선 눈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다. ‘공정성’과 ‘정의’의 이름으로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며, 능력으로 줄 세우기를 더 정밀히 하라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능력주의의 정당성을 승인하게 되면 그로 인한 불평등 역시 승인할 수밖에 없다. 능력이 있는 자가 더 좋은 것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능력’의 인증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하는 ‘학벌’이다. ‘학벌’이 직업과 명예 등 사회의 희소 자원을 차지하는 데에 유리한 요소가 되고 그것을 갖지 못한 이들과의 경제적·사회적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진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 학벌을 따느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어떻게 제도를 바꾸어도 ‘학벌’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과정이나 수업을 바꾸고 대입 제도를 손보는 것을 넘어 우리가, 그리고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가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명사적 대전환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그 대전환을 일으키는 데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펼쳐 왔던 혁신학교 운동은 거기에 조금쯤은 기여해 왔을까? 앞으로는 얼마쯤 희망이 있을까? 


우리 교육은 여러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그 얽히고설킨 문제의 근원은 학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의 질곡과 욕망과 모순들이 압축적으로 분출되는 곳이 바로 학교, 그리고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쩌랴! 난제를 풀 수 있는 당사자 중의 당사자는 교사들인 것을.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지혜를 모으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2. 혁신학교 운동의 성과      


1) 교사의 주체화 - ‘아래로부터의 교육 정책의 출현      

 

혁신학교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교사가 교육 개혁의 주체임을 각성하며 학교를 바꾸어나가는 데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무수한 교육 개혁의 흐름 속에서 교사는 교육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곤 하였다. 교사는 새로운 시대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낡은 교육을 하고 있으므로 전교사 집중 연수 등의 형태로 재교육하거나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정책을 일괄적으로 내려보냄으로써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교육과정이 바뀌면 학교마다 교과마다 집합형 대규모 연수가 실시되었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교육과정이 내려오면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교사는 9시 뉴스를 통해 교육에 관한 주요 제도가 바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무수한 공문들이 학교로 쏟아지고, 무언가를 하라고 시달하고, 그것을 수행했는지 결과를 보고하라고 채근했다. 그것은 종종 교사들이 교실에서, 학교 공동체에서 만나는 절실한 문제들과는 거리가 멀었고, 현장의 고민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고담준론(高談峻論)들이었다. 학교의 모든 일들은 관료적 매뉴얼에 의해 수행되어야 했고, 매뉴얼에 어긋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규정을 지키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로 인정되었다. 이제까지 해 왔던 관행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로운 혁신 방안을 제기하고 그것을 실천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것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가능한지, 정말로 효과적인 것인지를 규명하고 호소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런 경험들을 하고 난 교사는 교육 개혁의 흐름으로부터 스스로 타자화하기도 한다. 교사는 변화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을 내면화하며, 주어진 지침들을 영혼 없이 준수하는 방식으로 학교에서 자기의 존재감을 최소화하게 된다. 교사에게 학교는 자기 성장의 장이 되지 못하며, 매뉴얼에 의지해 자기를 감추어야 하는 관료제적 직장으로서의 공간이 된다.  


혁신학교 운동은 그런 면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혁신학교 운동은 교사들이 교육의 주체로서 설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었다. 교사들은 교육의 최전선에서 가장 절실하게 부딪쳐 온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해 왔다. 학교에서의 시간 동안 학생들이 행복한 현재의 삶과 미래를 향한 성장에의 희망을 갖게 하는 것, 학교 공동체 안에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 삶의 교육과정을, 배움이 있는 수업을 만드는 것, 마을과 학교 사이에 긴밀한 교육적 연대의 다리를 놓는 것, 그런 일들을 함께 고민하며 직접 만들어가면서, 교사들은 비로소 우리가 교육의 주체이며, ‘이것은 우리의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교육의 주체가 된 교사들은 학교를 바꾸고, 교육의 전반적 구도 자체를 바꾸어 내었다. 남한산초나 삼우초, 이우학교 등에서 시작한 교육 혁신의 바람은 진보 교육감의 교육 정책이 되어 최근 우리 교육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교사들의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혁신학교 ‘운동’은 혁신학교 ‘정책’이 되어 이후 교육의 변화에 있어 주요 흐름을 만들어 왔다.         

  

2) 비전의 발견과 공유    


혁신학교 운동의 전개는 이후 교육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력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들은 미시적인 역량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교육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고 공유하게 되었다. 비전은 돛단배를 움직이는 바람과 같은 것으로, 변화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고 이를 구체화하는 힘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혁신학교의 초기 비전은 요약하자면 ‘삶을 가꾸는 행복한 학교’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행복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 교육이 진짜 삶을 위한 도움닫기 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일들을 교사가 주체가 되어 학교에서 해 내고 학교를 바꿀 수 있다는 것 등이 실현 가능한 이상향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초기 혁신학교들은 그러한 비전을 생생한 교육적 질감으로 구현해 냄으로써 이후 혁신학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혁신학교 운동에서는 ‘학생의 성장을 위한 교육’, ‘참학력’, ‘배움중심수업’, ‘학교 문화를 바꾸는 수업 혁신’, ‘학생 주도적 교육과정’, ‘마을교육공동체’, ‘학교 민주주의’, ‘시민 교육’, ‘인간 존엄의 교육’, ‘미래를 위한 교육’, ‘학교 자치’ 등이 주요 비전으로 제시되어 왔다. 


혁신학교 운동 10여년이 지난 현재, 학교의 구성원들은 그들이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가에 대한 공동의 토론을 거쳐 비전을 수립하고 그 비전을 토대로 구체적 교육과정이나 수업을 구성해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그 관성화를 고민해야 할 지점이며 그것이 실질적으로 작동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공동체가 ‘비전이 중요하다’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어떻게 학교의 실핏줄 하나하나에까지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은 교육에 있어서의 커다란 진전이다.      


3) 단자 인간에서 연계 인간으로네트워크와 공동체의 재발견     

  

한국의 교사들은 각각의 교실 안에 고립된 채로 존재해 왔다. 교실 안에서 교사가 직면하는 교육적 난관들은 교사 개인의 역량에 의지하여 해결되어야 했다. 교사는 때로 난관의 극복에 성공적으로 대처했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기도 하였다. 동료 교사와의 연대나 공동의 해결 방안 모색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았다.  


교무실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료적 위계질서와 포드 형으로 세세하게 나누어진 업무 분장의 칸막이 속에서 교사 개개인은 학교 교육 전체에 대한 큰그림을 공유하지 못하고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였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은 각각 동상이몽의 관계 속에서 ‘이것은 왜 이런가, 저 상대방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가’ 하는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학교는 지역과 분리되어 존재하고, 사회와도 좀처럼 접속하지 못했다. 


혁신학교 운동은 각각의 단자에 갇혀 있던 교육 주체들을 연계형 인간으로 재정립시켰다. 교사들은 네트워크와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역량을 극대화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었다. 어떤 문제가 공동의 문제가 되면 해결의 과정은 한층 수월해졌으며, 설혹 그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불치의 난제라 하더라도 해결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정서적 지지와 신뢰감이 생겨났다. 그것은 ‘연대의 연결고리’로서 네트워크의 발견이며, 개인을 억압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을 지지하고 품어 주는 공동체의 재발견이었다. 지역과 학교를, 사회와 학교를, 학교와 학교를, 교사와 교사를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되기도 하면서 혁신교육은 이른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게 되었다.    

       

3. 앞으로의 과제 – 교사를 중심으로       

이상에서는 혁신학교의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며 그 성과를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혁신학교 운동은 돌파해야 할 문제 지점을 안고 있으며 미완의 과제로서의 운동이다. 혁신학교 운동의 성과가 여전히 일부 학교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도 있으며, 혁신학교 운동이 사회 전체의 변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혁신학교가 그간 이룬 것을 넘어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고자 한다면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할 것인가. 이 장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중심으로 하여 혁신학교 너머 혁신학교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1) 교사 주체에서 교사-’ 주체로        


혁신학교 운동은 진보교육감의 약진과 함께 본격적으로 정책화하면서 급격한 확산의 경로를 밟게 된다. 초기 혁신학교들이 지향했던 가치나 교육적 실험들은 혁신 중점 과제의 방식으로 제도적으로 체계화되었고, 혁신학교 철학 및 혁신중점과제를 구현하는 혁신학교들이 공식적으로 지정되고 출범하면서 괄목할 만한 교육적 전환점이 생겨났다. 혁신학교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혁신학교 운동을 자발적으로 추진해 온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이들은 교육청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혁신 리더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교육과정 재구성, 수업 혁신, 돌봄과 존중으로서의  생활지도, 전문적학습공동체 형성이나 학교 민주주의 정책 등이 적극적으로 장려되고 지원되었다. 교사들의 자발적 움직임만으로는 쉽지 않았을 일이 혁신학교 지정이라는 공식화된 정책으로 쉽게 풀릴 수 있었다. 중등교육에서 지필평가 중심의 수업 및 평가 문화가 그 변화 과정에서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기도 하였으나 자유학기제가 도입된 순간 중학교의 수업과 평가 장면들이 극적으로 변화한 것 역시 정책이 가져 올 수 있는 혁신적 변화의 한 사례일 것이다. 


새로운학교네트워크 등의 교원단체는 그 과정에서 혁신 정책의 비전과 핵심적 내용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그룹으로서 존재해 왔다. 교사 개개인의 혁신적 역량은 그들이 모여 ‘교사-들’이 되었을 때 더욱 명료화되었으며, 보편적인 힘을 가진 교육정책으로 이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의미와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전면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혁신교육 너머 혁신교육을 바라보고자 할 때, 더 많은 교사가 개개의 단자로서 흩어져 존재하지 않고 단단하게 연계된 ‘교사-들’이 되어 교육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교사-들’은 교육의 실질적 주체로서 교육 정책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한편, 교육 정책이 제도화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왜곡되는 경우 준엄하게 이를 비판하는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아울러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쌓아온 이제까지의 안정적 성과들에 안주하지 않고 성찰에 성찰을 거듭하며 새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러한 ‘교사-들’이 존재할 때 혁신교육은 고형화된 정책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발성에 의해 생동하는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이다.          


2) 미래를 바라보는 교사사회 속의 교사      


교사가 가져야 할 역량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체로 수업 전문성, 학생 생활지도에서의 전문성들을 이야기해 왔다. 자신의 수업과 교실을 장악하고 학생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이며 바람직한 교사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유능한 교사’를 넘어 ‘세상에 꼭 필요한 교사’, 혹은 ‘꼭 필요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가 되고자 한다. 교실 밖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현재의 필요를 넘어 미래의 요구까지 선제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다시 현재의 교실로 돌아와 진정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교사는 먼 미래와 가까운 미래를 함께 보며 그로부터 현재의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를 보면서 교사는 ‘당장 우리 눈앞에 있는 이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학생들은 졸업 후에 어디로 가며,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이를 위해 오늘 이 순간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 우리는 바로 그 교육을 하고 있는가?’하고 묻게 될 것이다. 


먼 미래를 볼 때 교사는 ‘이 교육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우리가 오늘 하는 이 수업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면서 지금 이 순간 교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교사는 또한 교실 속의 교사인 한편 사회 속의 교사로 존재해야 한다. 교육이 진공의 상태로 혼자 존재할 수 없기에, 교사는 교육의 의제를 사회로 제출하고, 사회는 그에 응답하여 교육의 변화를 지원하는 선순환 시스템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의 실천은 대체로 교육의 구체상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교육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여타의 사회 전 분야에 대해서도 시민으로서 행동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우리 사회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실천의 일환으로 교육을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교사들은 교육과정 정책이나 학제 개편 등 학교 밖 거시적 담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또한 교사는 교육과정 구성 및 수업, 평가권 등 학교 안 미시적 담론들에 교사의 자율적 결정권을 요구하고 얻어내어야 한다. 학교 공동체를 민주적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계속해 가고, 필요한 경우 요구하고,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교실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살며 사회의 변화를 함께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교육으로 참여하며, 교육을 위해 사회 전반의 일들에 관여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교원단체나 연구 모임에 참여하는 일도 그런 일들 중 매우 중요한 하나가 될 것이다. 교사가 제출한 교육의 의제가 사회 전반과 문화의 제반 양상을 뒤흔들며 울림과 균열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삶과 학교와 교육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의를 도출해낼 때 교육의 변화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교육적 의제가 사회적으로 돌출되었을 때 학교 안팎의 온도차가 얼마나 큰가를 목도해 오지 않았는가. 교육에 대한 상호 이해 및 합의의 지점을 만들어가는 것은 지극한 난도의 과업일 것이다. 시민사회는 때로 교육이나 교사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며, 지나간 시대의 교육적 모순을 현재의 교육 실태라 착각하면서 엇박자적인 해법을 내놓기도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때로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개인적 이익과 공동체적 이익 사이에서 흔쾌히 개인적 이익을 택하는 방식으로 교육적 의사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가까이는 학생을, 더 나아가 학부모를, 시민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에게 적대적인 이들까지 설득하거나 최소한 공감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학교 안에서의 교육 개혁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 교사들은 학교 너머로 목소리를 내어야 하고, 그 너머로부터 온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를 포함해 시민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장으로 나아가 적극적으로 교육 의제를 만들고 실천으로 그 의제에 대한 답을 궁구해 나가야 한다.

              

3) 교사 본연의 자리에서 교육의 구체적 결실로서 신뢰를 구축하기      

  

교사가 미래를 바라보며 사회 속에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교실로 다시 돌아와 학생들 앞에 교사로 온전히 서기 위한 것이다. 혁신학교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교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도, 매일의 일상 앞에서 최선을 다해 교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학교가, 이런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타자에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혁신학교 운동의 지지와 설득력은 여기에서 솟아났다. 마음을 담은 교사들의 노력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변화하는 학생들의 존재 그 자체로 학부모들에게 전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교사에 대한 신뢰가 학부모 및 시민사회에 물들어 가고, 이들이 교육 개혁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 것이다.   


교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학교에서의 일과를 매일 산다. 과제를 해 왔는지 점검하고, 잠자는 아이의 어깨를 흔들어 깨우며, 투닥투닥 싸우는 아이들을 뜯어말리기도 하고, 함께 어질러진 교실을 청소하고, 지각한 아이를 불러 다음부터는 지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타이르기도 해야 한다. 교실 구석에 앉은 어두운 얼굴빛의 아이가 영 마음에 걸려 애닳아하기도 하고, 아이의 거친 응대에 상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아파하기도 하며, 여전히 모자란 것만 같은 자신의 수업을 어떻게 진짜 배움이 일어나는 시공간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학생들과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교사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시시하고 낮은 자리에 위치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교육의 가장 뜨거운 최전선은 바로 여기, 학생과 교사가 만나는 이 순간에 있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일들은 이곳에서 비롯된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인 것이다.      


4. 필요한 구조들       


1) 온 지구가 함께 하는 교육 – 교사 역량이 아닌 교육력으로      


교사의 힘만으로 아이를 온전히 자라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로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온 지구의 관심과 조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로 그 어려운 일은 아이와 대면하는 교사의 역량으로 오롯이 남겨지곤 한다. 가령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는 때로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을 가진 학생을 교육해야 하는 난제와 만나기도 하고 학부모의 민원 등으로 감당키 어려운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심화된 학습 능력 결손으로 인해 도저한 무기력에 빠진 학생들이 하루종일 엎드려 잠을 자고 있기도 하다. 이런 경우 교사들은 대개 개인적 역량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 해 왔다. 그것은 때로 성공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교사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훼손하며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원한 과제로 남겨지기도 한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디 마을뿐이겠는가.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충만하며 공동체를 위해서도 종요로운 존재로 조화롭게 자라나도록 하고자 한다면, 그를 대면한 한 교사뿐 아니라 가정, 학교, 마을, 학교 간 네트워크, 시청, 지역 교육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집합적 교육력이 총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연대’이고 ‘네트워크’이며, 요소요소간의 유기적 연결 관계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다. 학교가 힘겨운 아이는 지역의 센터나 사회 기관, 마을의 교육 기관 등에서 교육적 지원을 얻기도 하여야 한다. 교실의 수업에서 적응이 어렵다면 같은 학교 내에 설치된 ‘대안교실’에서 인지적 수업만이 아닌 맞춤형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자신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교육적 문제를 만났을 때 즉각적이고도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 안에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과의 상담이나 폭력 상황에 대한 대응, 학습 결손에 대한 지원, 학생의 진로에 맞는 교육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다른 궤도들’이 학교와 교사, 학생의 주변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그 교육력의 그물을 어떻게 촘촘하게 치고 함께 작동시킬 것인가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2) 교실과 세계를 넘나드는 교사  

교사의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존재 가능성을 다각화하기      


학생을 성장시키고자 한다면, 교사 역시 성장하는 존재여야 한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 그리고 학교 밖에서 교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의 일상을 사는 것이 교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학교를 ‘행정 기관’이 아닌 ‘교육 실행 기관’으로, ‘상하위계적 관료 조직’이 아닌 ‘민주주의적 전문가 공동체’로 본연화해야 한다. 학교를 학습 조직화하고, 민주적 공동체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교사는 그가 속한 학교에서 교육 비전을 함께 만들고, 그에 따른 학교교육과정과 교과교육과정을 공동으로 구성하며, 수업의 실천과 그 결과에 대한 성찰까지를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 교사로서 성장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학교를 ‘학습 조직’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바탕에는 교사의 목소리와 교육권이 존중되는 학교 민주주의가 기본 전제로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교사는 학교 밖에서도 성장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교실에 포박되지 않고 거시적인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학교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교사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대학원에 다니거나 스스로 배움의 장을 찾아 가며 성장을 도모한다. 모래알 같은 교사 개인이 아니라 교사라는 집단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교원단체에 소속해서 활동하며 사회적·교육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제도나 정책의 차원에서 이러한 기회를 장려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연계하는 연수 파견을 활성화하고, 사회 단체 및 사회적 기업, 교사의 전공과 연관된 기업 또는 연구 기관 등으로 파견 근무를 하도록 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교사는 재교육의 장에서, 네트워크 공간에서, 지역의 마을공동체에서, 지자체의 교육 센터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교직 사회의 단일성을 극복하고 풍부한 교육적 역량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교사 그룹 중 극히 일부의 교사들은 스스로 연수휴직 또는 고용휴직을 하거나 연구년 교사, 파견 교사, 교육청으로의 장기 휴직, 교원단체의 상근자 등으로 존재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교사의 성장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교사의 교육적 상상의 폭을 넓혀 주었다. 교사 연구년의 도입, 순환제 전문직의 도입 역시 그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성장하려 노력하는 교사에게는 다채로운 가능성의 길이 열려야 한다. 공부하는 교사, 실천하는 교사, 다른 영역을 탐험하고 돌아온 교사, 이질적인 집단과 적극적으로 만나온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지원하며, 교사가 데려온 다양한 삶의 경로들을 학교 안으로 다시금 끌어들인다면, 미래를 향한 교육의 길은 한층 더 깊고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5. 나오며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고 한다. 욕망의 덩어리이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들이라 한다. 그래서 교육도 사회도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한가? 나와 당신이 여기 모여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싶은 교육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이야기들은 생명력을 얻고 현실이 되기도 할 것이다. 부족하고 용렬한 인간의 하나인 우리를 말의 힘으로 다잡아 세우며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어려운 길을 가게도 할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상상의 힘이며, 모여 앉은 자리의 힘이다. 


학교란, 교사란, 그런 일들을 하는 곳이 아닌가? 미래를 상상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며,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달고 갈 날개를 최선을 다해 키워 주는 곳. 그리고 그런 일들을 도모하는 학교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는 바로 우리가 그리던 꿈의 미래가 아닌가?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이상적인 사회의 구현 가능성을 탐색하는 곳이 학교가 아니라면, 그 어떤 곳에서 이런 일들이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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