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사람 / 강범식_운산고 교장
이번 호 정책·사람은 교장공모제 이야기입니다. 정책의 내용소개보다는, 현재 공모교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두 분의 교장선생님 이야기를 통해 정책과 현장이 만나는 순간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1. 비교적 약간 성공한(?) 자기소개
중학교에서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과제를 안고, 2011년부터 호평중학교에서 4년동안 공모교장을 했어요. 비교적 약간 성공을 했다 생각하고(하하), 이번엔 고등학교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2015년 3월부터 지금까지 운산고에서 교장을 하고 있습니다.
2. 공모교장으로서의 신념이 실제로 학교현장에 실현되었다, 라고 느꼈던 순간은?
가장 가치를 둔 것은 민주적인 학교운영이에요. 그 시발점으로 민주적인 부장회의와 교무회의를 변화시키고자 했어요. 교사들이 안건중심으로 회의하고 나는 의장이 되어 진행을 하는 방식으로 시작 했어요.
교사들은 결정된 안건들이 실제로 발현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내가 이 학교의 주인이구나”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주인의식은 필연적으로 자발성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지요. 이런 모습들 보면서 “혁신학교 하기를, 참 잘했구나” 생각했죠.
또는 교사들끼리 찬반이 팽팽할 때도 있어요. 이럴 때는 다수결로 쉽게 결정하기 보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내는 우려점에 대해 재토론의 기회가 있어야하고 결국 합의할 때는 찬성과 반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합의지점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교사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반대의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제스추어가 모든 교사를 존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마련이니까.
3. 난관에 부딪혔을 때 장착하고 싶었던 무기는?
원시부족의 돌도끼 리더십이라는 것인데...지금은 머 장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하하^^) 구성원들 중에 공적인 공간에서 옳고 그름을 중심으로 논의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해를 먼저 앞세우고 감정적으로 나올 때, 또한 그 반감으로 학교운영의 방향과 철학까지도 폄하해서 언급할 때, 참 난감하더라. 한 일주일은 속이 부글부글 끓고, 하아. 내가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말 힘든 순간으로 기억된다.
얼마 지나서 분노의 거품이 좀 걷히고 저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 그 때 발견한 문구가 아즈텍 문명 원시부족장을 일컫는 말이 “다 도와주는 이” 이야. 거기서 내가 깨우쳤지. 돌도끼 리더십..
내가 교사들 편에서 도와주고 함께 하려고 교장을 하는 건데 내가 괜히 사람을 미워하기까지 하고 다른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건데. 참 어리석다 내 자신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울 때 다 도와주자. 이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자. 생각을 많이 했지.
선생님들도 나에 대해 불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을 더 깊고 세세하게 살펴주고 알아봐줘야 하는데 그리고 특히 학생생활교육에서 교사들이 힘들어하는 빈틈을 좀 더 메워줘야 하는데, 내가 더 노력을 해야지 뭐.
4. 기억나는 안건은?
공모교장하면서 4년 동안 제안한 안건 중에 2개가 부결됐는데 그 중에 하나가 1학년 수련회의 모습을 바꿔보자 였어요. 학급별로 체험학습을 가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사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울 때 괴로운 학생은 따돌림 받는 학생이잖아요. 이 아이들도 즐겁게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서 함께 계획도 짜고 소외되는 친구 없이 역할도 정하면서 갔으면 했는데.. 단점은 교사가 고생스럽죠, 그래도 그 효과를 생각하면 일률적인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위탁해서 가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해서 안건을 직접 제안했어요.
교사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는데 시간이 갈수록 눈앞에서 점점 부결될 것 같은 느낌(?), 안건을 낸 나는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교사 2/3이상이 '학년전체의 공동체의식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고 수련회도 요즘은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이러한 이유들로 안건이 부결되었어요.
사실 수련회의 출발점은 극기 훈련이고, 극기 훈련은 5공 시절에 학생들의 정신상태가 나약하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이 수련회로 변한 것인데.. 일제히 같이 가는 것은 지양하고 싶었지만 부결되어서 현실을 그냥 인정했죠.
근데, 일주일 뒤에 어떤 교사가 그때 그 수련회 안건 부결된 것을 받아들여준 것에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2학기 끝날 때쯤 1학년도 학급별로 가자는 의견이 스스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생각했지. 그냥 부결되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 때 부결된 것에 대해 내가 쿨하게 인정하고 교사들을 한번 더 끌어안은 것이 바로 다른 시작의 씨앗이 되었구나.
5. 공모교장으로서 현재, 고민의 지점?
구성원들의 기대치에 부합해야 하는데 나 스스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많이 힘든 건 사실이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은 혁신학교 지속가능성에 대한 부분이다. 2월 전입교사 연수로는 부족하고 결국은 학교생활 속에서 변화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존 교사들의 팔로우십이 리더십으로 변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팔로우십을 리더십으로 전환시키는 체계적인 고민 없이 학년실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변화하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수업, 생활교육, 상담 모두 다 발맞추어 혁신학교 교사로서의 모습이 빠른 시간 안에 갖추어지기는 힘들다. 특히 수업에 대한 철학공유가 우선인데 고등학교가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대입에 대한 부담감, 10년 넘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을 극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수업에 대한 철학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쉽게 공감하지 는 않는다. 받아들이더라도 한 순간에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가장 주력해서 고민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것 밖에 없으니.. 지속가능한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하면 정착시킬 수 있을까. 늘 고민이다.
6. 앞으로 공모제 교장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과 비판적 제언 등
처음의 공모교장제를 실시했던 배경에 대해 먼저 상기해보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장만족도가 낮다는 통계가 나왔고, 우선 소수로 교장공모제를 해보았더니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람직한 교장의 모습에 대한 열망은 전국적 흐름이었고 여야를 떠나 중차대한 정책이고 시민들의 요구다, 라는 배경으로 한나라당 시절에 법제화가 되었다.
앞으로 공모교장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려면 우선, 단계적으로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심사제도의 개선이다. 심사위원이 12명이면 그 중에 교사는 1/3정도이다. 이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는 사람들 의견을 가장 많이 반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성을 가진 교사들과 실제 교육활동의 주인공인 학생들의 눈이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기존 참관인 제도에서의 학생과 해당 학교 교사의 수를 늘려야 한다. 공정성과 현장성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심사위원의 비율과 대상이 확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