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사유 / 이동준_가평교육지원청 장학사
되돌아보면 누구에게나 평생 잊히지 않는 학창 시절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지금까지 기억나는 오래된 학창 시절의 기억이 있다. 수업 시간의 기억이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니까 1983년도의 일이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어느 국어시간, 그날따라 국어 선생님이 윤동주의 이야기를 이제 막 여드름이 돋기 시작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들려주셨다. 너무 오랜 날의 일이라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해주셨던 모든 이야기들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윤동주라는 젊고 순결했던 시인이 적국의 감옥에서 젊은 나이에 일본 경찰에게 생체 실험을 당하다가 억울하게 타국의 감옥에서 순국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내게 선생님의 이야기는 너무 강렬했다. 순수한 청년 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에 대한 끝 모를 적개심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정말 신기했던 일은 비슷한 무렵 우리 반 담임이셨던 미술 선생님이 수업 시간 교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낭송해 주신 일이었다.
중년의 배나온 선생님이 낭송해 주시던 목소리를 통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는 시인의 목소리가 중학생인 나에 가슴에 파도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수업시간들 이후 나는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는 좀 다른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윤동주의 시집(정음사 판)을 읽기 시작했고, 그의 시들을 일기장에 옮겨 적으며 시인과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 때 만났던 시들이 ‘서시’, ‘별 헤는 밤’과 같은 시들이었다.
윤동주를 만나면서 그와 함께했던 송몽규와 문익환, 그리고 북간도 용정의 독립지사들의 이야기들, 우리말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최현배 선생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윤동주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하는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우연과 같았던 어느 초여름 국어 선생님의 수업은 그렇게 나를 문학의 세계로 안내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어른이 되어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중학교 수업 시간의 감동이 내 영혼 어딘가에 남아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우리의 학생들도 그들의 영혼에 오래 기억되는 수업을 학교에서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수업 시간에 소수의 아이들만 깨어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상에 엎어져 자는 수업이 사라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의 수업이 학생들이 몸과 마음으로 참여하는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년에 가평교육지원청에 발령 받아 문화예술 업무를 맡게 되면서 실제로 아주 소중한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평교육지원청은 작년 11월 ‘제1회 가평 THE푸른 학생연극제’를 운영하였는데 나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목격하였다.
연극제에는 초등 12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3개교 등 모두 18개교가 참여했는데 연극 공연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아이들은 가평문화예술회관이라는 좋은 무대에서 그동안 학교에서 익힌 연극 활동을 훌륭한 공연으로 보여주었다.
참여한 학교들 중에 인상적인 학교는 C고였다. 사실 이 학교는 학생들의 절반 가까이가 기초학력미달인 종합고등학교이다. 인근 남양주와 양평 등에서 학력이 뒤떨어지는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진학하는 교육청의 입장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는 학교였다. 그런데 그 학교 학생들이 보여준 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고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연극에 출연한 학생들과 짧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감동시켰다. 아이들은 연극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 같았다.
연극제 공연 얼마 전까지도 출연할 배우를 구하지도 못했고 연습할 공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연극을 완성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서로를 챙겨가며 연극을 공연했던 것이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이 생겼고 차후에 이 아이들과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약속하였다. 2016년 11월 23일 나는 C고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음의 내용들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이 아이들에게 지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교생활 그리고 현재의 학교생활을 물어보았다.
장** (유비쿼터스 전기전자과 1) :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학교가 재미없었다. 수업 내용이 어려워서 공부하는 것이 싫었고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주로 잤다. 연극한 지는 6개월 쯤 되었는데 연극은 몸으로 움직이면서 공부하는 것이라 재미있다. 연극을 하는 동안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 (유비쿼터스 전기전자과 1) : 중학교 때 공부가 어려워서 학교가 재미없었다. 연극도 처음에는 재미없었는데 지금은 재미있다. 공연을 하고나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이 바보였는데 사람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어서 공연을 하고나서 성취감이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다. 내 꿈은 소설가이다.
박** (에코시스템 디자인과 2) : 중학교 때 여러 일이 많았다. 같이 다니던 아이들과 사이가 안 좋아져서 아이들이 나를 대놓고 깠다.(비난, 욕, 조롱 등) 그래서 외로웠고 학교 다니기도 싫었다. C고에 와서는 나름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선생님의 권유로 연극부에 들어왔는데 연극이 너무 재미있다. 그래서 연극동아리 하는 날만 기다렸다. 나는 연극을 잘 못하는데 친구들이 도와주어서 고마웠다. 연극을 하면서 소심했던 성격이 대범해졌고 내 목소리가 크게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김** (유비쿼터스 전기전자과 2) :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로부터 ‘나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중학교 때는 안 좋은 학교를 다녀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많았다. 꿈도 사라지고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C고에 와서 연극을 하면서 생활이 즐거워졌다. 아직도 학교는 별로 좋지 않지만 연극은 재미있다. 연극을 하면서 성격이 활발해지고 있다. 자신감도 생겼다. 아직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은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연극을 하면서 배운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질문에 대해 아이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성** (에코시스템 디자인과 2): 연극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그런 점이 없어졌다.
맹**(에코시스템 디자인과 2) : 포기하는 것을 배웠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양보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우선 이 아이들의 과거 학교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생활했다는 고백을 했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거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풀지 못해서 스스로를 찌질하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연극을 하면서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고 다른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스스로 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극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가꾸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이 소중한 경험이 나는 이 아이들에게 커다란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꿈이 없지만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것이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학교는 이 아이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다. 이 아이들은 아마 대부분의 학교생활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또는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학교생활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는 이렇게 조용히 묻히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경기도교육청의 슬로건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학교가 모든 학생들의 꿈과 끼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게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학교의 교육 활동을 재구조화해서 교과서의 갇힌 지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만다행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을 다시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권이 집권을 하게 되었다. 교사로서 교육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게 되었을 때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청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나라가 그들의 기댈 언덕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우리의 아이들이 입시를 위해 죽은 지식을 EBS 교재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실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삶을 위해 몸으로 배우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나도 작은 벽돌하나 쌓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