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사유 / 이상덕_신능중 교사
2009년 처음 혁신학교가 지정된 후로 어느덧 수년이 흘렀다. 학교 현장이 잘 바뀌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지난 19년의 내 교직생활만 돌아봐도 학교와 교육 현장이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특히 혁신학교 운동이 시작된 이후, 경기도 교육은 정말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혁신학교 운동 이후 학교가 더욱 빠르게 변화하는 이유는, 혁신교육이 ‘근대적 학교’가 아닌 ‘현대적 학교’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적 학교가 상명하복의 관료제, 일제식 교사중심수업, 효율성의 추구, 입시와 선발 기능을 주요 특징으로 한다면, 현대적 학교는 민주적인 소통 구조, 윤리적 생활 공동체 추구,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한 학생 중심의 창의적 교육과정 운영을 특징으로 한다. 즉 근대적 학교와 현대적 학교는 구조와 운영 방식, 철학과 지향점이 서로 다른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미래 산업구조의 변화, 우리나라 인구 구조의 변화, 그리고 “기존의 성공 공식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 등이 맞물려 오늘날의 학교는 더 큰 변화를 요구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 환경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를 전제로, ‘좋은 교사 공동체’로 평가받는 학교들이 지닌 특성을 소개함으로써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또한 좋은 교사 공동체의 기준이 되는 교사들의 ‘언어 감수성, 어휘의 민감성’에 대해서도 간단히 이야기해 보겠다.
서울특별시 교육정보연구원이 발표한 <좋은 교사 공동체의 특징>이라는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교사 공동체’는 다음 네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1. 공동의 목표를 향해 차이를 조율하는 학교
2. 학교 조직 재구조화
3. ‘씨줄’과 ‘날줄’로 엮는 학습 공동체
4. 전문가적 윤리의식
우선 ‘공동의 목표를 향해 차이를 조율하는 학교’라는 특징은 혁신학교의 민주적 학교운영체제와 연결된다. 좋은 교사 공동체는 잘못된 상호 협력 문화인 당파화된 협동(끼리끼리만 협력), 편의 위주 협동(수업자료 공유와 같이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협력), 왜곡된 협동(위로부터 강요된 협력)을 극복하고 ‘비전 세우기’와 ‘관계 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만 알고 있는 교육계획서 상의 교육목표 한 줄이 제대로 된 비전은 아닐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여 비전을 정하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같이 실천하고 노력하는 공동체, 동시에 그 실천 과정에서 생겨나는 여러 갈등을 잘 조율할 수 있는 학교가 곧 좋은 교사 공동체이다.
‘학교 조직 재구조화’는 학교를 행정 중심이 아닌 수업과 생활지도 중심의 조직으로 재구조화할 것을 권장한다. 부서별 자리 배치나 업무 중심의 교무실 구성이 아니라 ‘학년부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교사들이 수시로 수업과 생활지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학교 조직을 갖춰야 한다. 요즘 중학교에서도 학년부 교무실을 운영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씨줄과 날줄로 엮는 학습 공동체’는 학년부나 교과협의회와 같은 공식 조직과 교사 동아리 같은 비공식 조직이 결합하여 창의적 교육과정을 고민하고 배움중심수업을 실천하는 모습을 말한다. 또한 학교 안 전문적 학습공동체 뿐만 아니라 학교 밖 전문적 학습공동체와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학습공동체가 개별 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학교나 외부의 교육 조직과 연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전문가적 윤리의식’은 학교 구성원들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책무성(Accountability)이 아닌 자발적 책임감(Responsibility)을 갖는 것을 말한다. 책무성이란 (Account(회계)라는 어원이 알려주는 바와 같이), 설명할 수 있는 책임, 보고할 의무를 의미하는데 이는 교육의 성과와 결과를 측정하여 서열화(예로 교원평가, 성과급) 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반면 자발적 책임감은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의미하며 아이들의 목소리,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소명의식에 근거한다. 좋은 교사 공동체란 결국 자발적 책임감과 전문가적 윤리의식을 지닌 구성원이 많은 집단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사의 전문가적 윤리의식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그 사람의 ‘말(言)’을 들 수 있다.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에서 ‘말’을 분석함으로써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무의식을 분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말이 나를 보여준다.”는 격언처럼, 수업시간에 무심코 내뱉는 말,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끼리 또는 학부모에게 하는 말을 들여다보면 그 교사의 윤리의식을 알 수 있다.
(동료 교사에게) “그 반 아이들 왜 그래? 선생님 담임 반에서 수업하고 나면 다른 반 두 시간 수업한 것보다 힘들어. 담임이 지도 좀 하면 안 돼?”
(학생에게) “너 왜 선생님이 시키는 거 안 해? 하기 싫어? 머리가 안 돌아가니? 그런 것도 못해서 어떻게 하냐?”
(학부모님에게) “올해 우리 반에 좋은 아이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작년에는 제가 맡은 반 아이들이 엉망이라 대입 결과가 별로였거든요.”
조금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으나 무의식중에 이런 말들을 내뱉는 경우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위와 같은 말을 쓰는 교사가 많은 학교와 아래와 같은 말을 쓰는 교사가 많은 학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다.
“선생님 올해 힘든 반 맡아서 고생이 많네. 그 반 들어가는 교과 선생님들 모두 모여서 아이들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같이 고민 좀 해보자. 같이 노력하면 좀 좋아지지 않겠어?”
“그게 좀 어렵지? 어디서부터 어렵니?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 부분만 잘 이해하면 다음부터는 편하게 할 수 있을 거야.”
“귀하고 소중한 자녀분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가르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오리라 믿습니다.”
교사는 경청과 협력을 바탕으로 언어 윤리성을 높여야 하는데, 이것을 ‘언어 감수성, 어휘의 민감성’이라 한다. 언어가 바뀌었다는 것은 현실이 바뀌었다는 증거이다. 학교는 ‘나, 강요, 경쟁, 실적, 결과’가 아닌 ‘우리, 배려, 나눔, 성장, 동기 유발, 협력’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학교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학교가 좋은 교사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비전을 정하여 같이 실천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행정업무 중심이 아닌 교육활동 중심의 조직으로 거듭나야 하며, 공식 조직과 비공식 조직, 학교 안과 밖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학습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외부적 책무성이 아닌 자발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전문가적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것이다.
전문가적 윤리의식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통해 드러나므로, 교사는 높은 언어 윤리성을 바탕으로 경청과 협력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