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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Sep 05. 2017

촛불, 광장에서 교실로

교육*담론 / 한홍구_성공회대 교수ㆍ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대한민국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냈다. 그 변화의 주역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들이었고, 그 변화의 힘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 내부에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1년여 전만 해도 역사의 진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세상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보수 정권 시절 세상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헬조선 흙수저’들의 반란이었던 2016년 4ㆍ13총선 결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아무도 몇 달 뒤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40년 전 10대 총선에서 유신세력이 야당인 신민당보다 득표율에서 뒤졌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열 달 뒤 박정희가 총에 맞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분명 세상은 변한다.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청소년은 변화의 주역이었다. 이번 촛불만큼은 드물게 처음부터 거의 모든 세대가 참여했다고 할 수 있지만, 4월 혁명이나 2008년 광우병 촛불에서는 단연 청소년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박정희, 전두환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에서 청소년들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기에 따라 청소년들의 역할이 달라진 것은 어쩌면 그들이 일상을 보내는 학교의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2차 대전 이후 독립을 쟁취한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일어난 첫 번째 시민혁명이 바로 4월 혁명이었다. 4월 혁명이 일어난 것은 1960년으로 엄청난 학살을 수반했던 한국전쟁이 끝난 지 만 7년이 되지 않았던 때였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치던 어른들이 다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겁에 질렸던 시절, 이승만 독재에 맞선 것은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이었다. 대학생들은 4월 18일에 가서야 나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4월 혁명 당시 십대들은 1940년 이후에 태어나 해방 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식민지 노예교육을 받지 않았고, 일본 군국주의 대신 미국식 민주주의에 입각한 교육을 받았으며, 일본어 대신 한국어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다.

2008년 5월 처음 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은 여중생들이었다. 이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면서 촛불을 들었을 때, 이들의 큰아버지 뻘인 70-80년대 민주화 운동 세대들은 민중해방이나 민족통일이나 민주화 같은 주제들은 놔두고 겨우 쇠고기 수입 갖고 데모를 하냐고 타박했다. 여학생들이 이명박 정권을 ‘독재정권’이라 비판했을 때,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이 박정희 전두환 정권 밑에서 살아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웃음 짓기도 했다. 기성세대들은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워보기는 했지만, 정작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반면 여학생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고민하지도 싸워보지도 않았지만 민주화된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또 학교를 다녔다. 쇠고기 문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 중 진보진영이 보기에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입으로 들어갈 먹거리를 저들이 맘대로 정한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파괴였던 것이다. 민주화 운동 세대에게 민주주의란 머릿속에 관념으로 존재한 것이었다면,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는 온몸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바람의 방향만 바뀌어도 먼저 피부로 느낀 것은 아이들이었다.

<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이 아이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들었을 때, 이명박 정권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뭘 안다고 난리를 치냐며 외부 불순세력의 사주가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새빨간 빨갱이 선생들이 새빨간 교과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이렇게 버려놓았다고 단정했다. 이런 진단에 따른 대책은 교육현장에 대한 테러로 나타났다. 새빨간 빨갱이 선생들에 대한 대책은 전교조 탄압으로 나타났고, 새빨간 교과서에 대한 대책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국정 교과서 파문까지 그 시끄러웠던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실현되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16년의 촛불은 청소년들의 역할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세대를 넘어 전 계층이 참여했기 때문이지, 청소년이 적게 참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고생을 넘어 더 어린 초등학생까지, 심지어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부모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오기도 했고, 유치원에서도 박근혜 탄핵 구호가 외쳐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소리 높여 탄핵을 외쳤던 경험은 학교의 현장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1세기의 아이들을 20세기 교사들이 19세기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근 20년 전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아이들은 훨씬 더 진화했다. 세상은 변했는데 학교는 얼마나 변했을까? 전교조가 만들어진지도 어느덧 30년이 다 돼 온다.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14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었으며, 공교육의 방향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계속 되어왔고, 혁신학교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학교의 변화가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약하는 가장 든든한 보증금이 될 것이다.

학교는 어떤 곳이고, 민주 사회에서 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 근대 이후 보통 교육이 실시되면서 교육의 목표를 두고도 치열한 계급투쟁, 또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한국의 학교는 어떤 인간형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민주 사회의 보통 교육과 자본주의 사회의 보통 교육의 목표는 과연 일치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학교 교육은 비판적 민주시민을 키워내려는 것일까? 아니면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노동자를 키워내려는 것일까?

나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수업에서 <역사와 인간>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 과목은 현대사 자체보다도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수업의 수강생들은 교사가 다수인데, 다양한 학년에서 역사교육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때 혁신학교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역사탐구 수업의 경험을 발표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다산 정약용을 갖고 공부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했다고 하기에는 그 수준이 너무 높았던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과제를 정하고 답을 찾아 정리해 낸 것이 대학생들이 한 것 못지않았다. 교육이 정보나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면 혁신학교의 실험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대의제 민주제도는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그래도 가장 우수한 제도라고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자주 나서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대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인 1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소수의 특권세력이나 돈 많은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진즉 사라지고 그야말로 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에서 치러지는 선거에서 숫자로 보면 비교가 안 되게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가 세력에게 승리한 적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고, 또 자신의 입장에서 표를 던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적 민주시민이 된다 함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또 권력이나 매스컴이 던져주는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에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을 갖춰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꿔본 촛불과 광장의 경험은 아이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낙관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57년 전인 1960년, 세계사적인 4월 혁명을 일으켰던 우리의 민주주의는 왜 그동안 요만큼 밖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그 답은 4ㆍ19세대 자신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디 가면 4ㆍ19세대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을까? 박근혜 탄핵반대 태극기집회에 모인 주력부대가 바로 4ㆍ19세대였다. 사실 교사를 학생들에게 부모나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은 같은 세대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50여 년 전 4월 혁명 세대는 폭발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지만, 그 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학교 현장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병영화되면서 4월 혁명의 정신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당분간 –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4월 혁명 직후처럼 ‘이제 학생은 학원으로’라고 외칠 것도 아니다. 학교는, 여러 선생님이 직접 맡고 있는 교실은 광장을 밝혔던 촛불이 불씨를 이어가고 필요한 때 광야를 휩쓰는 불길로 타오를 수 있는 불씨를 보존하고 키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추천도서>

한홍구,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2016, 철수와 영희

한홍구,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창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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