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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9. 2017

재즈 덕후가 겪은 교육 비스무리한 이야기

휴∼ 休 ‘세 번째 이야기’ / 이병곤 제천 간디학교 교장

재즈에 관심을 둔 것은 순전히 겉멋에 들렸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모든 상황에 짜증이 났었다. 정치 상황을 포함해 주변에 익숙한 것들 모두가 증오스럽거나 무덤덤했다. 신나고 멋지고 자극적이고 그럴싸해 보이는 무엇인가를 탐닉하고 싶어졌다. 그 즈음 재즈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내게 재즈는 ‘음악’이라기보다 ‘새로운 스타일’로 다가섰지 싶다. 

시작은 불순했지만 끝은 창대에 가까웠다. 재즈가 점점 ‘심각한 음악’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렇게 된 연유는 모두 내 의사와 무관하다. 첫 번째는 우연이었고, 두 번째는 음원의 제한이라는 열악한 환경 아래 내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되레 그것을 ‘운빨’ 좋았던 일로 치부하는 편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 (제목을 클릭하시면 연주를 들으실수 있습니다.)앨범이 내가 대면한 첫 번째 재즈였다. 카세트테이프로 만났다. 멜로디 라인이 살아 있으면서도 무심하게 흐르는 연주 스타일은 무척 낯설었으나 동시에 묘한 마력을 풍겼다. 마일스의 찬 서리밧 같은 트럼펫 음색이 마음을 ‘쓰윽’하고 단칼에 할퀴고 지났다. ‘어라, 이게 뭐지?’ 쿼텟 편성 연주 음악임에도 내게 익숙했던 클래식 5중주와는 그 표현 형식이 완전히 달랐다. 당시 유행하던 폴 모리아(Paul Mauriat) 악단과 같은 유러피언 스타일 경음악과도 음악적 메시지의 밀도에 있어 천양지차였다. 낯섦과 충격이 너무 컸기에 이 음악의 정체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음악 테이프가 늘어져서 음의 왜곡 현상이 생겨날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당시에는 다양한 재즈 음원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 음악 감상 인생의 변곡점이 되어준마일스의<Kind of Blue>  앨범 재킷


지금까지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 앨범 CD를 30여 장 이상 구매했을 거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이 음반을 한 장 사서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열 번 정도 반복해서 들어봐. 만약 이 음악이 네 마음속으로 스며들면 재즈를 더 들어도 되고, 아무 감흥 없으면 그냥 접어.” 약간 거친 잣대이긴 하나 내 몸이 겪어온 경험칙에 비춰보면 일말의 진실을 담은 진술이라 믿는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음반이 음악적으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 기록을 세운 명반이었음을. 




1. 수준 높은 곳에 꽂히기 – 덕후 되기의 첫 관문


덕후가 되기 위한 최초의 관문, 즉 ‘입덕’을 하려면 그 분야의 정점을 찍었다고 칭송되는 곳에 제대로 꽂혀야 한다. 대개 그런 높은 수준의 작품을 이해하고 빠져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안내, 시간 투입, 애정과 헌신 등의 삼박자가 갖춰져야 하겠지. 하지만 재즈 감상 입문 시절 내게는 그런 정보, 책, 안내자, 선생님이 없었다. 결국 초지일관 무식한 방법으로 나 홀로 해결했다. 반복 청취. 


일단 재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안에 여러 장르의 음악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재즈 양식의 변화를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하늘의 별만큼 다채로운 연주자들이 명멸했다. 무엇인가 조금 알았다 싶으면 새롭고 낯선 것들이 등장한다. 그만큼 재즈사는 ‘새로움의 봇물’이며, ‘모든 재즈의 유산은 아방가르드이다.’ 초심자 시절 제대로 ‘낚이는 일(hooked)’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번 꽂힌 이후에는 그 비밀을 풀어봐야 하겠기에 계속 이어지는 난관들을 뚫고 가려는 내적 속성이 작동한다. 게임에 빠진 사람이 ‘만렙을 찍을 때까지’ 온갖 시간, 돈, 노력을 바치는 원리와 똑같다. 나는 재즈 게임에 빠졌을 따름인데, 아쉽게도 아직 ‘만렙’에 이르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그 일은 요원할 것 같다.


재즈가 왜 어려울까? 당연하다. 그것은 미국인이 한국의 정악이나 민요, 판소리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맞먹는 만큼 어렵다. 한국의 전통 음악이 한국적 세계관, 풍습, 언어의 소산이듯 재즈 역시 미국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 아래 태동되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조적인 천재 연주자들은 이 음악 양식을 새롭게 발전시키고자 혼신을 다해 탐구해 왔기에 일반인이 따라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원래 음악이란 ‘보수적인 귀’를 만족시키는 예술 양식이다. 인간의 눈은 늘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서 탐색하려 하지만 귀는 그렇지 않다. 익숙하고 편안한 소리나 음악을 찾아서 안주하고 싶어진다. <가요무대>나 <콘서트 7080>의 끈질기면서도 높은 시청률은 우리의 귀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2. 식상함을 벗어나려는 의도적 행위


재즈를 듣는 행위는 창조적인 경청의 태도를 요구한다. 기존 재즈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하며, 잘 알고 있는 것을 과감히 버릴 자세를 가져야 새로운 음원이 가슴으로 스며들어온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동료 음악가들에게 창조적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대부분의 밴드 리더들은 투쟁하지 않는 자유의 희생물”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케케묵은 연주 태도를 경멸했기에 “젊게 사는 법은 나쁜 기억력을 갖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마일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한 예술가이다.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어 얼마든지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그 때마다 대략 10년 주기로 쿨재즈, 선법재즈, 퓨전재즈 등 재즈사에 큰 획을 긋는 새로운 양식을 스스로 창출했다. 재즈 비평가 요하임 베렌트의 표현처럼 “오늘의 혁신이 내일의 클리셰(cliche: 뻔하고 식상함)”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부단히 새로운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


눈 질끈 감고 질러버렸던 HMV 축음기.1920~30년대 재즈를 이 장비로 꼭 듣고싶었다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에릭 돌피(Eric Dolphy)라는 색소폰 주자가 이끄는 5인조 재즈 밴드의 앨범 <아웃 투 런치(Out To Lunch)>를 유투브 검색해서 들어보시라(독자들에게 욕먹을 것 같아 감히 앨범을 사라고 권하지는 못하겠다) 이 앨범은 유명 재즈 레이블 <블루 노트> 역사상 최고의 명반 가운데 손꼽힌다. 전곡을 엘릭 돌피가 작곡했고, 그의 주도 아래 녹음되긴 했으나 함께 했던 4명의 다른 아티스트 역시 당대 재즈계에서 내로라하는 전설적 인물이다. 그럼에도 재즈가 낯선 청취자들은 이 앨범에 담긴 다섯 곡 모두 첫 대목에서 1분 이상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앨범 제목의 의미대로 ‘이상하게 행동하는(out to lunch)’

 연주가 분명하다. 우리 귀에 너무 낯설다. 만약 독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가 ‘오호라, 요놈들 봐라? 여기에서 뭔가 될 법만한 걸 만들고 있군.’ 이렇게 느꼈다면 그 분들은 기존의 음악 어법에 지쳤거나 식상해져서 새로운 형식을 강렬하게 원하는 일반 음악 덕후이거나 재즈 마니아일 가능성이 높다. 비평가들은 에릭 돌피 류의 음악을 ‘프리재즈’로 분류한다. 


에릭돌피의 out to lunch 앨범 곡 들어보기


Hat And Beard (Rudy Van Gelder Edition) 1999 - Remaster
Something Sweet, Something Tender (Rudy Van Gelder Edition)
Gazzelloni (Rudy Van Gelder Edition)
Out To Lunch (Rudy Van Gelder Edition)
Straight Up And Down (Rudy Van Gelder Edition) (1999 Digital Remaster)



3. 강렬한 재즈 욕망의 실현 – 덕질의 최고봉


덕후 되기에는 각각 차원이 있고, 덕질에 빠지는 수위 역시 역포물선 그래프처럼 그 시기별로 개인적 열망의 높낮이가 다르다. 1996년~2002년 사이에 런던에 체류했다. 한국이라는 재즈 ‘가뭄’ 지역에서 살던 내가 그곳으로 환경을 옮기니까 너무나 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쌓여 있었다. 음반 사들이는 행동에 나 스스로도 중독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집착했던 시기가 그 때였다. 특히 CD음악을 직접 들어보고 구입을 결정할 수 있는 중고 음반 전문 매장 <몰재즈(Mole Jazz)>를 발견했을 때는 음반 수집의 전성기였다. 3일치 점심값을 아껴 모아 음반 1장을 샀다. 중요한 일정을 미뤄둔 채 재즈 공연장을 찾아다니거나 원고마감 날짜에 아랑곳 않고 스피커 앞에 비스듬히 누워서 재즈 속으로 빠져든 적도 있다. 

전문 서적, 음반 표지 디자인 모음집, 연주자 브로마이드, 재즈 다큐멘터리 DVD 모으기, BBC 재즈 음악 방송 청취 등으로 이어졌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보고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덕질 절정기의 심정이다. 과연 이병곤의 ‘재즈 에이지(Jazz Age)’라 할 수 있겠다. 이 중독 증세는 재즈를 알고 싶고,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망을 거의 소진할 시점까지 대략 6~7년간 지속되었으며, 그것이 웬만큼 충족된 시점이 지나서야 역포물선의 오른쪽이 완만하게 아래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담배나 마약, 도박처럼 나쁜 중독이 아니라면 후덕한 덕후의 마음, 즉 올바른 ‘덕심’의 배양은 자신이 만족할 만큼 깊이 있게 빠져드는 데에서 시작한다. 나는 깊이 몰입하면서도 폭을 좁히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다. 1950년대 하드밥 계열의 재즈를 가장 좋아했지만 흑인 영가와 블루스, 쿨재즈, 뉴올리언즈 스타일, 빅밴드 스윙 재즈를 귀 기울여 들었고, 아직도 탐구중인 프리재즈에도 역시 끊임없이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단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르겠다’고 노래한 고 고정희 시인의 표현대로 온 마음을 바쳐 진득하게 재즈와 사랑을 나눴다. 그 영향 탓인지 이제는 남은 평생을 오롯이 이 음악과 같이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가구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용어가 있다. 음악이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고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현대 클래식 피아노의 거장 에릭 사티가 곡에 대한 ‘표현성’이나 ‘해석’의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시도로 만든 음악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재즈를 가구음악처럼 소비하기 싫었다. 지금도 재즈를 배경음악 삼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물을 섞지 않은 드립커피 원액처럼 진한 즉흥 연주 속으로 폭 빠져들기를 더 좋아한다. 재즈는 그만큼 진중하게 다가서야 할 것 같은 내 친한 벗이다.




덕질을 통해 배운 것들


재즈에 폭 빠져 사는 동안 미술사 공부 역시 혼자서 했다. 재즈만큼 깊이 있게 ‘덕질’을 한 것은 아니나 책과 현장(수백 곳에 이르는 런던의 입장료 무료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넘나들면서 하나씩 익혀갔다. 그러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든 예술 양식들이 변증법적인 변화 가운데 존재하며, 그것은 일정한 패턴처럼 일어났다는 점이다. 즉, 예술사는 ‘새로움’이 ‘완숙함’으로 변화하고, 다시 그 ‘완숙함’을 벗어나 ‘새로움’ 찾기를 반복하면서 양식상의 다채로움을 탄생시킨다는 유사성을 깨달았다. 이것을 알게 되면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의 도전을 참신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갖는다. 더 나아가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게 된다. 

덕질을 하면서 진짜 공부의 유용성을 확인했다. 공부는 내가 모르는 지점, 궁금해 하는 영역을 더 깊이 파고들게 만든다. 이종학, 김현준 등 재즈평론가들의 저서와 기사, 전문지 <재즈피플>, 존 포드햄(John Fordham) 같은 <가디언> 신문 전속 재즈비평가의 평론과 저서들이 내가 재즈 속으로 깊이 파고들 때 도움 주었던 가정교사들이었다. 누가 뭐라도 ‘참 공부’는 나의 동기와 관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만 일단 배우기 시작한 분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면 그 영역에서 통용되는 도구를 익혀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 학습이 꼭 필요했다. 공부가 쌓이지 않는 덕질은 그 깊이에 있어 분명히 한계가 있다. 


공부를 빠르게 진전시키는 자극제는 실행이다. 재즈는 집중 상태로 오랜 시간 반복 청취해야 자신의 속살을 조금씩 드러내는 음악이다. 이를 통해 재즈의 어법, 스타일, 구조, 악기별 특색, 시대별 양식 같은 특징들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 설명은 그 다음이며, 실행이 먼저다. 공부의 효용성이 극대화되고, 복잡성이 정리되는 때는 그 분야의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인 다음에라야 훨씬 더 이뤄지기 쉽다. ‘좋은 배를 만들려면 먼저 사람들에게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는 클리셰는 말 그대로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진리는 전혀 낡아빠진 것이 아니다. 


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즉흥연주(improvisation)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을 두 번 건널 수 없다”고 했는데, 재즈 연주 마찬가지이다. 동일 밴드가 똑같은 연주를 연속으로 두 번 반복해도 똑같을 수가 없다. 바로 즉흥연주 때문이다. 초심자에게 황당하기까지 한 이 부분이야말로 재즈를 재즈답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창조적인 즉흥연주를 달성하기 위해 연주자는 반복과 반복을 거듭하는 맹렬한 연습을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지속한다. 


배움과 깨달음의 순간은 조직할 수 없다. 책을 읽고, 노동하고, 걷고, 사색하고, 토론하며, 함께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통달의 순간은 불현듯 찾아든다. 진정한 재즈 음악가는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이 아닌 ‘시대에게 요구하는’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매진한다. 위대한 재즈 연주자들은 일탈의 위험을 기꺼이 즐겼고, 그 가운데 성공과 실패를 번갈아 경험했다. 자신의 삶을 걸고 목표를 정하는 일, 그것의 달성을 위해 시간의 즉흥연주를 벌이는 일은 고독하면서도 가치 있는 행동이다. 대안의 목적을 찾아가는 교육을 바라는가? 또는 교육 자체가 곧 대안적 삶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은가? 프리재즈의 어법과 고난도 즉흥연주의 매력 속에서 해법의 힌트를 찾아보자. ‘시대에게 요구하는 교육’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것이 재즈 덕후인 동시에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이 소박하게 내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즉흥연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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