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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9. 2017

자본에 빼앗긴 놀이의 회복을 위해

학교*이야기 / 이재광_상천초등학교 교사

어느 날 딸이 간절한 표정으로 애원했다. “아빠! 우리도 롯데월드, 오션월드 같은데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물놀이도 좀 하자. 나도 그런 곳에 다녀와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단 말이야. 제발~” 나는 일각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희는 놀이마저도 자본의 아가리에 들어가서 해야겠느냐?” 그날 난 동심을 무참히도 짓밟았지만 자본에 맞짱 뜰 수 있는 배움이 있고 모험으로 가득 찬 여름놀이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1995년부터 춘천과 가평을 오가며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보조적으로 전철과 자가용을 이용한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학교를 둘러싼 자연환경을 교육활동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강과 가평천을 따라 달리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사계절 자연의 변화를 교육활동에 담아내기 위해 교육과정 내용 요소를 메인 메모리에 상주시켰다.


산골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비는 아이들의 놀이를 중지시켰고, 논둑을 터뜨려 원치 않는 노동에 징발되게 하였고, 징검다리를 쓸어가 버려 등교를 못해 친구들로부터 고립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오면 설렌다. 넘실거리는 가평천 물결에 튜브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 1000m 이상의 명지산, 연인산, 민둥산, 석룡산, 화악산에 떨어진 빗물은 가평천에서 만나 가평읍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지난 5년간 가평천 하류지역의 학교에서 근무했다. 학교근처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연환경을 두고도 학교는 값비싼 버스와 입장료를 내고 자본이 운영하는 물놀이 시설에 다녀오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그곳에는 안전시설이 있고, 안전요원이 있고 모든 것이 관련 법규에 부합한다. 이제 우리는 그런 곳이 아니면 놀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가평군에서는 매년 여름철 수난 사고로 10명 내외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모두 물과 관련된 사고다. 나는 1976년부터 1994년까지 학생이었고, 그 이후에는 선생이어서 인생의 85%를 학교에서 보냈는데 구명조끼를 올바르게 입는 방법을 제대로 교육하거나 받은 기억이 없었다. 안내장이나 동영상이 물놀이 안전교육의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 때는 그렇게 받았고, 선생 때는 그렇게 가르쳤고 그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물놀이 안전교육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투철한 교육목표보다는 로컬 푸드와 같은 개념으로 자기 집 근처의 자연환경에서 최대한 즐겁고 안전하게 놀 수 있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누구나 돈이 없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이 교육과정으로 재구성되기를 바랐다.


안전한 교실과 운동장을 벗어난 교육활동에서 내가 가장 철저하게 실천하는 원칙은 교육활동구역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다. 장악한다는 의미는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플랜A, 플랜B를 마련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활동에 관련된 광범위한 지식을 숙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역장악의 시작은 답사이다. 땅이면 걸어야 하고 하늘이면 날아야 하고 물이면 몸을 담가봐야 한다. 하천과 강의 질감을 느끼기 위해 나는 오랜 시간 수차례 물가와 물속을 답사했다.



물에서 놀려면 호우주의보와 호우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하천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정보를 수집해 두어야 한다. 같은 강수량이라도 상류에 있는 산의 해발고도와 개수에 따라 하천으로 흘러들어오는 유량, 유속, 탁도, 물길의 흐름 등이 달라지는데 나는 자전거 길을 따라 출퇴근하면서 강수량과 유량의 관계를 늘 살피곤 했다.


하천에 대해 충분히 살폈다면 지방자치단체의 하천 관련 공무원에게 수영금지구역, 상류에서 유해물질 배출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교육활동의 물리적 공간이 교실에서 지방하천이나 국가하천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그곳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필요하다. 하천법이나 재난안전 관리법을 일독하고 자문을 구하면 훨씬 대화가 수월하다.



물놀이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강이나 하천의 수량이나 수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봄에는 산의 눈과 계곡의 얼음이 녹아 유입되나 미미하다. 장마가 시작되는 6월 20일 이전까지는 하천이 바닥을 드러내는데 장마 전에 하천바닥의 모양을 파악해 두어야 한다. 작년에 파악했더라도 새롭게 굴러온 바위는 없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장마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인 7월 3주는 유량은 풍부하나 아직 물이 차가워 장시간 물놀이는 곤란하다. 2학기가 시작되는 8월 넷째 주가 물놀이의 최적기이다. 하천의 유량이나 강의 수온이 물놀이에 적합하다. 9월로 접어들면서 물색이 바뀌고 수온이 내려간다. 이런 사실들은 중학교 과학 수준의 지식들이지만 나는 물가를 거닐거나 물속에서 떨면서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답사는 2010년 여름, 춘천 교도소와 공지천을 연결하는 석사천 4km 구간에서 이루어졌다. 넘실거리는 물결에 튜브를 타고 몸을 맡기는 일은 내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집 앞의 석사천은 전 구간에 걸쳐 수심이 1M를 넘지 않는 도시형 하천이기 때문에 익사사고의 위험이 없었고, 돌로 된 징검다리를 제외하고는 위험요소도 적었다. 넘실거리는 물결에 다가갈 때 느껴지는 두려움과 무사히 빠져나왔을 때 안도감이 교차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처녀비행에서 물결의 질감과 패턴을 느낄 수 있었고 튜빙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두 번째 답사는 같은 해 여름 가평천 10km구간에서 이루어졌다. 이 구간에는 네 개의 보와 자연하천이 있다. 익사하기 충분한 수심과 자연하천구간의 빠른 유속, 튜브를 전복시키기에 충분한 물속 지형을 갖추고 있다. 넘실거리는 물결이 위협적인 곳은 튜브의 뒤집힘에 신경 쓰며 물살을 탔고, 수심이 깊은 곳에서는 튜브를 버리고 구명조끼의 부양 성능을 테스트하며 떠내려 왔다. 보가 가까워지면 유속과 넘실거림은 싱거워져서 한없이 지루해졌다. 보에는 물고기 이동통로인 어도가 있는데, 어도를 흐르는 물살은 넘실거리고 회오리쳐서 도전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어도의 수면 위는 정형화된 패턴으로 넘실거렸지만 심층의 물은 철저히 유체역학의 원리에 따라 작동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 튜브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찢어지고 몸은 360도 회전하는 두렵지만 꼭 필요한 경험을 했다. 찢어진 튜브로 나머지 구간을 간신히 마쳤는데, 계곡이나 바다에서 사용하는 물놀이용 튜브가 왜 2중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답사는 오후에 시작하여 물속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떠내려 오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소모되고 체온이 떨어지고 손발은 퉁퉁 불어, 이 활동에 필요한 적정시간, 간식, 체온 유지 등에 대해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수면 아래의 지형조건에 따라 물살은 역류하고 와류가 발생하고 회전하는 것을 경험했다. 하천에서 특정한 장소가 왜 위험할 수 있는지를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됐던 <냇가, 계곡의 물의 흐름의 변화와 웅덩이는 어떻게 하여 생기는가?>라는 자료를 살펴보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해 여름 마지막 답사는 가평천 상류에서 카약을 가지고 했는데,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시작한 답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이 떨어져 뒤집힌 카약에 다시 오르지 못하고 카약을 잡고 수백 미터를 떠내려갔다. 떠내려가면서 허벅지와 무릎과 정강이와 발등이 무수한 바위에 부딪히면서 그 고통으로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아... 헬멧을 안 썼으면 머리가 부서졌겠구나... 경골과 슬개골이 물속 바위에 부딪히는 순간 그 고통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아... 이렇게 익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유속이 완만해져 간신히 물가로 나올 수 있었다.


내 다리는 무수한 타박상과 찰과상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답사 때 확인한 다양한 물의 흐름(와류, 소용돌이 등)이 강도 높고 빈번하게 반복되어 수차례 카약이 전복되었는데, 매번 다시 올라탔지만 결국 체력의 고갈로 휩쓸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수중활동은 육상 활동에 비해 열량 소모가 훨씬 높아서 식사를 충분히 해야 하고 활동이 길어질 경우 중간에 반드시 간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날 답사에서 내가 튜빙이라고 명명한 이 활동의 원형이 설계되었는데, 튜빙 보호장비로 헬멧, 슈즈, 보호 장구(손목, 팔꿈치, 무릎), 그리고 축구 양말과 아대가 채택되었다. 헬멧과 슈즈는 수면 위로 돌출된 바위에 부딪히거나 다가오는 돌을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보호장구와 아대는 뒤집히거나 튜브를 놓쳐 구명조끼만으로 떠내려가는 상황에서 하반신을 물속의 돌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수면 위의 물의 흐름이 넘실거리든지 아니면 소용돌이치는지는 수면 아래의 지형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지형조건에 대한 답사는 여름철에 넘실거리는 지점을 확인하고 갈수기 때 수면 아래 지형을 자세하게 확인할 필요를 느꼈는데, 하천의 물밑 지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매년 봄가을로 물밑 땅 모양을 파악했다.


물리적 공간과 활동 주제에 대한 장악이 끝나면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하천이나 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서 일어날 것이고 그것들은 플랜A, 플랜B로 제어 가능한 것들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구상한 활동을 합법적인 교육활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2009개정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6학년 체육과 여가활동에는 ‘자연형 여가활동의 창의적 계획 및 체험’을 주제로 하고 있고, 등산, 래프팅, 스키, 자전거 하이킹, 캠핑 등을 예시하고 있다.


계곡에서 하는 급류 래프팅이나 강에서 하는 도하 래프팅은 협력, 근력 및 근지구력, 공동체 훈련, 물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는데 효과적이지만, 래프팅보트를 실어 나르거나 아니면 래프팅이 가능한 지역까지 학생들을 인솔하여 이동해야 하는 등 상당한 열정과 예산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래프팅은 학생이 독립적으로 방과 후나 방학 때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할 수 없기 때문에 래프팅을 튜빙으로 변경하여 운영하였다.


튜빙은 튜브를 타고 물 위를 떠내려 오는 놀이이다. 여름철 비가 온 후, 하천의 물이 적당히 넘실거릴 때, 인라인이나 자전거 탈 때 사용한 안전장비를 고스란히 착용하고 튜브를 들고 집주변의 계곡이나 하천에 가서 타면 된다. 단, 튜빙을 즐기고 싶다면 갈수기 때 그 장소를 반드시 답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나와 학생들은 2012~2015년에는 북한강에서 도하 래프팅이나 구명조끼와 오리발을 끼고 북한강을 헤엄쳐 건넜다. 도하수영은 올림픽 철인 3종 경기 규격을 1/3수준으로 낮춘 미니 철인 3종 경기로 5km 마라톤, 350m 핀수영, 30km 라이딩을 하는 것으로 체육과 여가 활동과 건강 활동을 재구성한 활동이었다. 이 활동 역시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2016년에는 튜빙을 하게 되었다.


학교 앞 보의 잔잔한 곳에서 튜브에 오르고 내리고 앉고 엎드리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해본다. 흐르는 물에서 10여 미터를 떠내려가 보는 연습을 수차례 반복한다. 돌이 나타나면 발로 밀고, 손으로 밀고, 헬멧 쓴 머리로도 부딪혀 본다. 물살이 심하게 넘실거리는 곳은 친구들의 튜브를 연결하여 전복을 예방하거나 튜브 위에서 몸을 대자로 펴 통과한다. 이런 식으로 튜빙의 감각을 익힌 후, 넘실거리는 물살에 몸을 한번이라도 맡겨본 아이들은 이 즐겁고 모험적인 놀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살이 소용돌이치거나 튜브가 뒤집히는 지점에서는 구명로프로 튜브를 묶어 물 위에 띄워 보내면 튜브가 소용돌이치거나 튜브가 뒤집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 물속의 지형에 있다. 물의 흐름이 진행 방향에 거꾸로 돌아오는 것은 물속의 땅 모양이 폭포처럼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에 부딪친 물은 보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역류하기도 한다. 물속에서 놀이를 통해 위험요소를 체험하고, 교실에 돌아와서는 그림을 그려가며 위험한 곳의 표층과 심층의 흐름을 지도한다.


다양한 체험학습을 했지만 튜빙만큼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았던 활동은 없었다. 튜빙은 그 자체로 신나고 모험적인 여름철 물놀이 활동이면서 체육과 교육과정 목표나 물놀이 안전교육의 내용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딸아이의 애원과 나의 독특한 사고방식에서 방아쇠는 당겨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교육과정 재구성의 사례가 되고 말았다. 역시 삶은 우발성인가 보다.



여가활동 계획서
학생이 쓴 활동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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