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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9. 2017

혁신고등학교는 정말로 공부를 못하는가?

교사*수다 / 이정민_성공회대 혁신교육대학원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겼다. 새 학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아 왜 이렇게 하는지를 묻고 다녔다. 대부분 무시당하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일부 친절한 동료교사들이 대답해 주었다. ‘높은 성적이 나오게 해서 애들 대학을 보내야지 혁신교육을 여기서 어떻게 합니까?’ 어리둥절했다. 높은 성적, 학력을 높이자는 얘기일 것이다. 학력이 뭔데요?

  임용시험을 치르고 교직에 입문한 교사가 교육학에서 말하는 ‘학력’이라는 것이 시험점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력에 대해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면 또 쓸데없는 ‘진지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준을 좀 낮춰서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문제 많이 풀면 점수는 올라가나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 하기야 이건 서양 중세의 교회에 찾아가서 ‘신이 있어요?’ 하고 묻는 꼴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운영의 가장 바탕이 되는 도그마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인데,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다행이지, 중세로 치면 화형 당할 일이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수능성적이지만 이건 학교별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각 학교를 찾아가서 묻는 방법은 힘들고,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도 없다. 그래서 일단 아쉽지만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데이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EduData Service System’. 교육부와 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데이터시스템을 뒤지자 2013년도부터 2015년도 자료까지 구할 수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2016년도 자료가 없다. 교육부, 도교육청의 보도자료, 각종 교육통계, 신문기사까지 싹 뒤져봐도 2016년 통계는 없다. 박근혜가 탄핵당해서 그런 듯 싶다. 그래서 직접 모아보기로 했다.

  경기도의 일반 인문계고등학교 360개 명단을 뽑아놓고 인터넷으로 학교정보공시에 들어가서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하느라 바쁘지만 틈날 때마다 하니 일주일 만에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되었다. 혁신고교 그룹과 일반고교 그룹을 분리했다. 각 학교 학생 수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여 각 그룹의 성적자료의 가중평균을 구했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이건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수치다.                    



  이제 결론을 지어보자. 혁신학교는 일반학교에 비해 공부를 못하는가? 기초미달자의 비율로만 보자면 혁신학교는 공부를 못한다. 그러면 그게 혁신학교의 책임인가? 아니다. 그냥 입학성적 자체가 낮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다. 소위 ‘입학효과’가 별로 없다. 그리고 애초에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중에 누가 공부를 잘하느냐는 교육적인 질문이 아니다. 좀 더 교육적인 질문을 해 보자. 혁신학교는 잘 가르치는가?

  향상도를 따져 보면 국어는 일반학교에서 높고, 수학과 영어는 혁신학교에서 높다. 그렇다면 국어는 일반학교가 잘 가르치고, 수학과 영어는 혁신학교에서 잘 가르치는가? 세 과목 중에 두 과목의 향상도가 더 높게 나오니 혁신학교가 더 잘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아쉽게도 양심상 그렇게 결론은 못 내리겠다. 양쪽을 비교하면 모든 과목에서 1% 이상 차이가 나지 않는다. 측정방법은 늘 오차를 포함한다. 이 정도의 차이는 우연히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날씨가 좋았다던가, 급식이 잘 나왔다던가 하는 다양한 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양 그룹 간에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오지선다 문제를 많이 풀든 토론을 많이 하든 점수는 별 차이가 없단 말이다.


  ‘애들 공부를 시켜야지, 혁신학교 해서 성적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 혁신교육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외치는 교사들은 자주 듣는 말이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애초에 우리는 점수 같은 건 부차적인 문제고 이게 옳으니까 하는 거다. 그래도 누군가가 자꾸 혁신학교 공부 못한다고 비난하면서 스트레스를 주면 ‘조사해 봤더니 별 차이 없다.’하고 대답해 주면 된다. 안 믿으면 저 수치를 보여주시라. 그래도 못 믿는다고 끝까지 버티는 자가 있으면 찾아오시라. 원본 데이터를 제공한다. 내가 누구냐고? 나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연구실에 서식하는 유니크한 생명체, 연구년 교사다. 왜 이런 연구를 했냐고? 그야 유니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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