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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미 Mar 06. 2022

당근은 나랑 맞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요즘 당근에 푹 빠졌네!” 

초등학생인 아이가 오늘 당근 거래 3개 있다며 자랑하는 나에게 건넨 말.

‘아니야, 사실 나 당근 싫어해…’


방치되던 ‘미니멀게임’이 활력을 얻고 있다. 현관문 입구 옆 수납공간과 창고처럼 되어버린 대피공간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한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일지도 몰라서 중고거래 앱을 깔았다.


올린 물건만 40여 개. 가격은 내 기준에서 저렴하다. 남편과 아이도 은근히 같이 체크한다. 더 비싸게 받지 그러냐고 나무라기도 한다. 팔리고 보면 내가 너무 싸게 팔았나 싶지만 나눔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래는 잘 되고 있다. 벌써 반 정도 팔렸다. 쿨거래하는 구매자들도 많다. 싸게 샀다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주민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새벽 6시 50분에 블루투스 스피커 판 사람 나야 나!


그런데 이 중고거래가 나랑 맞지 않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도 채팅 알림이 뜨면 부리나케 달려가 응답을 해 줘야 한다. 무작정 가격을 깎는 사람, 물건을 자기 동네까지 가져다 달라는 사람 등등. 어떤 구매자는 출근 전 새벽에 거래하자며 6시 30분에 약속을 잡았다. 거절하면 되는데 물건 거래에 급급했던 나는 약속을 잡고는 겁이 났다. 걱정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같이 나가 주었다. 약속시간을 20분도 넘긴 구매자는 사과의 의미로 2천 원을 더 주는데…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나와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면서 살고 있는데 무자비로 만나야 하니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다. 쓰레기로 모두 버려 버리기에는 안타까운 자원 낭비인 것 같아서 물건을 팔고 있지만 빨리 거래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탓일까. 그냥 물건을 올려놓고 신경을 안 쓰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 동안 방해금지 알람을 설정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겠지… 그래도 물건을 떠나보낼 때는 조금 짠하다. 아이의 이유식 만들 때 즐겨 쓰던 믹서기, 예전엔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니 그때 쓰던 커피메이커, 아이가 어릴 때 즐겨하던 보드게임 등등 잘 썼던 물건들도 많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한 번도 사용 안 한 물건들도 있다. 예쁘다고 샀지만 실용적으로 쓰지 못한 그릇과 주방용품들, 공부할 때 스트레스 풀려고 산 것 같은 떡메들, 세트로 산 접시…











다 팔 건데 왜 샀어?


남편이 뼈 때리는 말을 했다. 

“저거 다 팔 건데 왜 샀지?” 

“윽. 맞아 미안해…”

바로 수긍했더니 자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님이 왜 미안하죠?


그런데 정말 많이 물건을 비우는 효과를 얻었다. 아깝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눈다고 생각했다. 물건이 쓰일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는 게 맞다. 창고에 갇혀 있으면 물건의 쓰임을 다할 수 없다. 거래를 마치고 몇 천 원, 몇만 원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은 또 기분이 좋았다. 물건 살 때 곱절로 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그건 생각 안 하고 수입이 생긴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돈을 쓰지 않고 모아서 통장에 넣는다.



속 시원히 보내세요

 

“당근!”

중고거래 채팅이 왔다. 웃음 표시로 시작하지만 가격을 후려치는 메시지다.







그릇세트를 사고 받은 사은품으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냄비와 한두 차례 사용했던 채칼이다. 두 개를 함께 사겠으니 2천 원을 깎아 달라고 한다. 순간 마음이 상한다. 진작에 2천 원씩 깎아 가격을 내린 후였다.

‘뭘 또 깎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렸다. 오랫동안 거래가 되지 않던 물건들인데 누군가 입질이 온 것이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는 일은 꽤 골머리를 앓는다. 후회와 아쉬움, 귀찮음 등등 중고거래를 할 때마다 아주 고생이다.


그릇세트는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나름 고심해서 샀던 것이다. 집에 가족들을 모셔야 할 일이 자주 생겨 6인용 이상의 식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언제나 가격이 문제였다. 저 냄비는 끼워준 사은품이다. 뭔가 많이 받으니 기분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필요가 없는 것을 잔뜩 받아 봤자 처치 곤란이다.



양배추 채칼에 손가락을 크게 벤 적이 있다. 마켓컬리에서 야심 차게 구입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다. 성능은 좋은데 그냥 내가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칼로 채를 써는 것이 편했다. 괜히 방법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품의 가격을 후려침 당했다. 나는 고민해 보고 이윽고 수락했다. 필요 없는 사은품은 치워야 하며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속 시원함을 택했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이에게 쓰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분간은 비움이 계속될 것 같다. 언제나 물건을 비울 때 드는 생각은 하나.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나에게서 쓰임을 다한 물건들은 남이 사용할 수 있게 나누어야 한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처분해야 한다. 아무튼 빨리 끝나길 바란다. 당근이 나랑은 맞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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