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치되던 ‘미니멀게임’이 활력을 얻고 있다. 현관문 입구 옆 수납공간과 창고처럼 되어버린 대피공간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한 것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일지도 몰라서 중고거래 앱을 깔았다.
올린 물건만 40여 개. 가격은 내 기준에서 저렴하다. 가족들도 은근히 같이 체크한다. 더 비싸게 받지 그러냐고 나무라기도 한다. 팔리고 보면 내가 너무 싸게 팔았나 싶지만 나눔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래는 잘 되고 있다. 벌써 반 정도 팔렸다. 쿨거래 하는 구매자들도 많다. 싸게 샀다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주민도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새벽 6시 50분에 블루투스 스피커 판 사람 나야 나!
그런데 이 중고거래가 나랑 맞지 않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도 채팅 알림이 뜨면 부리나케 달려가 응답을 해 줘야 한다. 무작정 가격을 깎는 사람, 물건을 자기 동네까지 가져다 달라는 사람 등등. 어떤 구매자는 출근 전 새벽에 거래하자며 6시 30분에 약속을 잡았다. 거절하면 되는데 물건 거래에 급급했던 나는 약속을 잡고는 겁이 나기까지 했다. 약속시간을 20분도 넘긴 구매자는 사과의 의미로 2천 원을 더 주는데…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이렇게 피곤하고 힘든 일이다. 나와 성향이 너무 다른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면서 살고 있는데 무자비로 만나야 하니 에너지가 소진되는 느낌이다. 쓰레기로 모두 버려 버리기에는 안타까운 자원 낭비인 것 같아서 물건을 팔고 있지만 빨리 거래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탓일까. 그냥 물건을 올려놓고 신경을 안 쓰면 그만일지 모른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 동안 방해금지 알람을 설정했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겠지… 그래도 물건을 떠나보낼 때는 조금 짠하다. 예전엔 필요한 시기별로 잘 썼던 물건들도 많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한 번도 사용 안 한 물건들도 있다. 예쁘다고 샀지만 실용적으로 쓰지 못한 그릇과 주방용품들, 공부할 때 스트레스 풀려고 산 것 같은 떡메들, 세트로 산 접시…
다 팔 건데 왜 샀어?
가족이 뼈 때리는 말을 했다.
“저거 다 팔 건데 왜 샀지?”
“윽. 맞아 미안해…”
바로 수긍한다.
그런데 정말 많이 물건을 비우는 효과를 얻었다. 아깝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눈다고 생각했다. 물건이 쓰일 수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하는 게 맞다. 창고에 갇혀 있으면 물건의 쓰임을 다할 수 없다. 거래를 마치고 몇 천 원, 몇 만 원을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은 또 기분이 좋았다. 물건 살 때 곱절로 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그건 생각 안 하고 수입이 생긴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돈을 쓰지 않고 모아서 통장에 넣는다.
속 시원히 보내세요
“당근!”
중고거래 채팅이 왔다. 웃음 표시로 시작하지만 가격을 후려치는 메시지다.
그릇세트로 샀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냄비와 한두 차례 사용했던 채칼이다. 두 개를 함께 사겠으니 2천 원을 깎아 달라고 한다. 순간 마음이 상한다. 진작에 2천 원씩 깎아 가격을 내린 후였다.
‘뭘 또 깎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렸다. 오랫동안 거래가 되지 않던 물건들인데 누군가 입질이 온 것이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는 일은 꽤 골머리를 앓는다. 후회와 아쉬움, 귀찮음 등등 중고거래를 할 때마다 아주 고생이다.
그릇세트는 내 취향에 맞는 제품을 나름 고심해서 샀던 것이다. 집에 가족들을 모셔야 할 일이 자주 생겨 6인용 이상의 식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언제나 가격이 문제였다. 저 냄비는 끼워준 사은품이다. 뭔가 많이 받으니 기분이 좋은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필요가 없는 것을 잔뜩 받아 봤자 처치 곤란이다.
양배추 채칼에 손가락을 크게 벤 적이 있다. 마켓컬리에서 야심 차게 구입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다. 성능은 좋은데 그냥 내가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칼로 채를 써는 것이 편했다. 괜히 방법을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품의 가격을 후려침 당했다. 나는 고민해 보고 이윽고 수락했다. 필요 없는 사은품은 치워야 하며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속 시원함을 택했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이에게 쓰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분간은 비움이 계속될 것 같다. 언제나 물건을 비울 때 드는 생각은 하나.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나에게서 쓰임을 다한 물건들은 남이 사용할 수 있게 나누어야 한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처분해야 한다. 아무튼 빨리 끝나길 바란다. 당근이 나랑은 참 맞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