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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Aug 09. 2024

수영하는 법

 내 동생은 걷기보다 수영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제주 바다에서 항상 바닷물을 머금고 살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동생이 제주도에서 학교생활을 하던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단다. 동생은 몇 가지 짐을 챙겨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수영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일이 끝나고 뒤늦게 집에 와서 방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셨다. 그 이후에는 동생을 혼자 집에 두기 싫어 근처 카페 사장님께 아이를 맡기셨다. 카페 뒤편에는 작은 수영장이 위치해 있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 공간이었달까? 인심 좋은 사장님 덕에 동생은 수영장을 전세내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혼자 물속에서 잠수하는 시간을 즐겁게 여겼다고 한다. 물에 잠겨 죽을 뻔한 적도 있으면서 참 용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 달 말 내 동생은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생각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빨리 배웠다. 아빠가 하루종일 술에 절어 살았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내가 직접 일을 해야 했다. 내가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아빠는 술만 챙겨서 나오려 했다고 한다. 저 귀한 술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아니 알코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빠는 모르는 건가.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뒤늦게 집에 와서 여기저기 까맣게 불탄 벽지를 보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 이후에는 아빠와 함께 살기 싫어 근처에 하숙집을 구했다. 하숙집 사장님은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주시곤 했다. 요즘시대에 볼 수 없는 곳이었달까? 월세까지 깎아준 사장님 덕에 나는 방 한 칸을 전세내고 사용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고요한 집 안에 혼자 사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찾아왔다. 나는 혼자 작은 방 안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엄마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가 정말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동생이 죽었단다.


 동생의 장례식에도 나는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공항이 마비라고 했다. 나는 하필 이때 왜 동생이 죽었는지, 아빠는 왜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지, 왜 나에게만 일어나는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나도 같이 따라 죽어야 할까, 내가 수영이라도 배웠으면 바다를 건너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수영을 시작했다. 물론 너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동생은 살아가는 동안 수영이 삶의 일부였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 수영을 삶의 일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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