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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조율 - 내 마음과 마주하기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

by 류안

살다 보면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런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터뜨린 후 깊은 후회를 하거나, 때로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와 스스로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감정이 거칠게 요동칠 때, 많은 분들이 “저는 왜 이런 감정을 느낄까요?”, “혹시 제가 이상한 걸까요?”라고 질문하곤 합니다.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다 보면, 그 감정의 뿌리는 대부분 어린 시절에서 시작됩니다. 가혹한 처벌을 받았거나,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경험했거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혼자 버텨야 했던 분들이 많습니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억누르고 견디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감정들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다가, 어느 순간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흔히 이러한 감정의 표출을 단순한 ‘분노 조절의 문제’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다뤄지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속적인 학대나 방임을 경험한 분들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면, 화가 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슬플 때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됩니다. 이런 감정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지를 배울 기회가 부족했던 경우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특히 성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경우,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적 학대는 단순한 신체적 피해를 넘어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신체적 통증과 두려움뿐만 아니라, 철저히 무력했던 순간으로 기억되며 깊은 불안을 동반합니다. 다시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경계심을 가지게 되며, 감정이 조절되지 않을 경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강한 분노로 표출되거나, 반대로 극단적인 무력감 속에 갇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적 트라우마가 남기는 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이는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 ‘나는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깊은 존재의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확신을 잃었을 때, 감정은 더욱 통제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존재를 위협받았던 경험은, 분노를 통해서든 침묵을 통해서든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 시기의 자신은, 그 환경 속에서 버텨내기 위해 애썼을 뿐입니다. 보호받지 못한 환경이 힘들었던 것이지, 스스로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미리 배우고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그 시절에는 생존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견디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감정을 건강하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을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감정을 가진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은 최선을 다해 버텨왔고, 지금은 그 아이에게 “너는 잘못이 없었어. 정말 수고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감정들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기 때문에, 당사자조차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을 다룰 줄 모르고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진 분들에게,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라는 시선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마음 건강을 돌보는 것은 개인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이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사회가 함께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감정 조절이 어렵다고 해서 누군가를 단순히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람’ 혹은 ‘감정을 잘 참지 못하는 사람’으로 단정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감정은 혼자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율해 가는 과정 속에서 다뤄질 수 있습니다. 사회가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제공할 때, 개인도 자신의 감정을 더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되는 법을 고민해야 하며,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을 함께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미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애써왔고, 버텨왔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차례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면, 혼자 버티려 애쓰기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또한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결코 혼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사회가 함께할 때, 우리는 더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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