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율 - 병식 알아차림
깊은 생각과 흐려지는 현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내담자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특히, 깊은 상상에 빠져 현실과 구별이 희미해지는 경우, 그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채 단순한 우울감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울감을 겪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호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무기력감과 집중력 저하가 더욱 심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상담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고의 흐름을 세밀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우울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현실과의 연결이 점점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깊이 고민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점점 더 복잡해지고 확장되면서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보통 생각이 많아지면 논리적으로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때로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현실적인 과업 수행이 어려워지며, 결국 무기력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사고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우울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여겨졌지만, 상담을 진행하면서 점차 다른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의 변화보다 사고 흐름의 특징이 중요한 요인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지나치게 활성화된 사고 과정이 현실과의 연결을 약화시키고, 그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무기력함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보였습니다.
이 점을 설명드리며 조심스럽게 제안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는 우울감 위주로 치료를 받고 계신데, 혹시 담당 선생님께 사고 과정에 대한 어려움도 함께 이야기해 보시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생각이 많은 것뿐"이라고 여기셨지만, 곰곰이 떠올려보니 사고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면서 현실적인 집중이 어려웠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피로감과 무기력함까지 더해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병원을 방문하셨고,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나누며 사고 패턴과 집중력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의료진은 보다 면밀한 평가를 진행했고, 이후 약물 처방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전에는 머릿속에서 생각에 너무 빠져 있어서, 현실에 집중한다는 것 자체를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흐름이 조절되는 느낌이에요."
변화를 직접 경험하며 스스로도 놀라워하셨습니다.
이전에는 단순한 우울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사고의 흐름이 현실과의 균형을 깨뜨리면서 나타난 어려움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고, 스스로도 우울증으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상담을 통해 자신의 사고 패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병원에서도 이를 반영해 치료 방향이 조정되면서 호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만 접근했다면 놓칠 수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자신의 상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설명하면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어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어렵고, 때로는 스스로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은 회복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자신의 병식을 인식하는 과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상담이나 충분한 면담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의료진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치료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상담사와 병원, 그리고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질 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적절한 도움을 찾는 과정은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것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