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남의 인생 수선하다 내 인생 실밥을 발견했다

by 온마음

빳빳한 청바지처럼 살고 싶었다.

연청도, 진청도, 검청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색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화려하고 멋지게, 그렇게 살아갈 거라 믿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우리는 같은 회사에 다녔다.

점심시간이면 식당에서 자주 마주쳤고

어느 날은 앞뒤로 줄을 섰다.


오전 근무가 많이 힘들었는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 회사 그만두고 싶다.”


장난 같기도, 진심 같기도 한 그 말에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언제든 그만둬.

내가 벌어서 먹여 살릴게.”


그때의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내 마음은 그만큼 단단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청바지처럼 단단하고 빳빳했던 내 자신감은

남편 앞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았고

내가 하는 일도, 앞으로의 인생도 모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승진도, 성공도 당연히 따라올 줄

알았다. 자신감은 하늘 끝까지 자라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하늘 끝에 있던 자신감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던 순간이 내 인생에 두 번

있었다.


처음 유산을 했을 때, 그리고 시험관을 포기했을 때.


임신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무너졌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남편을 많이 사랑했고,

남편을 닮은 아이와 셋이서 평생을 살아가는 꿈이

당연히 이루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믿음의 절망은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꽤 괜찮았다. 늘 평화롭지는

않았지만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하루 이틀이면 툭툭 털고 다시

나로 돌아왔다. 내성적이었지만 수줍음보다

용기가 앞섰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 삶을 살아왔다. 이상형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찾아왔다가 2주 만에 떠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알던 '내가 아닌 사람'처럼 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회복지사로 일했다.


시험관이라는 이름의 3년 공백이 있었고 그 안에는

우울이라는 이름의 슬픔이 차고 넘쳤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버텼다. 완치는 아니었다.

평생 먹어야 하는 약처럼 책과 글쓰기는 내 삶에

남았다. 예전의 자신감은 사라졌고 마음은 많이

다쳐 있었다. 그래도 불치병인 줄 알았던 마음에

약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먹어야 하지만 효과는 꽤 좋은 약.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건 매일 아픈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출근하면 먼저 어제 아프셨던

분들부터 살폈고 밤새 잘 주무셨는지, 식사는

하셨는지를 물었다.


서류를 쓰고 필요한 것을 챙기고 틈틈이 안부를

살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하루를 돌보면서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떤 날은 책과 글쓰기라는 약을

먹지 못했고 그날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때의 나는

그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회사를 뒤로하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삶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약 덕분에 겨우 다시 기워지고 있다. 혹시

당신의 실밥도 터져가고 있다면 나의 이 서툰

수선기가 아주 작은 처방전이 되길 바란다.


이 글을 포함, 앞으로 10개의 수선기를 가감 없이

고백해 보려고 한다. 그 고백에 응원을 보태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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