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곰국

by 수지리



어렸을 때 내 기억에 남아있는 엄마의 밥상. 곰국. 엄마는 곰국을 꼭 솥으로 한 솥씩 끓여두었다. 밥상에 곰국이 올라오면, 기름이 떠있는 것도 싫었고, 다 먹을 때까지 곰국만 먹는 게 지겹기도 했지만, 집안 가득 곰국 냄새가 퍼져있으면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곰탕은 보통 소의 뼈와 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우려내어 가지는 진한 국물의 탕이다. 곰국은 좀 더 맑은 국물이라고 하는데, 그 둘의 차이는 잘 모르지만, 내게는 사골이든, 고기든 푹푹 끓이면 엄마가 끓이던 곰국이 생각난다.

특정한 음식의 냄새를 맡을 때, 우리는 그 음식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기 쉽다. 이는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로 알려져 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성인이 된 후, 어린 시절의 집을 방문하다가 한 조각의 마들렌을 맛보는 그 순간, 마들렌의 맛과 향기가 그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데서 연유된다. 마들렌을 맛보는 순간, 그는 특히 어머니와 함께한 과거의 귀여운 기억, 햇살이 비추는 정원, 그리고 편안함과 행복의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이 에피소드는 ‘감각적 기억(Sensory Memory)’을 통해 단순히 기억은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시간이 지난 현재의 일상에도 연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정서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게 잘 끓인 고깃국 한 입은 우리 엄마의 손가락 모양과 손짓, 나를 부르던 따뜻한 음성까지 모든 게 다시 생생히 온몸에 전해지는 감각적인 경험이며,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자 정체성이다.


나는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자랐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 밥상을 차리며 살았다. 나에게 엄마의 밥상은 특별한 의미다. 아빠 밥을 차리면서 매일 그 생각을 했다. 엄마 대신 엄마 밥상을 내가 차린다고. 근데 지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생각해 보면, 그건 엄마의 밥상을 내가 대신 차린게 아니라, 내가 그 밥상의 엄마였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는 도어락도 없었고, 휴대폰은 물론 삐삐도 없을 때였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집에 오다가 문구점에 들리거나 슈퍼마켓에 들려 아이스크림이라 불량식품을 하나 사서 먹으며 오기도 하고, 가끔 기분이 조금 가라앉을 때는 혼자 우두커니 신발주머니를 들고 운동장에 앉아있다가 멍하니 먼지 냄새를 잔뜩 맡고 나서야 집에 혼자 터덜터덜 걸어오기도 했다. 경비실을 지날 때, 아저씨가 '어이, 학생! 열쇠 가져가"라는 말을 하는 날이면 집에 엄마가 없다는 뜻이고, 아무 말도 안 하면 집에 엄마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은 아저씨가 열쇠를 가지고 가라고 해서, 엄마가 외출하며 열쇠를 맡기고 가셨구나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상하게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9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아주 고기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난 열쇠를 열고 집으로 들어갔고, 엄마가 요리를 해놨나 하며 신발을 벗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자욱한 연기. 부엌에 가보니, 가스불이 켜져 있고, 냄비에서 지지직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다 못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타는 냄새가 났나? 어떤 게 먼저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가서 고개를 빼꼼히 보니 자글자글 갈비뼈가 냄비 바닥에서 타고 있었다. 난 얼른 가스 불을 끄고 냄비에 물을 부었다. 그 순간 화아아 하고 올라오는 하얀 고기연기. 엄마가 갈비찜을 해놓고 불을 끄는 걸 까먹었구나 생각했다. 몇 시간 후 들어온 엄마는 '어머, 집에 이게 무슨 냄새야?, 창문은 왜 열려있어?' 놀란 엄마의 목소리. '엄마, 갈비찜이 다 탔어. 내가 일단 불을 부어놨는데 아무래도 다 졸아서 못 먹을 거 같아. 양념이 다 탄 거 같아.' 엄마는 부엌에 달려가 냄비 안을 들여다보셨고, 나에게 기특하다고 잘했다고 하셨다. 엄마가 불을 끄지 않고 올려놓은 것은 갈비찜이 아니라 곰국이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외출할 일이 있거나 바쁠 때 곰국을 끓이셨던 것 같다. 나는 집에 엄마가 없는 게 싫었다. 혼자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것도 싫었고, 혼자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싫었다. 집에 곰국 냄새가 나면, 그건 엄마가 집에 없거나 곧 집을 비울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엄마가 보고 싶으면 벽지 깊이까지 냄새가 배도록 진하게 곰국을 끓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곰국을 끓이고 있으면, 그때 엄마가 고팠던 시간과 지금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시간이 겹쳐져 그리움이 짙어진다. 그렇게 그리움에 사무쳐 며칠 동안 푹푹 고아서 끓인 곰국 냄새는 그래도 따뜻하다. 나를 달래준다. 엄마가 잠시 비운 집에 다시 올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엄마의 곰국은 항상 진했다. 국물이 뽀얗고 진했고, 들통처럼 아주 큰 냄비에 한솥을 끓이셨다. 아침으로 곰국을 먹는 날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파를 썰어서 위에 얹어주시곤 했다. 그러면 곰국 위에 떠있던 기름이 수면 위에서 동동 떠서 옆으로 몰리곤 했다. 난 지도모양을 그리며 떠다니는 기름이 김치 양념이 묻은 젓가락을 가져다 대면 도망가듯 밀려나는 게, 그 모양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엄마는 곰국을 떠서 주실 때 국자 궁둥이로 기름을 휘휘 저어 옆으로 치우면서 퍼서 담아주셨다. 별로 효과는 없어서, 엄마의 곰국은 늘 기름졌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난 곰국을 끓인다. 그리움을 달래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도 진짜 엄마가 된 기분이다. 첫 탕과 재탕은 같이 섞어서 냉장고에 넣어 기름을 걷어낸다. 저온에서 곰국은 기름층과 고기국물층이 완전히 분리가 되어, 마치 치즈처럼 꾸덕하게 굳어 있으면 그걸 수저로 깨서 전부 깨끗이 걷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곰국은 엄마의 곰국을 닮지 않았다. 삼탕도 끓여내고 나면 네 탕째는 고기와 대파, 버섯, 토란대, 고사리, 콩나물을 넣고 육개장을 끓인다. 이 과정은 마치 의식과 같은 것인데, 사골을 끓여 집안 가득 고기 냄새를 한번 채우고, 육개장까지 끓여서 땀 흘려 한 그릇 먹고 나면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어깨를 펴고 일어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힘이 난다.


난 다시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그리고 난 매일 밥을 한다. 냉장고를 열고 재료를 씻고 칼질을 하고, 그리고 불 위에 음식을 올릴 때 나는 엄마가 된다. 내가 어렸을 때 공부하기 싫은 날 유난히 참기름에 고기 볶는 냄새가 좋아 부엌을 기웃거리던 그때, 요리하던 엄마의 뒷모습 그대로 나는 엄마가 된다. 요리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거인 같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엄마가 해주던 음식을 내가 요리하며 살아나는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여서 좋고, 그것이 밥상에 차려지면 그 밥상을 먹는 것이 나의 딸들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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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날 부르면 곰국을 끓여요, 종이에 과슈, 2025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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