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would you like your eggs?
나는 계란후라이를 참 좋아한다. 계란후라이뿐만 아니라, 계란으로 한 요리는 전부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헛헛하고 텅 빈 마음이 들면 계란 후라이를 해서 먹고 나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아침에 밥을 먹고, 누군가는 아침에 컨티넨털 브렉퍼스트를 먹고, 누군가는 미숫가루로 대신하겠지. 난 어려서부터 항상 아침엔 계란후라이를 먹었던 것 같다. 아침상에 계란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일 정도로 항상 계란이 있었다.
계란 후라이는 굽는 방법과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들을 가진다. Sunny Side Up (써니 사이드 업)은 계란의 한쪽 면만 익히는 방법으로 노른자가 위로 향하며 익히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비치는 형태가 마치 해가 떠오른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덮밥이나 비빔밥 위에 올릴 때 주로 이렇게 요리한다. Over Easy (오버이지)는 부드럽게 한번 뒤집어 노른자도 살짝 익혀준 상태이며, Over Medium (오버 미디엄)은 오버이지와 비슷하지만 노른자를 더 익혀 노른자가 약간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좀 더 달라붙어 있는 상태다. Over Hard (오버 하드)는 계란을 뒤집어서 노른자를 단단하게 익히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Scrambled (스크램블드)는 계란물을 풀어서 팬에 부어 저어가며 익히는 방법으로 기호에 따라 우유나 크림을 넣어 부드럽고 크리미 한 식감이 있다.
우리 엄마는 주로 오버이지와 오버미디엄 사이로 계란 후라이를 해주셨다. 계란을 뒤집어서 양쪽 흰자를 익힌 상태로, 노른자가 흰자 사이에 들어있었다. 포크로 위를 콩 찍으면 노른자물이 흘러나오는 게 재밌었다. 주로 베이컨, 스팸이나 소시지도 같이 굽고, 양배추를 채 썰어 마요네즈에 버물여서 접시에 같이 담아주셨다. 접시에 흘러내려 촉촉한 노른자국물에 양배추를 적셔서 베이컨이나 계란과 함께 찍어 먹는 그 맛이란, 여름이나 겨울이나 밤새 잠들어있던 나의 몸을 깨워주는 꿀맛 아침이었다. 8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코렐 접시, 그리고 그 위에 담겨있는 계란, 베이컨, 양배추는 지금도 매우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엄마는 반숙 계란도 자주 해주셨는데, 그러고 보면 엄마는 노른자가 딱딱해지는 것을 싫어했었나 보다. Soft Boiled Egg (소프트 보일드 에그)는 계란을 삶을 때 익히는 시간을 짧게 해서, 주로 계란 컵에 담아 위를 톡톡 깨서 티스푼으로 떠먹기도 하고 Medium Boiled Egg (미디엄 보일드 에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숙정도라고 보면 된다. 말랑말랑한 노른자 부분에 소금을 조금 뿌려서 먹으면 정말 맛있다. 엄마는 반숙 계란을 참 잘 삶았었다. Hard Boiled Egg (하드 보일드 에그)는 노른자와 흰자가 모두 단단하게 익었고, 끓는 물에 14분 정도 삶아야 한다. 놀랍게도 딸은 이렇게 단단하게 익은 정도를 더 좋아한다. 난 찍 흐르는 노른자를 츄릅 먹는 게 좋은데 말이다.
엄마는 또 스크램블도 자주 해주셨다. 달걀 두세 개를 풀어서 팬에 부어 저어가며 익히다 우유를 꼭 부으셨는데, 그렇게 하면 부드러워진다고 했다. 그리고는 보슬보슬해지면 소금 후추 간을 해서 주셨다. 스크램들은 계란물이 조금이어도 우유를 부으면 양이 많아지는 게 장점이었던 거 같다. 계란을 좋아하는 나에겐 계란은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노란 반숙 국물을 좋아하던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오믈렛을 좋아하셨다. 아빠는 호텔에서 식사하시는 걸 예전부터 참 좋아하셨는데, 조식 뷔페는 물론 저녁식사까지, 특별한 날이면 호텔에 가서 먹는 걸 좋아하셨다. 조식 뷔페엔 거의 항상 달걀을 원하는 대로 조리해 주는 코너가 있는데, 셰프에게 써니 사이드 업을 요구하거나 원하는 재료를 넣어 오믈렛을 주문하면 된다. 아버지는 항상 그 코너에서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오믈렛을 받아오시곤 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오믈렛을 한다. 그럴 때면, 토마토와 양파는 먼저 올리브유에 볶아서 한 데에 놓고, 계란물을 부은 후 한쪽에 익힌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햄과 치즈, 시금치 등을 넣어 반 접으면 치즈가 접착제 역할을 해서 멋진 오믈렛이 완성이 된다. 계란물의 아직 약간 촉촉한 부분이 치즈가 녹으면서 야채들과 함께 씹히는 식감이 좋고, 기본 간만 해도 햄의 짭조름이 맛있다.
아주 오랜만에 꿈에 엄마가 나왔다. 꿈에서 엄마는 아팠고, 아빠가 엄마를 돌보고 계셨다. 엄마가 우리 집에 놀러 오셨는데, 나의 작업실을 정리하고 계셨다. 내가 외출하고 와보니, 내 그림들을 싹 정리하고 그 작업실을 엄마의 공간으로 꾸미고 계셨다. 나는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내 그림을 어떻게 버릴 수 있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힘껏 소리 질렀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꿈에서 내내 낑낑댔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 줌바를 한다. 그날은 줌바를 하고 집에 돌아와 허기를 채우고 샤워를 한 후 잠시 쉬려고 누웠더랬다. 분명 자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있을 거라 생각하고 누웠던 기억이 나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따뜻한 대낮의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게 졸았건만, 끔찍한 꿈을 꿔버린 것이다. 꿈에서 깨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느라 한참이 걸렸다. 무슨 뜻일까. 개꿈이겠지. 달래도 계속 벌렁거리는 가슴. 벌렁거림이 머리까지 울리자 난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했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왔다. 창밖 풍경은 얄궂을 만큼 평온했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프로이트가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꿈에서 나타나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심리적 갈등이나 욕망의 표현이라고 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꿈을 해석하고 초월적인 시공간의 경험을 통해 일상 안에 자신의 심리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했을까? 어디선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꿈을 흑백으로 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흑백 사진과 영화 대신 컬러 이미지와 영상들이 보급되고 나서 컬러로 꾸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머신에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두 개를 꺼내 달궈진 팬에 구웠다. 노른자를 야무지게 살려서 몇 입에 호로로 먹었다. 그리고는 오후에 있을 수업준비를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술 마시는 걸 싫어했다. 한 번은 내가 술을 마시고 집에 왔는데, 바닥에 소주 한 병이 비워진 채 굴러다니고 있었고, 빈 참치켄이 바닥에 있었다. 옆에 엄마는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아마 술 마시느라 들어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나는 그 병을 보고 뾰족한 가시 하나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누워서 잠들어 있던 엄마의 얼굴. 지금도 기억하기를 외면하는 모습들 중 하나다.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술을 마시고 나면, 몸이 가볍게 느껴지면서 선택적 망각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외로운 것도 잠시나마 잊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술을 좋아할 것 같다. 내가 술을 좋아하는 다른 큰 이유 중 하나는, 술을 마시면 내 몸의 구멍들이 확장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내가 들이마시는 공기가, 내가 듣는 소리가, 그리고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이 더 가깝게 내 안에서 나를 접촉한다. 그 세상과 만나는 접촉 경계면에서 이성, 감성이 아닌 다른 힘이 나의 뇌를 지배하고, 그럴 때 하는 생각들은 그 시공간에서는 완벽하게 말이 되는데, 이상하게 그다음 날은 말이 안 되곤 한다. 마법과 같은 그 작용이 난 참 좋다. 시간이 늘어지는 순간은 가끔은 진짜 같기 때문이다. 이 모든 마술적 경험은 허기가 지기 마련이고, 그때 내가 가장 욕구하는 건 계란 후라이다. 내게 후라이는 그런 존재다. 나의 유년시절 내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줬듯이, 어른이 된 지금에까지 어떤 시간이든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그런 존재.
sunny side up for me, 종이에 과슈, 2025 이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