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by 수지리

잔치국수는 한국의 전통적인 면 요리 중 하나로, 예부터 특별한 행사나 잔치, 명절 때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요즘은 가벼운 분식처럼 흔하게 자주 먹는 음식으로도 사랑받는다. 잔치국수는 소면을 삶아 멸치육수와 다양한 고명을 얹어 담아낸다. 면의 길이가 길수록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어 아이의 첫 번째 생일날 돌잡이 할 때 다른 소품들과 함께 국수를 상징하는 흰실을 올려두기도 한다. 우리 엄마는 국수를 참 좋아하셨다. 여름엔 더워서 입맛이 없어서, 겨울엔 추우니 몸을 따끈하게 데우기 위해 국수를 찾으셨다. 시원하게 끓인 멸치 육수에 김치를 쏭쏭 썰어 국수와 함께 후루룩 먹으면 입맛이 없을 때도 잘 넘어간다고 하셨다. 그 덕분에 어렸을 때 딸들도 할머니가 해주신 국수를 자주 먹었다.

엄마는 멸치 똥을 딸 때면, 신문지를 펴서 한쪽에는 배를 갈라 똥을 빼고 머리 딴 멸치 몸통을, 한쪽에는 머리와 똥을 쌓아 두셨다. 멸치똥을 없애야 국물이 떫지 않다고 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도와 멸치 똥을 땄다. 요즘은 육수코인 한알이면 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멸치육수를 한 번에 푹푹 끓여서 식혀 델몬트 오렌지 주스병에 담아 냉장고에 담아두셨다. '며르치 다시'라고 부르셨는데, 멸치와 다시마를 함께 끓였기 때문에 '다시'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언젠가 한 번은 집에 놀러 온 오빠 친구가 냉장고를 열고 보리차인 줄 알고 따라 마신적이 있는데, 몇 모금 벌컥벌컥 마신 뒤 뱉어내던 그날의 사건은 우리끼리 오랫동안 웃으며 얘기하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꿈을 무의식의 창으로 보았으며, 그는 인간의 정신 구조를 의식(conscious), 전의식(preconscious), 무의식(unconscious)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무의식은 개인이 알고 있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욕망, 충동, 기억 등을 담고 있는데, 꿈은 무의식적인 욕망과 충동의 표현이라고 했다. 꿈은 명시적 내용과 암시적 내용 둘다를 포함하는데, 전자는 실제로 꿈에서 경험하는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사건이며, 후자는 꿈의 진정한 의미나 숨겨진 욕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시적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을 많이 꾸었다. 어떤 꿈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는 픽션이었지만, 어떤 꿈은 내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물컹물컹한 어떤 것이었다. 그 어떤 것은 형태가 없는 이미지들과 그와 얽힌 감정들의 혼합이었다. 그 혼합이 나의 욕망들이 드러나는 무의식의 암시였을까? 가끔 눈을 뜨고 나서도 그 물컹물컹한 것들이 온통 나를 뒤덮어 하루 종일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했다. 물컹한 이미지와 감정들의 얽힘은 나를 하루 종일 가라앉게 만들었고,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꿈을 기억하고 싶어 한동안은 머리맡에 스케치북을 두고 잠들었다가 일어나서는 꿈을 그린 적도 있었다.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에 아빠, 오빠, 나 그리고 새언니와 남편까지 모두 한자리에 있었다. 그전날밤 병원에서 엄마 옆에서 잠을 자고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오후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아무래도 오늘을 못 넘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의 부모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퇴근을 조금 일찍 서둘렀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마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퇴근하고 차를 타고 병원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오빠에게 문자를 받았다. "빨리 와...". 헐레벌떡 올라가 보니 엄마는 새언니의 손을 잡고 있었고 눈동자가 위로 돌아가있었다. 그리고 계속 목으로 가래를 누르는 듯한 소리를 그르렁그르렁 큰소리로 내고 계셨다. 엄마에게 내가 왔다고 말했다. 알아들으시는 것 같았으나, 엄마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손을 잡고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르렁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커져만 가는 소리에 온 가족 전부 울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아야 했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지금껏 평생을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말을 뱉어냈다. "엄마... 괜찮아. 너무 힘들면 이제 더 힘 안 줘도 돼. 괜찮아..." 말하는 순간에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의 온몸에 남아있는 힘 그 이상의 힘을 주고 있는 게 느껴졌고,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몇 초 지나자 엄마는 힘을 그만 주기 시작했고, 위로 돌아가있던 눈동자에 힘이 풀려 이제는 초점을 잃은 엄마의 눈은 빛을 잃었다. 이내 그르렁 소리가 끊기고 엄마의 입 밖으로 엄마의 목숨이 흘러나왔다. 시커먼 액체가 흘러나오자, 마치 내가 나의 꿈과 연결되었던 그 끈적함이 나의 온몸을 덮었다. 그 강렬한 느낌이란. 그것은 꿈도, 무의식도 아닌 눈앞에 들이닥친 너무나도 강렬한 현실이었다. 엄마는 한참을 쏟아내고 그렇게 없어지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난 한동안 밤에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아마 돌아가시고 6개월 동안은 아이들 옆에서 잠들었다. 그 따뜻함이 없이는 잠들 수도 괜찮을 수도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 아이들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깊은 밤, 부엌에서 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불이 켜져 있는 부엌으로 가보니 냉장고 문이 열려있었고, 엄마는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엄마 거기서 뭐 해?" 엄마는 조용히 뒤를 돌았다. "왔으면 말을 하지.. 엄마 왜 그러고 있어. 앉아... 내가 국수 한 그릇 얼른 삶아줄게" 엄마는 그날 내가 끓여준 잔치국수 한 그릇을 뚝딱 드시고 가셨다. 눈을 뜨자 내 앞엔 눈을 감고 색색 자고 있는 딸아이가 있었고, 나는 다시 잠이 들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은 꿈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면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우리 엄마는 그날 이후 한번 더 나를 보러 오셨다. 그날은 내게 말씀하셨다. "나 국수 한 그릇 얻어먹으러 왔다." 나는 그날도 맛있게 잔치국수를 한 그릇 말아드렸고, 엄마는 한 그릇 뚝딱 아주 맛있게 드시고 돌아가셨다.

국수 한 그릇,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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