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이

by 수지리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김을 집에서 직접 구웠다. 엄마가 김을 굽는 날이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옆에서 같이 거들곤 했다. 신문지를 펼치고 한쪽에는 마른김을 놓고 두 장씩 집어 겹쳐 놓고 앞 뒤로 기름을 발라 다른 한쪽에 쌓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김의 한쪽에만 기름이 발라져서 느끼하지 않았다. 기름을 다 바르고 나면 다시 두 장씩 소금을 앞뒤로 뿌려서 다시 쌓으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손을 탁탁 털고 잘 달궈진 팬에 두 장씩 '이븐'하게 구우면 고소하고 맛있는 김구이가 완성이었다. 나는 주로 기름 바르는 일을 맡아서 했는데, 기름은 참기름 반 식용유 반을 섞었고 붓으로 잘 펴 바르면 되었다. 김의 오돌토돌한 표면에 기름이 잘 발라지면 반질반질해졌고, 그 표면 위에 소금을 한 꼬집씩 집어 툭툭 던지듯이 뿌리면 되었는데, 손끝에 남은 소금을 빨아먹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내가 김을 다 재우면, 엄마가 김을 구울 차례였다. 엄마가 팬에 김을 두 장씩 앞뒤로 뒤집개로 눌러 잘 구워 옆에 쌓아두면 나는 그 뜨거움이 가시기 전에 몰래 한 장씩 주워 먹었다. 구울 때도 두장씩 겹쳐서 굽는 이유는 김의 향이

다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두장씩 구우면 빨리빨리 구워져 많이 쌓이니 그게 마냥 좋았다. 엄마는 분명 김이 쌓이는 양을 보면 내가 몰래 먹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몰래 한 장씩 먹는 나의 재밌는 놀이를 모른 척해주셨다. 김을 한 장 한 장 먹을수록 소금기 때문에 입술이 꺼끌꺼끌해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물 한잔을 마시고 방에 들어갔다. 그러면 엄마는 다 구워진 김을 쌍둥이 헹켈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통에 잘 담아두었다.

어렸을 때 난 공부하기 싫으면 책으로 도망치곤 했다. 책을 읽으면 농땡이 친다는 죄책감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시엔 책만큼 재밌는 것도 별로 없었다. 인터넷도 컴퓨터도 휴대폰,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엔 부잣집 할아버지가 유산을 남겨주어 부자가 되는 소녀의 이야기나, 전쟁통에 폐허가 된 집을 지키며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 라며 외치는 주인공의 목소리만큼 짜릿하고 재밌는 건 없었다.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 보면 책 속 허구의 세상도 나의 상상 속에선 꼭 진짜 같았고, 그런 공상의 시간을 난 유난히 좋아했는데, 그러고 보면 그 공간은 내게 푸코가 얘기한 ‘헤테로토피아’였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 어린 시절 나는 침대에서 나만의 비밀 공간으로 여겼고,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탐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그 안에서 있다 보면 꼭 입이 심심해서 부엌에 기웃거리곤 했다. 다시 나만의 ‘헤테로토피아’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난 엄마가 김을 잘라 잘 담아둔 통을 부엌에서 몰래 가지고 와 침대 위에서 먹으며 책을 읽었다. 침대에 김가루와 소금이 잔뜩 떨어지면 그게 들킬까 봐 털어내고 아무 일도 없는 척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은 침대와 벽면 사이 틈에 김통을 숨겨두고는 다시

가져다 놓는 걸 까먹어서 저녁 밥상을 차리다 말고 엄마가 김통을 찾으면, 나는 서둘러 방에서 가지고 나와 아무렇지 않게 상 위에 올려놓곤 했다. 엄마는 날 '김순이'라고 불렀다.



어렸을 때 국제학교에 도시락을 싸고 다녔는데, 엄마에게 샌드위치 말고 밥을 싸달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김치는 냄새가 난다며, 밥이랑 김을 싸주셨다. 김을 본 외국인 친구들은 black paper라며 신기해했다. 엄마는 김을 유니랩에 싸서 넣어주시곤 했는데, 나는 한 장 한 장 그 김을 엄마가 어떻게 구웠는지 알았기 때문에, 친구들이 한 장만 달라고 했다가 다 먹지 못하고 뱉어버릴 때면 그 김도 아깝고 친구들도 밉고 그랬던 것 같다. 요즘은 김밥이 트렌디한 음식이 되면서, 김이 친숙한 식재료가 되었다. 검정 종이라며 이질적인 식감에 눈살을 찌푸리던 시대는 갔다.

우리 아이들 국제학교 행사 때마다 난 김밥을 자주 싸간다. 정말 눈앞에서 순식간에 없어진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찌나 김밥을 잘 먹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 엄마가 간단한 김밥을 싸주셨던 기억은 있으나, 갖은 재료 다 들어간 소풍 갈 때 먹는 집김밥은 별로 안 싸주셨던 것 같다. 그래서 특히 김밥에 한해선 어깨너머로 배운 게 정말 없었다. 엄마는 김선수였지, 김밥이랑은 안 친하셨던 것 같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기 시작하고, 도시락을 싸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그제야 싸기 시작한 내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기 일쑤였고, 흐믈흐믈해서 젓가락으로 집으면 후드득 떨어지고 했다. 지금은 김밥은 쉽게 열 줄 스무 줄도 싼다. 소금, 참기름, 맛술로 미리 간을 한 밥을 적당량 김 위에 펴 발라 재료를 물기 없이 차곡차곡 담아 준비해서 돌돌 잘 말고, 김 표면에 반지르르 참기름을 조금 바르고 잘 드는 칼로 먹기 좋게 자르고 나면 맛도 모양도 소풍 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면 음식에 정서가 깃든 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김밥은 정말 싸기만 하면 꼭 어디 나들이 가는 기분이 든다.


엄마 돌아가시고, 아빠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바로 전날까지 꼬박 7년 동안 난 아빠 밥을 차렸다. 가끔 이렇게 밥을 하고,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다 보면 언젠가 엄마가 아빠 밥을 해드린 날보다 내가 해드린 날이 많아지는 순간이 올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엄마가 살아계시고 우리가 어렸을 땐 아빠가 일을 하셨고 또 저녁은 거의 항상 밖에서 드시고 오셨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 시기에 외출을 안 하던 아빠를 위해 삼시 세끼를 내가 차려드렸던 점을 감안하면 어쩜 그릇수로는 큰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땐 출근을 해야 하고, 아빠는 집에 계시니 김밥을 자주 싸두었다. 김밥을 접시에 담아 뚜껑을 덮어두고, 국을 인덕션 위에 올려두면 데워서 함께 드시곤 하셨다. 아침에 시간이 있어 김밥을 싸둔 날은 마음이 편하지만, 정신없이 나오느라 식사 준비를 못해두고 온 날엔 급하게 햄버거를 시켜드리기도 했다. 아빠는 맥도널드 쿼터파운드 버거를 좋아하셨다. 이도 저도 아닌 날은 식사를 챙겨드리러 점심시간에 맞춰서 집에 급히 들어왔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온다는 게 그만 10분 정도 늦었다. "아빠 저 금방 들어가요.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라는 카톡문자 앞에 1이 없어지지 않아 초조해진 나는 한층 급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고, 부엌에 가보니 싱크대에 딱딱한 냉면이 물에 담긴 채 그대로 버려져있었다. 기다리다가 배고픔을 못 이긴 아빠는 내가 나가기 전에 해동하려고 내려둔 둥지냉면을 꺼내 드셨는데, 면을 삶지 않고 그냥 육수에 풀어서 드시려고 했던 모양이다. 삶지 않았는데, 녹았다 한들 육수에 풀어질 리가 있나 그 딱딱한 걸 드시려고 몇 입 드시다 그대로 버리신 거다. 외출했다가 돌아왔더니 아직 끓지 않는 냄비에 라면을 넣고 드시려다 그냥 내팽개쳐두고 못 드신 적이 있다며, 너희 아빠는 라면도 하나 혼자 못 끓이는 사람이라고 하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생각한다. 그 10분이 뭐라고 기다리지 하는 마음 반, 조금만 더 서두를걸 후회하는 마음 반으로, "아빠, 얼른 볶음밥 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라며 급한 마음에 팬에 기름 먼저 두르고 냉장고에 있던 야채들을 다 넣고 서둘러 볶음밥을 해드렸던 기억이 난다. 항상 급하게 한 밥에는 김이 최고의 짝꿍 반찬이다. 아빠는 밥을 떠서 숟가락을 살짝 아래로 뒤집어 밥의 윗면으로 김을 콩 찍어서 드시는 걸 좋아하셨다. 정말 신기했다. 밥의 찰기에 김이 딱 한 장 올라와 붙으면 그걸 입에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김 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따라 하면 꼭 밥이 쏟아지거나 밥알이 흘러버리곤 했다.


최근 흑백요리사에 이모카세님의 김이 인기였다.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들도 직접 재워 정성껏 구운 김의 정서가 고팠던 모양인지, 이모카세님은 김구이 하나로 팀전에서 주인공이 되었다. 김을 굽는 장면을 보는 내내 어렸을 적 엄마가 구워주시던 김이 생각났다. 봉지 하나 뜯으면 커다란 포장에 김반 공기반 들어있는 시판 조미김과는 달리 푸짐하게 쌓여있는 김은 예전에 엄마의 김구이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이제부터 김을 좀 구워볼까.

엄마의 김구이,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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