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치킨

by 수지리

엄마가 튀겨준 닭날개 튀김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맛이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튀김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특히 어렸을 때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나와 젖은 손으로 집어 먹던 따뜻한 닭날개 튀김요리는 바삭한 겉면에 안쪽에는 적당한 육즙과 기름을 머금고 있었다. 닭날개를 튀겨주시는 날이면, 난 한자리에서 놀라울 만큼 먹어치우곤 했다. 예전에 삼촌이 집에 놀러 오셨는데, 내가 먹는 양을 보고 놀라셨다고 하셨다. 엄마는 튀김요리를 잘하셨지만, 내가 중학교 올라간 뒤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두셨다. 튀김요리를 딱 끊으셨고, 더 이상 튀김냄비를 꺼내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고등학생이 된 오빠와 점점 자라는 나의 체중조절을 위함이었다. 그런데 조금 불공평한 느낌이었다. 튀김을 좋아하는 입맛으로 키우시곤, 그 맛을 뺏어가다니 말이다.


어렸을 때 기억나는 치킨요리 중에는 치킨 티카(Chicken Tikka)가 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치킨 티카는 인도 및 파키스탄의 전통 요리 중 하나로, 양념에 재운 닭고기를 구워낸 요리다. 주로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굽는데, 요구르트로 닭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풍미를 더 해준 뒤 커닝, 고수, 강황, 고춧가루, 생강, 마늘 등의 향신료로 재워뒀다가 오븐이나 숯불에 굽는다. 전통적으로는 탄두리 오븐에서 구워졌기 때문에 이를 탄두리 치킨이라고 하기도 한다. 어려서 쿠웨이트 살 때 자주 사 먹었다. 가족들이 함께 치킨 티카를 먹으러 가던 식당 앞엔 닭꼬치를 뜯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붙어있고, 그 옆에 말풍선에는 "chicken licking good!"라고 쓰여있었다. 오빠와 나는 그 아이의 포즈를 따라 하며, 손에 묻은 치킨 양념을 한두 번 쪽쪽 빨아먹은 뒤 "chicken licking good~" 라며 인도식 억양을 흉내 내며 깔깔거리곤 했다. 탄두리 오븐 벽면에 밀가루 반죽을 붙여 구워낸 난에 그 닭고기를 싸 먹던 맛이란!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맛본 림스치킨도 물론 맛있었지만, 몇 해가 지나 인도음식이 우리나라에 유행을 할 무렵 강가라는 인도카레체인점에서 탄두리치킨을 다시 먹었을 때의 반가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닭날개 튀김 다음으로 자주 해주시던 건 간장닭다리오븐구이었다. 닭다리에 간장 데리야끼 양념을 진하게 발라서 알루미늄 호일로 끝부분에 띠를 만들어 싸서 오븐에 넣어 구웠다. 양념이 꾸덕하게 잘 코팅된 닭다리구이는 생일상마다 올라오는 단골 메뉴였다. 어렸을 때 엄마는 생일파티를 항상 집에서 거하게 차려주시곤 했다. 그럴 때면 외국 친구들 한국 친구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엄마가 직접 구워 장식해 준 케이크를 나눠먹고 놀았다. 하루는 물풍선을 가지고 놀던 내 어느 생일날이었다. 8번째 아니면 9번째 생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나는 물풍선을 벽에 던지자 터지는 게 재밌어서, 풍선에 물을 채워 묶어 여러 개 준비해서 바구니 가득 채워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당시 2층집에 살던 우리는 2층 난간 밖으로 옆집 벽에 던지기 시작했는데, 그 풍선들은 옆집 1층 마당에 놓여있던 빨래 건조대 위에 터지고, 바닥에 한가득 떨어졌다. 이내 옆집 아주머니가 화가 나서 집안에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우리를 향해 아랍어로 뭐라 뭐라 크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나는 난간 아래로 몸은 숨기고 키득거리며 풍선을 계속 던졌다. 마치 물풍선 폭탄을 적군에게 던지듯, 큰 포물선을 그리며 연거푸 물풍선을 던져댔고, 그때마다 커지는 옆집 아주머니의 소리에 우린 더 크게 웃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던지자, 2층으로 뛰어올라오셨다. 그 소리에 친구들과 나는 집으로 뛰어들어와 방에 숨었다. 그 순간 얼마나 큰 두려움에 쌓였는지, 영문도 모르는 엄마가 딩동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 때까지 심장은 쿵쾅쿵쾅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우리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마법을 부리셨고, 아주머니는 이내 화가 풀려 떠듬떠듬 안 되는 영어로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평온을 찾았다. 엄마는 나를 부르셨고, 쭈뼛쭈뼛 나간 나는 엄마의 배에 뒤통수를 대고 옆집 아줌마에게 사과드렸고, 아줌마가 알았다며 돌아가시자마자 난 그대로 뒤돌아 엄마 배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친구가 찍은 사진이 아직도 앨범에 있다. 그때 엄마의 품은 내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하든, 어떤 두려운 상황에 있든 안길 수 있고 안겨도 되는 아주 포근한 큰 품이었다. 그날 난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심장 뛰는, 가슴문이 활짝 열려 그 밖으로 날아가는 듯한 쾌락과 자유를 느끼는 순간에라도 도덕적인 잣대를 잃으면 안 된다고. 안 되는 건 다 이유가 있다고. 한 가지 행동이나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 이외의 다른 건 보이지도 않던 세상에서 벗어나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우리가 살던 그 2층 집엔 수영장이 있었다. 1층 공동 정원에 있는 그 수영장은 총 9집이 나눠 쓰는 수영장이었다. 나는 그 수영장이 참 좋았다. 크기가 아담했고, 타원형으로 생겼었는데, 수면이 깊은 곳은 또 제법 깊어서 깊숙이 잠수를 할 수 있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그 수영장에 들어가려면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을 지나갔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정원에 꽃이 필 때면 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나라에 살면서 그런 정원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사치에 가까운 럭셔리한 조경이었다. 하지만 벌이 웅웅 날아다니는 정원을 지나려면, 나는 몇 번의 망설임을 이겨내고, 속으로 몇 번이나 하나 둘 셋을 되뇌고 나서야 겨우 눈을 감고 침 꿀꺽 정원을 까치발로 뛰어넘어 물속으로 점프해야만 했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때부턴 천국이다. 나는 물속에 내 세상을 건설했다. 가끔 야외용 간이 의자를 질질 끌고 와서 잠수해 물속에 넣어두고, 그 아래 보석함을 숨겨두고는 내가 마치 보물섬을 지키는 선장이라도 되는 듯 으슥해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경비아저씨는 가만히 와서 그 의자를 꺼내셨다. 그 경비아저씨는 딱 한마디밖에 영어를 못하셨다. "Good morning, mam".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에도 항상 만나면 똑같이 굿모닝이라고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가 영어를 잘했다면 난 아주 많이 혼났을 거 같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수영하고 있으면 엄마가 2층에서 접시 한가득 닭날개 튀김을 오시곤 했다. 그러면 수영장에서 몸을 일으켜 반즘 나와 엄마가 튀겨온 닭날개를 먹었다. 배 아래로는 시원한 물속에 붕 떠있고, 배 위로는 물방울들이 햇볕에 말라가며 피부를 간지럽히고 있고, 팔하나는 땅에 몸을 지탱하고, 나머지 하나는 열심히 닭날개를 뜯었다. 호호 불어가며 하나를 겨우 다 먹고 나서 접시를 보면 그 새 반이상을 다 먹은 건 우리 오빠였다. 4살 차이 나는 오빠는 당연히 나보다 먹는 속도가 참 빨랐다. 그러면 난 시무룩하게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리 열심히 먹어봐도 두세 개 먹고 나면 접시의 바닥이 보였다. 그러면 엄마는 조용히 등 뒤에서 접시 하나를 더 내어주시며, "짜잔~한 그릇 더 있지~" 하며 활짝 웃었다. 아, 그 백만 불짜리 미소. 엄마의 음성은 정말 맑은 솔이다. 도레미파솔 할 때 솔의 음정으로 말하던 우리 엄마. 난 그러면 다시 닭날개를 뜯어먹곤 했다. 두 번째 접시는 얘기가 달랐다. 속도차이가 크지 않았다. 오빤 이미 배가 조금 찼으니까 나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정확히 엄마가 두 접시를 튀겨서 한 접시를 먼저 주시고, 하나는 조금 있다가 주신 이유였다. 계속 먹다 보면 물속에 잠겨있던 차가운 배속이 따뜻하게 채워지고 난 또다시 몇 시간을 수영할 수 있었다. 그 수영장은 내게 무한한 놀이의 공간이었다.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공간. 잠수해서 들어가 수영장 바닥에 붙어있기도 하고, 수영장 벽면을 따라 민물장어처럼 개헤엄을 치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배영 하다 보면 어느새 집에 들어갈 시간이 늬엇늬엇 되어있었다.


엄마가 해준 닭날개튀김 덕분에 난 냉동너겟이 마트 냉동칸에 널린 시대가 와도, 항상 딸들에게 집에서 닭다리정육을 손질해서 직접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줬다. 너겟이나 양념순살치킨 대신 홈메이드 가라아게나 닭강정을, 그리고 배달 치킨 대신 닭날개 튀김이나 닭날개 오븐구이를 해주었다. 엄마의 닭날개 튀김은 내게 컴포트 푸드(comfort food)였다. 컴포트 푸드는 위안이나 감정적 만족을 주는 음식으로, 주로 따뜻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족 레시피가 많다. 난 내게 엄마의 음식이 그랬듯, 내가 해주는 요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음식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치킨을 아예 시켜 먹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퇴근이 늦은 워킹맘이 된 이후엔 학원 마치고 늦게 오는 아이들의 하원시간과 나의 퇴근시간에 맞춰 치킨을 배달해 놓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굴 마주 보며 치킨 상자를 열어 한 입 베어먹는 기분이란 정말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럴 때면 나는 스파클링와인이라도 한병 따 마시고 아이들은 우유 한잔 하며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로 살며 맛보게 된 인생의 재미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

딸이 유치원 다닐 때 딸의 친구 엄마가 하루는 내게 와서 얘기했다. 자기 딸이 내가 튀긴 닭고기를 너무 좋아한다고. 딸이 어렸을 땐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업을 하거나 팀 스포츠를 할 때면 간식거리를 조금씩 가져가 같이 펴놓고 먹곤 했는데, 항상 나의 치킨이 인기였다. 용가리치킨보다 훨씬 맛있다며, 닭다리살을 두팩을 전부 잘라 튀겨가도, 금방 동이 났다. 닭다리 정육을 사서 먹기 좋게 잘라 우유에 재워두었다가, 건져내 소금 후추 간을 하고 찹쌀가루와 튀김가루 반반 섞어 지퍼락에 넣고 조물조물 주물러준다. 그렇게 하면 닭고기에 골고루 반죽이 묻고, 닭고기에 아직 조금 남아있는 우유 때문에 튀김반죽이 찐득하게 잘 버무려진다. 그리고 난 거기에 간장을 아주 약간 넣어 잘 비벼준다. 그러면 감칠맛이 나고 간이 딱 맞다. 타지 않게 튀겨내고 식혔다 한번 더 튀겨내면 겉바속촉 그 자체 맛있는 가라아게 완성이다. 튀길 때 꼭 지켜야 할 점은 귀찮아도 닭정육 한 덩이 한 덩이 꼭 따로 떼어 내어 하나하나 기름에 넣어 튀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바삭하게 잘 튀겨진다. 귀찮다고 한 뭉터기씩 넣으면 그 맛이 안 산다. 거기에 데리야끼 소스 졸여서 버물리면 닭강정이고, 그냥 먹으면 담백한 가라아게다.


엄마의 닭날개, 종이에 과슈, 수지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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