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냐

by 수지리

라자냐(Lasagna)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파스타 요리 중 하나로, 고대 그리스의 "라가논(laganon)"이라는 밀전병 사이사이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오븐에 구운 요리에서 유래되었다. 중세시대에 이탈리아 각 지역에 퍼져 다양한 형태로 요리되기 시작했고, 나폴리 지방에서 고유한 라자냐가 조리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기본 메뉴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라자냐를 집에서 자주 해주셨다. 그럴 때면 커다란 사각 파이렉스(Pyrex) 유리 오븐 용기에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엄마표 토마토소스, 라자냐, 크림을 번갈아가며 쌓고 맨 위층에 치즈 이불을 두 겁 게 덮어 오븐에 구워주셨다. 치즈가 지글지글할 때 꺼내 뒤집개로 라자냐를 조각내서 뜨면 라자냐 윗면 치즈가 찍 늘어났고, 따뜻할 때 호호 불어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엄마는 요리할 때 노래를 자주 부르셨다. 그래서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볼 때면 항상 엄마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렸다. 엄마는 목소리가 참 맑고 이쁘셨다. 그리고 노래할 때 음성이 참 컸는데, 그래서인지 성가대를 하면 엄마가 속한 파트가 목소리가 컸다. 그래서 그날그날 인원에 따라 부족한 파트에 서느라 알토와 소프라노를 번갈아가며 하셨다. 어린 마음에는 성가를 부를 때 엄마의 목소리가 큰 게 창피했다. 엄마는 노래 부를 때 항상 콧구멍이 유난히 커지곤 했는데, 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그런 엄마를 놀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엄마의 그런 모습이 참 좋았는데,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거 같다. 엄마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아바를 좋아했고, 송창식을 좋아했다. 클래식은 주로 모차르트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즐겨 들으셨는데, 거실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던 뱅앤 올룹슨(Bang & Olufsen) 전축에 CD를 틀어놓고 청소하시던 모습도 마치 음악을 들으며 왈츠를 추는 모습 같았다. 물론 이건 내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에 한해서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엄마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13년 먼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다른 누구보다 그 아줌마를 좋아하셨다. 그 아줌마는 엄마의 환갑생일에 송창식을 불러 파티를 해주겠다던 멋과 재미를 아는 친구였다. 그러던 아주머니는 너무나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고, 엄마의 환갑생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점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예중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한 나는, 매일 학교 아니면 미술학원, 그것도 아니면 학과 학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시락반찬으로 엄마는 다양한 음식을 싸주셨다. 엄마가 해주던 라자냐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도시락에 넘어주셨다. 그럴 때면 가장 아래에 깔리는, 그래서 가장 뜨겁게 보온되는 국통에 라자냐를 꾹꾹 담아서 넣어주셨다. 오븐에서 나온 라자냐를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은 아니었지만, 도시락에서 꺼내 먹는 라자냐에도 똑같이 엄마의 미트 토마토소스가 잔뜩 들어있었다.


브라질에 살 때 엄마 아빠가 놀러 오신 적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와서 보낸 첫밤, 잠이 안 와 아이들 옆에서 신랑과 카톡으로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신랑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면, 엄마 아빠가 브라질에 오셨을 때라고 했다. 그러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잘해드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27시간 비행을 마치고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했던 날, 난 혼자 운전해서는 처음으로 공항을 갔었다. 가는 길을 알았음에도 순간 길을 잘못 들었는데, 차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한 이십 분 정도 늦게 공항에 도착했었다. 내가 그때까지 살면서 느낀 가장 긴 이십 분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 라자냐를 요리했다. 브라질로 이사 간 후 몇 번인가 엄마를 생각하며 나도 라자냐를 요리해 봤는데 아이들도 잘 먹었고 내 입에도 잘 맞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엄마가 나를 위해 요리해 줬듯이 나도 엄마를 위해 해주고 싶었다. 나도 라자냐를 이만큼 맛있게 요리하는 엄마가 되었다고 보여드리고 싶었다. 시차 때문에 힘들어하던 엄마는 그날 별로 입맛이 없다고 하셨지만, 내가 한 라자냐를 한입 먹는 아빠는 "여보 이리 와서 먹어봐, 수지가 한 라자냐가 맛있는데?"라고 말하셨다. 나는 그때 기분이 좋았다. 그날 나는 라자냐를 할 때 토마토소스를 직접 만들진 않지만, 시판 토마토 페이스트에 고기와 양파를 볶아 사용했고, 크림대신 우유 약간양을 촉촉할 정도만 부어주고 리코타 크림치즈를 이용했다. 그리고 맨 위엔 모차렐라 치즈와 파마산 치즈를 반반 섞어 덮어주었다. 우습게도 처음 라자냐를 했을 땐 미리 라자냐를 삶지 않고 딱딱한걸 그대로 넣었다가 오븐에 구웠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라자냐가 익지 않아 몇 번을 오븐에서 꺼냈다 넣었다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턴 라자냐 재료를 준비할 때 라자냐부터 삶는다. 몇 번을 반복하자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고, 그날 엄마 아빠는 내가 한 라자냐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 아마 계시는 동안 내가 했던 음식 중에 라자냐를 가장 맛있게 드신 거 같다. 그리고 난 바로 다음 날 지독한 기침감기가 걸려 한참을 아팠고, 난 하필 엄마가 와있는 동안 아플까 속상했지만, 어쩌면 엄마가 오셔서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타지의 땅을 나의 집으로 만들어주셨으니까, 긴장이 풀어진 것도 맞는 것 같다. 엄마 아빠는 한 달을 재밌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엄마 아빠가 주무시던 텅 빈 방에 들어가 보니, 베개 위에 봉투가 하나 있었다. 그 봉투 안에는 환전했다가 쓰지 않아 남은 브라질 돈이 들어있었고, 그 봉투 위엔 아버지의 글씨로 멋지게 쓰여있었다. "꿈은 이루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한참을 흐느꼈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와 결혼했다. 연애할 때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가 있는 걸 보고 난 언젠가 엄마에게 그 남자의 노래 솜씨를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우리 엄마도 기대했던 거 같다. 노래방에 같이 가서 송창식 노래를 불러주기를 아주 오래 바라셨고, 나보다 훨씬 클래식에 대해 잘 알고 음악 파일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남편이 엄마의 아이팟에 음악을 바꿔 넣어주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당시 1년의 반 이상은 출장 가있던 남편은 출장에서 돌아오면 가끔 엄마의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해 주었고, 그런 날이면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산책을 하고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음악을 사랑하던 엄마는 병원에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맞고 버티던 마지막 나날에 조금씩 약기운이 가고 정신이 돌아올 때면, 내가 핸드폰으로 틀어주는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들으며 옥상정원에 가는 시간을 좋아하셨다. 나도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암이라는 무서운 놈 앞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7080 노래들을 열심히 모아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엄마옆에 틀어두고 엄마 다리를 주물러주는 것, 그게 마지막까지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던 효도였다.

지금도 난 엄마가 노래 흥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면, 보글보글 요리하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그 맛있는 냄새, 행복한 시간, 엄마의 시간을 먹고 난 이렇게 자랐다. 그리고 지금 나의 이 시간도 보글보글 나의 딸들에게 맛있기를 소망하며 또 부엌에 들어선다.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된 라자냐,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엄마표 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