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케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크로켓 (Croquette)이라는 으깬 감자나 베샤멜소스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섞어 튀긴 음식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며 생긴 이름이다. ‘croquette’는 프랑스어 동사 croquer (바삭바삭 씹다)에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일본에 유입되면서 대중화되었다. 마찬가지로 빵도 포르투갈어 'pão'에서 유래했으며,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전한 것이 조선후기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 옛날 일본을 거쳐 한국화 된 음식들을 먹고 자랐는데, 어른이 된 지금 유럽에 와서 생활하며 그 원본을 만나니, 그 변화와 응용에 담겨있는 역사와 세월의 이야기도 참 흥미 있는 것 같다.
나는 영국에서 태어났는데, 그래서일까, 엄마는 으깬 감자 (Mashed Potato)를 자주 해주셨다. 나는 엄마가 감자를 푹푹 삶아 포크로 쿡 찔러 감자가 잘 익었는지 확인한 후 버터와 우유를 넣고 으깨는 걸 지켜보곤 했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가끔은 내가 하겠다며, 매셔로 잘 익은 감자를 으깨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 작은 몸의 무게를 팔에 실어 매셔로 감자를 힘껏 눌러서 으깼다. 매셔 위로 지렁이처럼 삐져나오는 으깨진 감자를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쾌감과 비슷할까. 나는 아직도 내가 7,8 살 때부터 엄마가 사용하던 매셔를 가지고 있다. 결혼할 때, 엄마에게 그 매셔를 받아왔다. 디자인도 더 깔끔하고 예쁜 매셔가 많지만, 나는 그 매셔로만 감자를 으깬다. 이제는 갈색 손잡이 부분이 코팅이 거의 벗겨졌지만, 감자를 으깨는 스테인리스스틸 부분은 아직도 멀쩡하다. 그 매셔를 들고 감자를 으깰 때면, 어렸을 적 엄마가 잘하나 지켜보며 바라보던 작은 여자아이가 된다. 그렇게 으깨다 보면 포슬포슬 감자가 버터와 우유와 잘 섞여 부드러운 반죽처럼 된다. 거기에 소금 후추 간을 하고 나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으깬 감자는 그대로 파스타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 사이드 디쉬로 먹거나, 그 반죽에 다진 소고기나 참치를 넣고 뭉쳐 준 뒤 밀가루, 계란물, 빵가루 순서로 골고루 무쳐서 튀겨내면 감자 고로케가 된다. 우리 엄마는 감자 고로케를 일식집에서 파는 납작한 모양이 아닌, 동그랗게 돌돌 말아서 튀겨내시곤 했다. 엄마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겉은 바삭하고 안에는 부드러운 그 고로케는 몇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엄마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어렸을 때 내가 먹던 고로케를 나는 똑같이 만들 수 있었다. 엄마의 매셔로 말이다. 조금 더 멋을 내려면, 우유 대신 생크림을 넣으면 더 크리미 하고 고소해진다. 그리고 고로케를 뭉칠 때 빵가루에 콘프레이크를 부셔서 같이 섞어서 튀기면 더 바삭하다. 으깬 감자가 너무 묽으면 동그랗게 뭉쳐지지 않거나, 뭉쳐져도 튀기는 중에 모양이 망가져버린다. 반대로 또 너무 뻑뻑해도 쉽게 부스러지고, 튀기는 중에 두세 개로 갈라진다. 적당한 농도의 감자를 반죽해서 잘 굽는 것이 중요하다. 양 손바닥으로 동글동글 돌려서 모양을 잡은 후 주먹 쥐듯 단단하게 뭉쳐서 쪼로로 쟁반에 줄 세워뒀다가 밀가루를 담은 접시에 굴린다. 밀가루가 골고루 묻으면 톡톡 털어주고 계란물에 풍덩 담근다. 이때 계란물에서 꺼낼 때가 난 어려웠다. 엄마가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야 했고, 젓가락을 잘못 사용하면 젓가락 자국이 나거나 그 자국대로 갈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난 숟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려보았지만 그 역시 계란물이 너무 많이 따라 올라와서 효율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국 손으로 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신 손으로 하면 바로 건져 올려 빵가루 위에 굴릴 때 계란물이 묻은 손을 사용하면 계란과 빵가루가 엉겨 붙어 범벅이 되기 때문에, 왼손으로 건져서 오른손으로 빵가루를 무치는 양손권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번거롭긴 하지만, 감자 고로케는 항상 맛있기 때문에 그만한 수고는 충분히 할만하다.
난 스페인 음식을 참 좋아한다. 하긴, 스페인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그중에 크로케타(croqueta)는 하몽, 치즈, 대구를 넣어 오늘날 매우 인기가 높은 타파스 중 하나다. 타파스(Tapas)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들을 비교적 작은 포션으로 주문하여 함께 나눠먹는 스페인음식이다. 스페인어 동사 'tapar' (덮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tapa'는 뚜껑 또는 덮개라는 뜻이다. 실제로 술잔에 파리나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빵이나 하몽을 덮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빈 속에 술을 마시면 속을 다칠 수 있으니 위벽을 보호하려고 같이 내어주던 안주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나는 12살부터 1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미술 전공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부모님을 설득한 이후, 예원학교를 거쳐 예고를 졸업하고 미대생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공연예술과 스페인어권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관심은 대학원 과정을 스페인희곡전공으로 택하는 길로 이어졌다. 스페인어권 문학과 예술은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전형적인 미의 윤곽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딱 하나, 스페인어였다. 아무리 열정이 있다 한들, 스페인어로 텍스트 분석도 어려웠고, 발표도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히 스페인어문학과에 오는 학생들은 이미 스페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스페인어 초보 그림쟁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존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생활을 하다가, 방학마다 아르헨티나로, 스페인으로 공부할 겸 연수를 떠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교에 여름학기 수업을 신청해서 떠났던 때였다. 그 해 여름 난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수업은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두 시간 하는 제법 인텐시브 한 전공과목 수업이었다. 전부 알아듣는 척했지만, 수업 특성상 매일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각각 다른 지역 출신이라 악센트가 모두 달라 알아듣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학부생의 노트를 빌려서 기숙사에 가서 복습을 하곤 했는데, 그 학생은 빌바오에서 온 고딕패션을 한 괴짜 여학생이었다. 말이 어찌나 많은지, 노트를 빌린 대가로 난 쉬는 시간을 반납하고 그 아이의 끊임없는 고민들을 들어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속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외로움과 답답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숙사 공중전화로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전화해 울음을 쏟아내며 말이 안 통해서 너무 힘들다고 서럽게 통곡했던 기억이 난다. 통화를 하고 나오면서 맞은편 기숙사 방을 쓰는, 곱슬머리가 아주 이쁜,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에스메랄다를 닮은, 여학생과 마주쳤다. 그 아이는 눈이 부어있는 나에게 그날 친구들과 나가서 한잔 할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았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이후 난 그날 친구들과 첫 외출을 하였고, 그렇게 나가서 타파스 맛을 처음 보았다. 그 친구들은 8시에 만나 슬슬 걸어가서 9시즘부터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9시부터 와인과 타파스를 먹었다. 나는 기숙사 식당 밥만 먹고 지내다가, 갖은 신선한 재료로 먹기 좋게 조리되어 작은 포션으로 줄줄이 나오는 음식들이 너무나 맛있었다. 소금에 올리브유만 둘러 구운 버섯, 하몽, 빵에 토마토를 갈아서 마늘과 함께 올린 토마토 꼰 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감바스 알 올리오도 맛있었지만, 그 어떤 타파스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크로케타였다. 엄마가 해주는 고로케보다 크기는 조금 더 작고 더 길쭉한 모양으로 생긴 크로케타는 겉은 바삭했고, 안에는 부드러운 촉감의 으깸 감자와 치즈와 크림과 함께 하몽이 들어있었다. 한 입 배어물면 뜨거운 김이 솔솔 나오는 크로케타는 나의 컴포트존을 떠나 마드리드 한복판에서 낯선 언어와 싸우고 있는 나의 힘듦을 전부 씻어주는 맛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스페인 음식점에 가거나, 스페인 여행을 갈 때면 항상 크로케타를 주문한다.
으깬 감자는 따뜻할 때 먹으면 특히 맛있다. 준비하면서 꼭 큰 스푼으로 두 세 숟갈을 기본 내 입으로 들어간다. 누군가는 음식 할 때 냄새에 질려서 입맛이 떨어져 자기가 한 음식은 많이 못 먹겠다고 하는데, 나는 요리할 때 음식이 맛있어 보이면 맛을 보다가 몇 번씩 더 주어먹기도 하고, 내가 한 음식이 내 입엔 맛이 있어서 밥상에 차려 놓고도 참 잘 먹는다. 난 음식을 계량하지 않는다. 정확한 레시피도 없다. 내 기억과 감각으로 음식을 한다. 엄마의 밥상에 올라왔던 음식이든, 여행 가서 먹어본 음식이든, 식당에서 외식하며 인상 깊게 먹은 음식이든, 내 기억과 느낌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어떨 땐 생각했던 것보다 잘 되고, 어떨 땐 기대만큼 맛있게 잘 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난 내 방식이 좋다. 기억에 의존하여 차리는 나의 밥상에는 항상 그 기억의 가장 시작점인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감자 고로케,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