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참 중국음식을 좋아한다. 지금 우리 오 씨 가족도 그렇고, 내가 어렸을 때 이 씨 가족도 그랬다. 외식을 할 땐 중식을 주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렸을 때 엄마는 귀한 손님이 집에 오실 때면 그날은 코렐 접시가 아닌 크고 멋있는 그릇들을 찬장에서 꺼내 거기에 한가득 중국 음식을 담아내셨다. 엄마에게는 레시피 공책이 있었다. 엄마의 손글씨로 써 내려간 레시피를 읽는 건 어렸을 때 내가 즐겨하던 일 중 하나였다. 물론 머릿속에 레시피의 내용이나 순서는 남아있지 않지만, 엄마의 글씨와 그 글씨 사이사이 한 두 방울씩 떨어져 번져있던 기름자국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문득 지금 그게 내 손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엄마는 중국 요리할 때면 굴소스를 꺼내 사용하셨는데, 나는 그 소스가 마법의 소스라고 생각했었다. 고기나 야채를 볶은 후 그 소스 몇 번 두른 후 참기름과 볶아내면 정말 너무나 맛있는 맛이 났기 때문이다. 고기면 고기, 해물이면 해물, 또 야채면 야채에 죄다 어울리는 기가 막힌 아는 맛이었다.
굴소스는 1800년대에 이금기라는 사람이 운영하던 작은 굴국 가게에서 실수로 국을 너무 오래 끓여 국물이 다 졸아붙어 갈색 농축물이 생긴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 농축물을 먹어보니 굴의 진액이 진하게 담겨있고 풍미가 좋아 그때부터 소스로 활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사 먹는 굴소스 병에는 이금기라고 쓰여있다. 그 옛날 이금기 씨의 실수가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만능 소스의 탄생신화다.
엄마가 자주 하시던 중국음식 중에 하나가 부추잡채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조금 넣고 타지 않게 볶다가 바로 돼지고기를 넣어 볶는다. 돼지고기는 얇게 채 썰듯 썰어서 전분가루를 골고루 무쳐서 잘 준비해 두었다가 팬에 넣을 때 뭉치지 않게 넓게 펴서 넣어야 한다. 돼지고기가 익어가면 잘 씻어 물기 빠진 부추를 넣고 한두 바퀴만 휘휘 볶고 불을 끈다. 굴소스를 넣고 참기름을 두른 후 잔열로 저어주고 바로 접시에 담아낸다. 부추는 숨이 죽으면 정말 볼품도 없고 질겨져서 먹기도 힘들고 맛도 덜하다. 그래서 불조절이 중요하다. 생부추는 향이 조금 강하지만 살짝 볶아내면 그 향이 딱 적당하고, 숨이 너무 죽은 부추는 질기지만 살짝만 볶으면 질기지 않고 씹는 맛이 있다. 나는 부추 향이 참 좋다. 부추의 향은 고기와 참 잘 어울린다. 부추를 아삭할 때 폭닥폭닥한 꽃빵에 싸 먹으면 그것도 또 색다른 진미였다. 나는 꽃빵을 결대로 찢어 부추잡채를 얹어 돌돌 김밥처럼 말아서 먹었다. 엄마는 꽃빵을 결대로 찢어 손으로 꼭꼭 눌러 납작하게 만들어 드셨고, 아빠는 꽃빵으로 부추잡채 소스를 닦듯이 묻혀서 드셨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꼭 부드러운 식감의 떡이나 빵이 있으면 꼭꼭 눌러서 납작하게 드시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호빵이든, 술떡이든, 심지어 카스텔라도 말이다. 아빠는 소스에 찍어드셨고. 같은 음식도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먹는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우리가 쿠웨이트 살 때 자주 가던 중국 식당이 있었다. 그 집은 힐튼 호텔에 있는 고급 중국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 중국 식당 주인의 딸이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어렸을 때 놀이터에 마음껏 나가 놀 수 없고, 엄마나 기사아저씨와 함께 나가지 않으면 어디도 나갈 수 없었던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나는 하교 후 집에 있는 시간이 참 많았다. 당시 쿠웨이트는 위험하기도 했고, 이슬람 국가다 보니 아무리 외국인이어도 여자 혼자 밖에 나가는 것은 당시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더더욱 집 단지네 수영장에 가서 시간을 많이 보냈었던 것 같다. 근데, 쿠웨이트에 사는 5년 내내 수영장이 있는 집에 살았던 건 아니다. 우리가 이사를 총 2번을 했는데, 마지막으로 살던 세 번째 집에만 수영장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집에 이사 가기 전에는 집에서 책도 읽고, 혼자 춤도 추고, 엄마 뒤꽁무니도 따라다니다가, 그래도 지루하면 당시에 피아노를 배우던 오빠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오빠는 별로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난 오빠가 피아노 배우는 게 너무 부러웠다. 그런 나의 눈빛을 읽은 엄마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오빠를 가르치던 피아노 레슨 선생님을 내게도 붙여주셨고, 그 선생님은 이름이 리챠드였다. 노란 머리 선생님이었는데, 폴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단추 한 두 개 풀어진 셔츠 안에 수북하게 나있던 가슴 털도 노란색이었다는 사실과, 손가락 마디와 손등에도 한가득 무성하게 노란 털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고, 당시 텔레비전 시리즈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빈센트의 털이 이럴까 상상하며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다. 리챠드 선생님은 내게 피아노의 세계를 소개해주셨고, 나는 어린아이 치고 썩 피아노를 잘 쳤다. 엄마는 내가 진도가 빠르게 나가자, 쿠웨이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레슨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구해주셨다. 그 선생님이 바로 미스 첸이었고, 우리가 자주 가던 중국 식당 사장님의 딸이었다. 근데 노란 털이 수북하게 난, 느끼한 미소 가득 리챠드 선생님과 달리 미스 첸 선생님은 엄격하셨다.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의 미스 첸 선생님은 매시간 노트에 동그라미를 수십 개씩 그려주시며 연습할 때마다 채워오도록 숙제도 내주셨으며, 연습을 안 해간 날은 나를 흘겨보시기도 했다. 엄마의 부엌에서 따뜻한 냄새가 나는 우리 집으로 레슨 하러 오셨던 리챠드 선생님과는 달리, 미스 첸 선생님께 레슨을 받으려면 그 선생님 집으로 가야 했고, 커다란 대추나무가 마당에 있던 그 집에 가면 싸늘하고 엄격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았다. 피아노가 있는 방에 단 둘이 있노라면, 나는 음표가 도인지 레인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혹시나 틀릴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쳤다. 아마 그때즘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악보를 잘 못 읽는 아이였다. 리챠드 선생님께 피아노 배울 때는, 그냥 선생님이 치는 멜로디를 내가 외워서 바로 치는 수준으로 연습이 가능했는데, 미스 첸과는 어림도 없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악보를 익히고 피아노를 치는 건 그 어린 나이의 나에겐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 손가락을 매섭게 쳐다보는 선생님 옆에서 긴장하며 건반을 치기 시작하면서, 피아노와 나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아마 그때부터 내가 피아노 뚜껑을 닫고 엄마에게 이젠 피아노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날까지 조금씩 계속 멀어져 갔던 것 같다. 미스 첸이 나에게 웃어주는 순간은 중국 식당에서 만날 때, 그때뿐이었다. 그 식당은 샥스핀 수프와 북경오리가 맛있었고, 부추잡채도 맛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중국 식당이 처음엔 좋았지만, 미스 첸과 레슨 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가기 싫었었는데, 엄마에게 따로 말을 하진 않았다.
독일에도 부추가 있다. 겨울에는 나오지 않지만, 날이 따뜻해지면 마트에 부추가 나온다. 마트 정육코너에서 돼지고기 안심을 얇게 썰어달라고 한 뒤 살짝 냉동실에 얼렸다가 채 썰듯 길쭉길쭉하게 썰어서 타피오카 전분 가루 옷을 입혀 튀겨내듯 볶은 뒤 부추를 넣고 한소끔 볶아주면 모양도 맛도 좋은, 예전에 엄마다 해주시던, 부추잡채가 완성된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브라질 우리 집에 놀러 오셨던 것처럼 독일 우리 집에 오시는 상상을 해본다. 얼마나 좋을까.
부추잡채,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