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에서 자기 딸 애순이만 안 준다는 말에 화가 나, 애순엄마가 한밤에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던지고 갔던 '그놈의 조구'. 사람이 다섯 명인데, 왜 네 마리냐며 생선집 아들 관식이가 애순이 거라며 몰래 챙겨다 주던 '조구'. 제주도 방언으로 ‘조구’는 조기다. 조기와 굴비는 같은 생선이지만, 가공 방식에 차이가 있어 다르게 불린다. 조기는 참조기라는 어종이며, 은색 비늘에 몸집이 작고, 배가 노르스름한 색을 띤다. 주로 생선구이나 찜으로 먹는다. 굴비는 참조기를 소금에 절여 바닷바람에 자연 건조해 말린 것이다. 저장성이 좋아서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며, 짭조름한 맛 덕분에 밥도둑 반찬이다. 덕분에 자린고비라는 지독하게 알뜰한 사람이 굴비 한 마리를 부엌에 천장에 걸어 놓고, 매끼 밥을 먹을 때마다 그 굴비를 눈으로 한번 쳐다보며 밥을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렸을 때 내가 쿠웨이트에서 먹었던 건 조기 같았다. 사막나라에서 조기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궁금해도 이젠 물어볼 사람도 없다. 엄마는 조기에 소금을 솔솔 뿌려 생선 그릴에 구워 가족 한 명당 한 마리씩 밥상에 올려주셨다. 어려서는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 먹는 게 쉽진 않았지만, 생선을 뒤집어서 먹으면 복이 나간다는 엄마의 말에 중간에 생선을 뒤집지 않고, 열심히 파먹다가 굵은 가시가 나오면 손으로 잡아서 두두둑 떼어낸 후 나머지 살을 먹었다. 그러고 나면, 손톱에 생선 비린내가 배어 비누로 씻어도 잘 없어지지 않았던 기억이다. 어렸을 때 내가 조기중에서 가장 좋아하던 부분은 바삭하게 구워진 생선 껍질과 알이었다. 가끔 알배기가 아닌 조기를 먹을 때면, 알인지 알고 내장을 잘못 먹었다가 쓴맛에 퉤퉤 뱉기도 했다. 조기 알은 꼼꼼하면서 알알이 씹히는 게 고소한 맛이 났고, 내장은 쓴맛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뒤부턴 생조기보단 늘 굴비를 먹었던 것 같다. 굴비는 젓가락으로 발라내면 결대로 쪼개지는데, 두세 개의 결을 겹쳐서 밥 위에 얹어 먹으면 담백한 짬쪼롬함이 입안 가득이었다. 엄마는 널따란 코렐 접시에 굴비 한 마리씩 얹어 밥 옆에 놔주셨고, 젓가락질을 잘하는 순서대로 아빠부터 오빠 나 그렇게 빨리 먹었던 것 같다. 엄마는 식사 준비하고 앉아서 드시느라 항상 가장 나중에 숟가락을 집어 들었고 또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여러 가지 반찬을 따뜻하고 맛있게 바로 내어주시느라 항상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야 앉아서 뒤늦게 첫술을 뜨셨고, 어린 나는 그게 이상한지도 모르고 그냥 아빠가 드시기 시작하면 바로 먹기 시작했다. 조금 자라고 나서는 그게 참 싫었다. 그래서 엄마도 좀 앉아서 먹으라고 짜증도 내보고, 먼저 후루룩 쩝쩝 소리 내며 먹는 아빠 얼굴이 미워 보여 몰래 째려보기도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 결혼할 나이에 가까워질 때 즈음엔, 엄마는 퇴근해 무거운 다리로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시고는 밥상을 차리기가 무섭게 방에 가서 눕곤 하셨다. 엄마도 와서 좀 먹으라고 하다가도, 너무 피곤해서 밥보다 눕는 게 더 좋다며 누우시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싫어서 당시엔 일이 없어도 집에서 저녁을 먹기 싫어했다. 그때 힘든 엄마를 위해 저녁 밥상을 내가 차리고 엄마를 더 쉬게 해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저 항상 피곤한 엄마와, 그 피곤함을 모른 척 밥만 먹는 아빠가 미울 뿐이었다.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8년 동안 꼬박 아빠의 밥상을 차릴 줄도 모르고. 그래서 난 상을 차릴 때 항상 음식을 다 차리고, 나도 꼭 같이 앉아 식전기도를 다 같이 하고 밥을 먹는다. 음식이 조금 식더라도, 면이 조금 불고, 국물이 조금 식더라도, 난 모든 반찬을 다 놓고 나도 같이 앉아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밥상을 겨우 차리고 뻗어버리는 모습이 아니길 바라며, 밥상을 기쁘게 차리고 함께 밥을 먹는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유식을 할 땐 병어나 임연수를 찜기에 쪄서 간 없이 주었으나, 점점 어른들 음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일반식을 시작하고 나선 굴비가 아이들의 최애반찬 중 하나가 되었다. 그즈음 브라질로 가서 살게 되어, 굴비를 한국에서 얼려서 가져가 신줏단지 모시듯 구워줬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먹고 남기고 나서야 작은 조각들을 숟가락에 모아 담아 먹었고, 그 맛이 참 좋았다. 어렵게 한국에서 공수해 온 굴비는 아이들 입에 들어가기 바빴다. 그 아끼던 굴비를 다 먹고 나면, 시장에서 생조기를 사다가 굵은소금을 뿌려 절여서 얼렸다가 한 마리씩 구워주곤 했다. 엄마표 가짜 굴비도 맛이 나쁘지 않은지 아이들은 그것도 잘 먹었다. 그러다 언젠가 엄마 아빠가 브라질에 왔을 때, 이민 가방 한가득 굴비와 김, 간장, 된장을 가지고 오셨었다. 이민가방 네 개 가득 음식을 가지고 오셨는데, 공항에서 집으로 모시고 와서 저녁을 차려드리고 짐을 풀어보니 그중 하나가 짐이 바뀐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껏 여행을 그렇게 다녔어도 한 번도 짐이 바뀐 적이 없는데, 하필 딱 그 소중한 굴비가 들어있던 가방이 바뀐 것이다. 돌돌 비닐에 싸서 고이고이 포장해 온 굴비대신 빼꼼히 이민가방에서 얼굴을 들이민 것은 골프용품들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바로 공항 대한항공 데스크에 전화해 보니, 다행히 엄마 아빠와 짐가방이 바뀐 승객은 연락처를 남겨두고 집에 짐을 가져가지 않아 짐을 공항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골프용품이 잔뜩 들어있는 짐가방을 들고 가서 다시 우리의 짐과 바꿔왔는데, 공항 데스크 카운터에 가까이 가자 모른 척할 수 없는 굴비의 꼬릿꼬릿한 냄새가 났던 걸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창피한 마음에 애써 냄새를 모른 척하며 집에 짐을 가지고 왔더랬다. 그 사람들은 냄새가 나서 안 가지고 갔을까 속으로 생각하며, 그래도 찾아서 다행히 다며 기뻐했다. 그러고 보면 짐가방과 냄새에 얽힌 사연은 이거 말고도 있는데,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없이 나만 삼촌을 따라 프랑스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프랑스 파리 삼촌댁에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이미 가 계셨고, 잠깐 서울로 출장 오셨다가 돌아가시는 삼촌을 따라 방학 동안 함께 여행하기 위해 내가 따라가게 된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하시니, 냉동실에 얼려둔 콩떡을 가지고 오라는 할머니의 부탁에, 삼촌은 노리끼리한 무엇인가 납작하게 깡깡 언 덩어리를 짐가방에 넣고 부치셨다. 삼촌을 따라 프랑스 공항 입국 절차를 밟고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려는데, 직원들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랜덤으로 가방 검열 대상이 지정하는데 하필 우리가 딱 걸린 거다. 짐가방을 열어보라는 직원 말에 삼촌을 가방을 열었고 그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마늘 냄새가 지독하게 퍼졌다. 마치 독가스라도 되는 듯한 강한 그 냄새는, 삼촌이 콩떡이라 믿고 가져온 그 덩어리에서 나오고 있었고, 우리의 코도 마비시킬 만큼 독한 그 냄새에 직원들은 코를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서둘러 우리 보고 가방을 얼른 들고나가라고 했다. ‘울랄라~’ 라며 호들갑 떨던 그 프랑스인들의 모습이 시트콤처럼 웃겼다. 삼촌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콩떡인 줄 알고 다진 마늘을 통째로 가져왔는데, 한 번에 떼어먹기 좋게 얇게 펴서 얼려 놓은 걸 옷사이에 꼭꼭 숨겨서 넣어왔으니, 그게 그만 녹아버려 냄새가 그렇게도 진동을 했던 거다.
20년대에 들어 언젠가부터 보리굴비가 대중화되고 사람들이 굴비를 점점 안 찾게 된 것 같다. 식문화도 그러고 보면 참 유행을 타는 것 같다. 요즘은 굴비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 것 같다. 찜질방에 가면 '백반'을 시키면 아주 작은 굴비가 한 마리씩 나오는데, 그 굴비는 발라 먹을 살도 별로 없이 삐쩍 말라버린 그런 굴비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구워줬던 생선 중 하나인 굴비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반찬이었고, 지금도 자주 생각난다. 내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나도 자주 구웠고, 애들도 잘 먹었다.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굴비 크기별로 호수를 매겨서 묶어서 판다. 막상 살 땐 크고 비싼 거엔 손이 안 가지만, 굽고 나면 수분이 빠져버려 더 작아지는 통에, 작은 굴비는 그만 먹을 게 없다. 그래서 쿠폰 행사를 할 때마다 백화점 지하 코너에 가서 알이 배긴 조금 큰 크기의 굴비를 한 두름 사와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으면, 그만큼 든든한 것도 없었다. 물론 친정에 놀러 갈 때면, 선물로 들어온 알배기 굴비 몇 마리씩 가져오는 엄마찬스가 알짜배기였다. 우리 아이들은 굴비를 구워주면 눈알을 파먹었다. 사실 나는 그게 좀 징그러웠는데, 아이들이 자기를 돌봐주시던 이모님께서 생선 눈알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셨던 말을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한참 동안 아이들은 굴비뿐만 아니라 생선구이가 상위에 올라오기만 하면 얼른 눈알부터 파먹었다. 언젠가 첫째 친구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상에 올라온 생선을 보고 눈알부터 파먹는 걸 보고 딸 친구 엄마가 놀라서 전화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그 어린애가 생선 눈알을 그렇게 잘 먹냐고.
옛사람들은 음식이 생김새나 역할이 사람 몸의 부위와 닮았으면, 그 부위에 좋다고 여겼다고 한다. 마치 호두가 뇌를 닮아서 뇌 건강에 좋다는 믿는 것처럼, 눈알처럼 생긴 생선의 눈이 시력에 좋을 거라고 믿었다. 사실 눈 건강을 위해선 눈알보다 생선 살을 섭취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요즘은 재래시장이나 아파트 단지에 서는 장터에서 생선을 생물로 사서 손질해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날 11시에 주문하면 그다음 날 7시면 배송 오는 온라인 마트에서 판매하는 생선은 주로 깔끔하게 손질이 전부 되어, 싱싱하지만 왠지 덜 살아있는 거 같이, 개별 플라스틱 포장 되어 곱게 담겨 온다. 파란 비닐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도끼같이 생긴 칼로 생선을 나무 도마에 올려 배를 따고 내장을 손질하고 머리를 툭툭 잘라내서 비닐봉지에 담아 한두 바퀴 돌려서 매듭 묶어 검정 비닐에 담아 주던, 생선 냄새나는 정감 있는 풍경이 그립다. 외국에 살다 보니, 생선이름이 뭐가 뭔지 몰라, 생선 코너에서 한참 생선을 쳐다만 보다가 먹던 생선만 사서 먹거나 그나마도 아예 안 먹는 경우도 생겼다. 생선 비린내가 집안에 배는 게 싫고, 생선 음식 쓰레기는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잘 안 구워 먹게 되는 것도 있긴 하다. 그래도 이곳 독일에도 생선시장이 있으니, 가까운 시일 내에 가서 생물 생선을 사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굴비.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