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한국에서 특히 겨울철 간식으로 사랑받는다. 이 중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는 가장 대표적인 두 품종으로, 식감과 맛에서 확연히 다르다. 밤고구마는 수분이 적고 조직이 단단해, 익히면 퍽퍽하고 포슬포슬한 식감을 낸다. 단맛은 비교적 약하지만 담백한 맛이 특징이며, 삶아 먹거나, 전이나 튀김으로 요리해 먹어도 맛있다. 반면 호박고구마는 수분과 당분이 많아 조리하면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단맛이 강하다. 특히 구웠을 때 꿀처럼 단맛을 낸다. 실제 호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그 단맛 때문에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는데, 일본에서는 먼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개량된 품종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 엄마는 밤고구마를 좋아하셨다. 호박고구마는 고구마 같지 않다며 드시지도 않았다.
고구마는 영어로는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라 불리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처음 재배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온화한 기후는 고구마 재배에 적합했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에 의해 중국과 일본을 거쳐 조선에 소개되어 지금까지 우리는 고구마를 즐겨 먹는다. 고구마에 김치도 얹어 먹고, 디저트도 만들고, 고구마라떼라는 음료도 만들어 먹는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피자에 고구마 무스를 만들어 올리는 걸 가장 생소하고 낯설어들 한다.
예전에는 겨울철 길거리에 붕어빵만큼이나 많이 보이던 게 군고구마였다. 당시 길거리 군고구마는 동그란 대형 드럼통을 개조해서 그 안에 땔감을 넣고 불을 붙여 고구마를 익혔다. 가로로 길게 눕힌 드럼통에 구멍을 뚫어 그에 맞는 기다란 서랍을 만들고, 그 안에 고구마를 넣어 드럼통 안에 넣어 익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고구마를 사러 멈춰 서서 '고구마 주세요' 했을 때 아직 고구마가 다 익지 않았으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운이 좋아 바로 서랍을 열었을 때 껍질이 바삭하게 갈라져 안에 노란 속살에서 김이 나고 있으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그 기다란 서랍에서 목장갑을 끼고 하나 둘 종이봉투에 담아주면, 그 냄새에 못 이겨 한입씩 뜯어먹다 보면, 집에 오는 길에 거의 반이 없어져 있곤 했다. 그렇게 목장갑으로 뜨거운 고구마를 종이봉투에 담아주던 사람은 군고구마 장수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오빠 친구 몇몇이 수능 끝나고 겨울에 군고구마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여, 엄마와 오빠 다 같이 어느 깊은 겨울밤 찬바람을 뚫고 횡당보도를 건너 그 고구마 드럼통으로 향하던 그 신나던 발걸음. 당시 드럼통을 한 달 단위로 대여하고, 고구마는 박스로 주문해서 파는 만큼 돈을 버는 그런 경험형 아르바이트였는데, 팔고 남은 건 돌려주면 되는 그런 시스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오빠 친구들은 아름다운 어머니가 오셨으니 고구마를 몇 개 더 넣어주겠다고 호들갑이었고, 엄마는 덩달아 잘생긴 아들들이 군고구마를 담아주니 더 맛있다며 돈을 더 주고 가야겠다며 웃으셨다. 나는 불 반 연기반인 드럼통 서랍이 쭉 길게 열리고 그 서랍 안에 줄줄이 군고구마가 나오는 걸 보는 재미에 넋을 놓고 있었다. 긴 서랍을 쭉 뽑아내면 그 안에 동글동글 담겨 있는 잘 익은 고구마는 참 정감 있고 따뜻한 그 시절의 정서를 닮은 별미였다. 그 후로 몇 번은 더 엄마 심부름으로 난 고구마를 사러 다녀왔고, 그때마다 난 그 오빠들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대학을 가면 저렇게 친구들과 재밌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구나 싶었고, 뭔가 어린 마음에 청춘이란 저런 건가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드럼통에서 나오는 군고구마는 잘못 구우면 껍질에 검게 그을러 붙어서 떨어지는 속살이 너무 많아서 먹을게 그만 별로 없어져버린다. 그래서 앞니로 껍질에 붙어 떨어진 노란 속살을 긁어서 먹었다. 그렇게 맑고 차가운 공기를 나의 입김과 군고구마의 뜨거운 김으로 데우며 겨울은 군고구마 하나로 따뜻한 시간이 된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군고구마가 아니라, 찐 고구마를 좋아하셨다. 밤고구마를 잘 쪄서 엄지손가락의 넓은 부분으로 꾹 누르고 옆으로 쓰윽 밀면 껍질을 참 쉽게 벗겨졌다. 참 신기하게도 찌거나 삶으면 구웠을 때보다 고구마의 속살은 색깔이 조금 더 어둑어둑하고 칙칙하다. 엄마는 항상 아침으로 블랙커피에 고구마를 드셨고, 밥 맛이 없을 때도 고구마를 드셨다. 난 그 고구마가 참 싫었다. 그놈의 고구마만 아니면 우리 엄마가 밥도 더 잘 먹고, 건강할 것 같았다. 가끔은 고구마를 노려보며, 고구마는 밥이 아니다, 구황작물이다. 밥을 대체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거다라며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대기도 했다. 엄마는 특히 걱정이 있을 때나, 몸이 좋지 않을 때, 입맛이 없다며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시곤 했다. 그리고 고구마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우리 집 아침 식탁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고구마를 꼭 챙겨 먹는 아침 관습을 아버지가 그대로 이어받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에 다른 샐러드나 요구르트나 달걀을 준비할까 하여 고구마를 사다 놓지 않으면, 아버지는 운동하고 돌아오시는 길에 집 앞 한살림에서 고구마를 한 봉지 손수 사 오셨다. 그놈의 고구마. 아버지는 고구마를 물에 찌거나 삶아 드실 줄 모르셨다. 그래서 난 오븐으로 고구마를 혼자서도 구워드실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드렸다. 최신식 오븐에는 군고구마 조리 버튼이 따로 있어 어렵지 않았고, 라면 하나 못 끓이는 아버지도 쉽게 하실 수 있었다.
난 고구마를 그렇게 즐겨 먹지 않는다. 사실 정말 맛있는 고구마는 몇 개 없고, 보통 기대하는 만큼 맛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목이 너무 매어서 우유랑 먹거나 커피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그 질퍽하면서 동시에 퍽퍽한 맛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고구마를 많이 먹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임신했을 때였다. 그때 아침에 일어나 공복 상태에서 허기를 느끼면 바로 구역감을 느꼈었는데, 그럴 때 이상하게 당기는 게 고구마였다. 밤고구마를 삶아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그때그때 꺼내서 따뜻한 커피와 같이 먹으면 속이 편안해졌다. 그 루틴을 아직 만들지 못했던 임신 초기엔 뭐가 그렇게 매스껍고 힘들었던지, 빈속을 참지 못해 아무 빵이나 입에 넣고 탈이 나곤 했다. 생전 손이 안 가던 고구마에 손이 가고, 그게 나의 입덧을 잠재웠던 건 심리적으로 고구마는 엄마의 아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지금도 마트에서 가끔 난 고구마를 산다. 엄마가 삶아 먹던 그 모습을 추억하며 사는데, 한 번도 한 봉지를 다 먹어본 적은 없다. 처음에 한 두 개만 추억을 되짚어보며 삶아보기도 하고 구워보기도 하지만, 나머지 한두 개는 싹이 그만 너무 많이 나버리거나, 오래돼서 버리게 된다. 얼마 전에도 엄마가 그리운 마음에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가, 하나는 삶아서 먹고, 하나는 잘게 썰어 야채튀김을 해서 아이들 떡볶이와 같이 먹을 간식으로 주고, 나머지 하나는 싹이 나서 결국 윗부분만 잘라 물이 담아보았다. 괜히 다 버리긴 좀 안된 마음에 고구마 싹을 더 키워볼까 싶어 부엌 싱크대 앞에 두어보았다. 그렇게 해두고 돌아서니 둘째가 그걸 보고, '고구마야, 잘 자라렴' 이런다. 같은 마음이다. 가끔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나는 위로한다. 그래, 엄마도 고구마가 이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그놈의 고구마.
밤고구마. 종이에 과슈, 2025 수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