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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개나 줘버려.

며느리는 명절이 싫어요.

by 온오프

나는 언제부터 명절을 싫어했을까.
아마 이혼한 엄마 대신 전을 부치던 그때부터였을까.


혹은 친척들이 하나같이 아빠를 불쌍하다며,
“애 셋을 혼자 어찌 키우노” 하고 혀를 차던 순간부터였을까.


무엇이 시작이었든, 내겐 명절이 늘 싫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말은
내게 악담처럼 들렸다.


우리 집안은 고리타분한 남아선호 사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제사 음식은 여자들이 차리고,
제사가 시작되면 여자들은 방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남자들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먹는 동안,
여자들은 수발을 들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전 더 가져온나.”
“여기 술 없다.”
“과일 좀 내온나.”


그 모든 요구가 너무 익숙해,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다.


그들이 먹고 간 잔반이 놓인 상에 밥을 떠 와
조용히 식사하는 것도,
여자들끼리 따로 상을 펴서 모여 앉는 것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세상 밖을 만나고 나서야,
그 환경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명절이 싫다.


결혼을 하고 며느리가 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 부치고, 음식을 차리고,
그 모든 몫은 여전히 어머님과 나의 일이었다.


물론 모든 집이 다 그렇진 않다.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가정도,
오히려 남자들이 도맡아 하는 집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집,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이 울타리 안은
늘 차별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그 불만의 씨앗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은 달라졌다.
나는 아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고 싶었고,
남들 뒤치다꺼리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추석에도 나는 전을 부쳤고,
음식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엄마가 만든 게 최고예요.”
“엄마, 너무 맛있어요.”
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순간, 그렇게나 싫었던 명절이
그저 또 다른 하루로 흘러가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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