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싼 술은 못 참는다
"아, 그럼 한 잔 더 줘봐!" 나는 지금 와인 반 병에 위스키를 세 잔 째 마시고 있다.
더 이상 안 마시려고 했는데 오빠가 '한 병에 120만 원짜리'라는 호박색 술을 꺼낸 순간, 저 술은 마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빠와 새 언니, 남편과 나. 넷이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아무도 안 취했다. 어떻게 이 조합으로 모인 건지, 이제는 신기할 정도다. 나의 금주 결심이 흔들린 건 3시간 전이었다.
2. 명절 화 안내는 법 공유 요청
술을 끊은 지 7개월째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한의원에서 알코올과 카페인이 체질에 안 맞다고 했다. "그럼 끊지, 뭐." 큰 결심도 없이 그냥 바로 뚝 끊고,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었다.
이례적으로 긴 추석 연휴, 아침 7시에 경기도에서 다섯 식구가 눈만 간신히 뜬 채 차에 올랐다. 목적지인 친정 경상도까지는 약 300km. 남편은 약속 시간이 12시면 10시부터 옷을 다 입고 소파에 앉아있는 스타일이다. 벌써 아이들 안전벨트를 매어주며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짜증을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유튜브로 '명절 화 안내는 법'등을 시청했다.
막히는 구간을 피해서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이제 연로하시니, 본인 집으로 오라는 오빠의 말에 따라 최근에는 창원 오빠 집에서 부모님과 우리 식구가 모이고 있다. 사촌들과 만난 우리 집 세 자매도 신이 났고 우리 부부도 한결 긴장이 풀렸다. "야, 너그 늦게 와서 큰 일날 뻔했다." 아빠는 아이들을 안아주신 후, 벌써 식탁에 앉으셨다. "0 서방, 머하노. 빨리 와서 한잔 해라." 큰 일은 역시 아빠가 술을 못 마셔서였다.
3. 오빠보다 기다린 건
왁자지껄 짐을 풀고 한숨 돌리니, 저녁이 되어 오빠가 퇴근해서 집에 왔다. "아빠아!" "안녕하세요." 그리고 나는 원수진 사이도 아닌데 멀뚱멀뚱 쳐다봤다. "왔나?" "어." 짧은 대화지만 오빠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치킨이 들려있었다. "우리 동네에 없어서 이거 포장해 왔다."
저녁 시간, 새언니의 화려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볼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건만, 이번에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에서 요리도 안 하고, 일 돕는 솜씨도 그다지 없는 나는 매번 안절부절못한다. "이제 그... 그만. 이거 다 못 먹어요."
"앉아 계세요. 이제 LA 갈비만 구우면 돼요." "여기 뭐 횟집이에요?" 남편이 좋아하는 전어회와 광어회가 수북이 나왔다. 나는 회를 안 먹어서 맛도 모르건만, 나 빼고 다들 신났다.
부모님은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술꾼 네 명이 둘러앉았다. "저는 술 끊었는데요..." 하지만 또 심상치 않게 세팅되는 술상을 보니 나도 모르게 다급히 술잔을 챙기게 됐다. 화이트 와인을 시작으로 집에 150병을 모았다는 양주들이 속속 나왔다. 오빠가 사 온 치킨도 자리했다. 오빠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00이(새언니)가 감기에 걸려서 코를 고는데 장난치는 줄 알았다. 내가 방금 코를 골았다고? 아인데... 커어어억!" 솔직히 웃겼다. 아오, 자존심 상해. 옆에서 천사처럼 웃고 있는 새언니는 오빠보다 16살, 나보다 14살 어리다.
4. 가족의 탄생
처음에 오빠가 결혼할 분이라고 사진을 보내왔을 때 보고, 또 봤다. '미친 거 아이가.' 이 애기랑? 머를 한다고? 결호온? 서로 나이를 모르고 직장에서 만났다가 오빠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단다. 새언니가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해서 결혼 이야기까지 오가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돈댁 어르신들은 격렬히 반대하셨고, 새언니는 감금당하다시피 했다. 오빠를 만나보신 어른들은 결국 손을 드셨다. 결혼 전, 부모님 댁에서 만난 새언니는 너무 여리고 앳되어 보였다.
나는 몰래 말했다. "제가 다 도와드릴 테니까 지금이라도 결혼 안 한다고 하세요." 살풋,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헤어질 때쯤 작은 쪽지를 주었다. "아가씨랑 친해지고 싶어요. 제가 어리고 부족하지만, 진심으로 노력하고 싶어요." 나는 그때 결심했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내가 다 막아주리라. 새언니가 원하면 도망은 내가 책임진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예쁜 두 조카까지 안겨주며 두 부부는 잘 살고 있다. '저거, 사람 구실 하겠나.' 속으로 걱정했던 오빠는 나름 작은 사업체를 꾸려가고 있다. 큰 집에, 동그라미가 삼분할된 로고의 큰 외제차도 타고 다닌다. 내가 열심히 공부할 때 팽팽 놀기만 했는데... 역시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함을, 오빠를 보며 늘 느낀다.
5. 새언니가 있는 풍경,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브런치 입성 초기에 오빠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제목은 '미운 오빠 새끼' 검수역인 AI가 점잖게 말렸다. 나의 지적 수준과 교양을 들킬 수 있으므로 점잖게 고쳤다. '만다꼬 또 전화했노' 그는 그런 존재였다.
이제는 새언니가 있는 풍경이 나의 친정 풍경이 되었다. 나는 늘 새언니가 귀하고 아깝고 애달프다. 그 분이 곁에 있으니 미운 오빠 새끼도 호수를 거니는 백조까지는 못 되어도, 그냥 수식어를 뗀 오빠야 정도는 된다. 지혜롭고 어른스러우며, 우리 집의 보물인 새언니와 그냥... 오빠야. 그들이 지금처럼 복되고 따뜻한 한 가정으로 잘 지내길 바란다.
제일 좋은 시가 식구는 연락 안 하는 식구이다. 가끔 조용히 조카들 선물이나 새언니 선물만 놓고 나온다. 이번에는 조금 후회가 됐다. 오빠야가 취해서 비싼 양주 한 병 준다고 할 때 그거는 챙길걸. 뭐, 내년 설도 있으니까. 같은 달이 떠 있는 밤.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이 되고 있는 우리가 이렇게 함께여서, 이 추석은 참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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