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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로 당신을 뽀통령으로 임명합니다.

오! 나의 구세주

by 노래하는쌤

우리 부부는 첫째 임신 준비를 하면서 아이 양육에 대해서 고집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한 스무 가지는 되었던 것 같은데 고된 육아와 세월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발맞춰 나날이 감퇴된 나의 기억력으로 생각나는 것만 몇 가지 나열해 보기로 한다.


원래는 전화번호 100개는 기본으로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었다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는 나도 이제 믿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요즘은 직계가족 이외의 번호는 저장만 할 뿐 외우려는 의지조차 없으니 말이다.


처음 임신을 계획하면서 출산예정일을 미리 맞춰서 임신을 준비했다. 해년의 끄트머리 달 즈음에 태어난 나는 왠지 모르게 나이를 꽁으로 먹은 것 같아서 내심 억울했기 때문이다.


임신 날짜를 4월로 계획해서 출산 예정일을 다음 해 1월에 맞춰 첫째가 나이를 꽉꽉 채운 1살이 되도록 퍼펙트하게 우리는 합방을 했다. 그러나 세상 밖이 너무 궁금했던 리아는 3주 일찍 나오며 12월생이 되었고 첫 번째 계획부터 가볍게 실패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등의 이유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유 같지 않은 수많은 이유들을 나열하며 생후 100일까지는 다른 사람 손에 ‘절대’ 맡기지 않고 온전히 부모 손에서 기르자는 계획을 했다. 그리고 아무리 짧아도 6개월은 모유수유를 하자고 계획했다.


생후 일주일 후 상세불명의 피부염과 황달로 입원을 하게 된 리아는 다른 가족의 품도 아닌 최첨단 인큐베이터 품 안으로 들어갔다. 내 손은 고사하고 유리벽 너머에서 정해진 시간에 하루에 고작 1시간씩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육아에 ‘절대’라는 목표가 얼마나 무의미한가? 물론 육아만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입원기간 동안 분유 섭취가 원칙이었고 모유수유도 자동실패로 돌아갔다. 퇴원 후 유두혼돈이 와서 유축기로 모유를 짜서 젖병으로 먹이는 수고로움의 선물까지 보너스로 안겨주었으며, 젖병의 꼭지 모양이 다르면 빨지 않는 취향이 확고하신 리아 덕분에 단종된 꼭지 구하기 대작전을 펼치기까지 했다.


입원기간 병원에서 먹던 고오~급 분유만을 고집하는 리아의 입맛과, 오로지 면 기저귀만 발진이 나지 않는 리아의 고오오~급 피부 덕분에 2,000년 뉴밀레니엄 시대에 천기저귀를 삶아서 빨아 쓰는 영광을 안겨 준 리아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기저귀와 드디어 작별할 수 있었다.


나의 육아의 모든 부분은 작은 부분 하나조차 누구 하나 앞서려 하지 않고,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며 삼박자 고루고루 완벽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던가?


이건 절대 실패할 수 없다며 발달시기별로 영상을 꼭 찍어서 남겨 놓자고 다시 한번 투지를 불태웠다. 목 가누기-뒤집기-앉기-기기-서기-걷기를 순서대로 찍어 한 번에 편집할 계획을 세우며 얼마나 눈에 쌍불을 켜고 기다렸던가?


리아의 목 가누기는 50일 사진을 찍을 때부터 목을 번쩍 들고 엄청난 모델포스로 사진 찍기를 시전 할 정도로 의기양양하였으나, 돌이 다 되도록 뒤집기-앉기-기기-서기를 그 어느 것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리아는 돌을 며칠 앞두고 마치 공포 영화 링의 한 장면처럼, 엎드려서 누운 상태로 양쪽 다리를 일자 찢기 하더니 이마로 바닥을 밀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는 기괴한 쑈를 선보인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돌아다니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던 사람처럼 온 방을 어마무시한 속도를 내며 엉덩이로 밀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여보 리아 대학병원에 안 가봐도 되나?"


"손 잡아주면 한발 한발 뗄 수 있으니깐 기다려보자. 소아과선생님이 중간과정 건너뛰는 아기들도 있다고 했어."


“그래도 리아는 너어어~무 심하게 건너뛴 거 아닌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잠식시키며, 첫 돌을 하루 앞둔 리아는 고개를 45 각도로 돌려서 여유로운 눈빛으로 지그시 나를 한번 바라봐주더니, 유유히 걷는 것이 아닌가? 영상 찍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 나는 ‘워오와오아와아’ 누구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외계어만 남발하며 영상 찍기도 실패로 돌아갔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것만은 우리의 선택으로 해낼 수 있다며, 마지막으로 두 돌이 될 때까지 영상시청을 금지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또 허황된 꿈이었던가?


온 가족이 처음으로 리아와 맞이하게 된 첫 명절 추석이 되었다. 엄마가 명절음식을 만드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효녀가 되어, 갑자기 리아는 민감도 100% 등센서를 장착하고, 반경 1M 레이더 울음경보를 장착한다.


가을에 결혼하여 다음 해 겨울에 리아가 태어났기에 나에게는 시댁에서 맞이하는 첫 명절이라 나름의 부담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 리아랑 있으라는 시어머님의 말에도 나의 마음은 어찌하지 못하고 불편함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조카가 돌린 TV채널에서 뽀롱뽀롱 뽀로로 오프닝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나의 등 뒤에서 찡얼거림의 끝을 달리고 있던 리아의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뚝 그치는 것이 아닌가! 리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신호를 보내며 나를 TV앞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지막 계획 또한 무산됐고 온 집안의 평화는 물론이거니와 나의 마음에 참된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직업 특성상 명절에도 출근을 한다. 여전히 수많은 계획들 안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지만 어디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영상시청은 공휴일도 2시간 이상은 안된다고 하였으나 올 추석도 나의 쉼을 위해, 아이들에게 해리포터 영화를 틀어주고 이렇게 추석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더 재미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계획한 추석글도 전 부치는 기계에 대해서 쓰고자 하였으나 육아 일대기가 돼버린 것처럼 인생은 알 수 없기에 더 신명 나다.


님들도 명절을 맞이하여 계획했던 일이 맘처럼 되지 않았던 일이 있으신가요?

(전 초등저학년 조카들 용돈은 3만원으로 정했는데 준비했던 만원짜리 봉투를 챙겨가지 않아서 신사임당 1장씩을 용돈으로 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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