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힘사의 땅에서 벌어진 현대적인 논쟁
평화롭고 조용하던 아파트에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원숭이 한 마리가 어느 아파트 건물 8층 난간에서 사람들을 놀리듯 내려다 보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커뮤니티에 원숭이가 나타났다는 글로 하루를 열었던 이야기가 저녁이 되니 온통 원숭이 이야기로 가득 찼다. 오며 가며 사람들과 하교하던 아이들도 원숭이를 구경하며 걸음을 멈췄다.
급기야 커뮤니티에서 찬반이 갈리기 시작했다.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한다 vs 주지 말아야 한다. 먹을 것을 주면 계속 여기에 머물 것이며 아예 함께 거주하게 될 것이고, 먹이를 주지 않으면 알아서 다른 장소로 옮겨 갈 것이라는 논리였다. 수십 명의 경비원들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라 평소 치안 걱정은 없는 곳이지만, 원숭이 한 마리 때문에 경비원들도 어쩌지 못하는 난리판이 되어버렸다. 시끄러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숭이는 계속 아래를 내려다 보며 놀리듯 그 자리에 있었다.
인도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심지어 모기조차 사람의 손바닥으로 쉽게 죽이지 않는다. 이 작은 행동 하나에 인도라는 나라가 수천 년 동안 품어온 철학이 담겨 있다. 아힘사(Ahimsa), 즉 '비폭력'의 정신이다. 생명이란 인간이 임의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이유와 자리가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원숭이는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니다. 힌두 신화 속 하누만(Hanuman)은 원숭이의 형상을 한 신으로, 충성과 헌신, 그리고 경이로운 힘의 상징이다. 인도 곳곳의 사원 주변에서 원숭이 무리가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려도 주민들은 쫓아내기보다 과일 한 조각을 내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원숭이가 신의 사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 혹은 적어도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이 그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먹이를 주어야 한다, 주지 말아야 한다는 아파트 커뮤니티의 논쟁은 어쩌면 매우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고민이다. 효율과 관리, 위생과 규칙으로 다듬어진 공간에 느닷없이 뛰어든 야생의 존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인도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 질문 자체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원숭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그 존재 곁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인도의 삶은 경계가 흐릿하다. 사람과 동물, 신성과 일상, 소란과 평온이 한데 뒤섞여 있다. 델리의 번잡한 시장 한복판에서 소 한 마리가 유유히 걷고, 뭄바이의 골목에서는 개들이 사람들 틈에서 낮잠을 잔다. 누군가는 그것을 무질서라 부르겠지만, 인도인들에게 그것은 삶의 본래 모습이다. 통제되지 않은 것들을 품는 것, 예측 불가능한 존재들과 공존하는 것, 그것이 곧 살아있음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높다랗고 번쩍이는 아파트 안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전의 인도라면 원숭이와의 동거쯤은 대수롭지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골목 어귀에서, 낡은 담벼락 위에서, 시장 처마 아래에서 원숭이와 사람은 늘 그렇게 엉켜 살아왔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 아파트의 높고 반듯한 벽 안에서는, 저 작은 원숭이조차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끼어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닌 모양이다. 침범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동물에게조차 '침범'의 시선을 보내는 이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여기서 다르게 살겠다고.
유리와 철골로 세워진 이 건물 안의 삶은 빠르게 현대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고, 앱으로 음식을 시키고, 커뮤니티 채팅방으로 소통하는 이들에게 원숭이 한 마리는 그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록된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공존의 감각보다, 오늘 저녁 커뮤니티 공지가 더 빠르게 사람들의 행동을 움직인다. 같은 인도 땅 위에 서 있지만, 이 건물 안과 밖은 마치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들의 삶도 변한다. 다만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를 때, 우리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어떤 감각을 조용히 잃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 작은 소동이 넌지시 일깨워 준다.
8층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원숭이는 아마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큰 소동을 일으켰는지, 사람들이 자신을 두고 얼마나 열띤 토론을 벌였는지. 그저 높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원숭이의 눈에 비친 풍경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번쩍이는 유리창 너머로, 저 안의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고.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다.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놀리듯 우리 곁에 나타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몰아내려 애쓰기보다, 그냥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원숭이 한 마리가 소란스러운 하루 끝에, 점점 현대화되어 가는 이 건물 안의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조용하고 오래된 가르침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