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기다리는 모순
한국에서는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곳을 좋아했다. 수평선 너머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느꼈던 그 뭉클함을, 인도에 온 뒤로 한 번도 다시 느껴보지 못했다. 벵갈루루는 바다가 없는 도시였고, 나는 어쩌면 그 감정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난디힐을 알게 되었다. 벵갈루루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해발 1,478미터의 언덕 요새. 지는 해도 볼 수 있고, 뜨는 해도 볼 수 있다는 그곳에 가면, 혹시 한국에서의 그 뭉클한 감정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구불구불 산을 감싸고 도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릭샤 행렬이 보였다. 좁은 자리에 몇 명이 탔을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빽빽이 앉은 채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다. 저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오르는 걸까.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나처럼 무언가를 되찾고 싶어서일까.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도 길이 심하게 구불거리고 가팔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이런 길이 익숙한 듯 능숙하게 운전하는 기사의 손에 몸을 맡기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해발 1,478미터, 정상에 다다르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11세기부터 이어져 온 언덕 요새의 고대 돌담과 성문이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서 있었고, 유칼립투스 나무들과 푸른 정원이 펼쳐진 그곳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틈으로 보이는 원숭이들. 인도의 관광지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핸드폰을 노리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에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풍경이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돌산이었지만, 벵갈루루 전체가 발 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전망이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산 너머로 보이는 다섯 개의 봉우리—브라마기리, 찬나기리, 스칸다기리, 헤마기리—이 안개 사이로 신비롭게 솟아 있었고, 초록빛 완만한 언덕들과 반 숲 지대가 끝없이 이어졌다. 저 멀리 도시의 건물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고, 그 사이로 펼쳐진 경작지의 초록은 문명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 땅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어둠은 싫어하지만, 해를 기다리는 나의 모순. 시간이 흐르고 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하자,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점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저 인도 사람들은 이 순간에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까. 나처럼 내일의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있는 걸까.
하늘은 주황빛으로, 다시 짙은 붉은빛으로 변해갔다. 티푸의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600미터 아래 풍경 위로 햇빛이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노을과는 달랐다. 하지만 그 뭉클함은 똑같았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작은 실존, 그런데도 이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는 벅찬 감정.
그렇게 난디힐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산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나는 그 웅장함을 가슴에 담았다. 한국에서의 바다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은 이곳대로의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뭉클함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서는 그 순간, 할 말을 잃고 숨을 죽이면서 조차 자연의 웅장함을 바라보게 되는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