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과 정의』를 읽고
김영란 전 대법관은 ‘판결과 정의’에서 가부장제, 성인지 감수성, 정치의 사법화, 과거사 청산 등에 관한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를 살펴보며 판결의 잘못된 점을 오목조목 짚어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사용되는 가부장적 가치를 언급하며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사적 문제라는 이유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애리조나주에서 있었던 일을 예시로 들며 남성은 여성의 경험을 알지 못함을 말한다. 한 학교에서 열세 살 소녀가 이부프로펜 등의 약을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 교사에 의해 바지, 속옷 등을 다 벗어야 했던 사건이 있었다. 연방 대법원의 남성 법관은 “속옷을 벗는 게 어째서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말하며 “어릴 때 친구들과 속옷에 무언가를 넣는 장난을 치기도 하지 않냐”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당시 유일한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그들은 열세 살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어 그 또래 여자 아이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전혀 모른다”라고 말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남성은 몸에 대한 자각이 없다. 어릴 때부터 몸과 관련된 통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은 어릴 때부터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훈육을 듣는다. 다리를 조신하게 모으고, 자신의 몸을 가리고 숨길 것을 요구받는다. 그렇기에 남들 앞에서 속옷까지 다 벗고 흔드는 행위를 해야 했던 열세 살의 소녀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성 법관은 여성의 경험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소녀의 심정을 헤어리지 못했다.
2005년 김영란 대법관은 성폭력 사건을 다루며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판결을 내린다. 피고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속칭 ‘노래방 도우미 여성’을 불러 힘으로 제압하고 강간했으나, 1, 2심 재판부에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된 점과 사건 후 피해자가 울면서 옷을 입고 있었고, 이후 피고인이 ‘술 한 잔 먹고 실수를 하였다, 미안하다’고 한 점 등을 들어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 판결은 강간을 더 이상 흑백의 체계로만 바라보지 않고 강간의 넓은 회색지대를 인식하겠다는 신호였다. 실제로 이 사건은 2017년 9월까지 하급심에서 470회 인용되어 확실한 선례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법원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을 근거로 강제 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 추행 등에 관한 상고심의 징역 3년 6월을 확정했다.
그러나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판결도 존재했다. 위에서 언급한 안희정 사건도 1심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과 ‘정조’를 언급했다. 버스에서 8초간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하반신을 불법 촬영했으나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도 있다. 레깅스는 신체 노출이 적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고, 특정 성적 부위를 확대하지 않았으며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글에 ‘레깅스’를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는 제외되었습니다. 만 19세 이상의 사용자는 성인인증을 통해 모든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뜨고 연관 검색어에 ‘레깅스 엉태’가 뜬다. ‘엉태’는 ‘엉덩이 모양태’의 줄임말로 보인다.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사진 혹은 영상으로 찍어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직접적인 노출이 없다는 등의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주목하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재하는 이유를 들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SNS를 통해 퍼진 ‘신림동 영상’ 속 남성도 성폭행 미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영상 속에서 남성은 여성을 계속해서 쫓아가다가 여성이 자신의 집 문을 열자 뒤따라 바로 들어가려 하지만 간발의 차로 문이 닫히자 문을 계속 두드리고 비밀번호를 알아내려는 것인지 잠금장치에 빛도 비쳐본다. SNS를 통해 이 영상이 퍼지자 수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었고 대부분은 남성이 여성을 뒤따라가 성폭행 혹은 살인까지 저질렀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단지 성폭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이유로 처벌하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며 주거침입 혐의는 인정하되 성폭행 미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 조 씨는 피해자가 살고 있는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이사하겠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범죄는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단순히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같은 여성에게만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호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여성혐오가 범죄화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 혹은 다른 약자 누구에게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여성혐오 범죄가 더욱 무서운 이유는 범인이 ‘신림동 영상’ 속 남성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어떤 남성이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채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혐오 범죄는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으로 재판부는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강력 처벌해 혐오범죄가 일어나서는 안될 일임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재판부는 불특정 여성이 범죄 대상이 되고 있는 사회를 알면서도 충분한 성인지 감수성은 가지지 못했다.
고등군사법원에서는 남성 해군 간부 2명이 여군 부하를 성폭행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사건이 7년 전에 발생해 직접적인 증거는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판결해야 했다. 2심 재판부는 양팔을 누르는 폭행은 일반 성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폭행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논리와 군 내의 위계 관계를 무시한 채 무죄 선고를 내렸다. 여군은 초임 장교였고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해군 간부는 최고책임자이자 함장이었다. 폐쇄적 공간인 함정에서 함장의 말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위력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해자는 ‘묵시적 합의’를 주장하고 피해자는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합의가 없었다는 말을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없었던 재판부는 직장 내에서의 위계 관계, 성별 간 위계 관계, 특히 군 내에서의 위계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형법 제297조에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되어있으며, 제297조의 2에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해 구강, 항문 등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은 행위를 한 사람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강간에 대한 정의다. 성기 삽입이 있을 시 강간으로 여겨지고, 성기 삽입이 없고 그 외 도구나 손가락을 성기 혹은 신체 일부에 넣을 경우를 유사강간으로 취급한다. 성기 삽입의 유무에 따라 강간과 유사 강간의 범주가 나뉘며 유사 강간의 처벌이 강간보다 약한 것으로 보아 성기 삽입이 처벌의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강제적 성행위에서 성기 삽입의 여부는 중요하다. 여성의 질 내부에 남성이 사정을 할 경우 원치 않는 성관계로 임신까지 할 수 있고 과거보다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여성의 순결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회에서 성기 삽입으로 인해 피해자가 더 큰 트라우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기 삽입만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피해자는 성폭력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성기 삽입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치 않은 성적 접촉, 폭행, 위협 등 모든 행위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폭력 법에서도 성기 삽입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회색 지대 속의 성폭력을 고려해야 한다.
성폭력은 ‘성’이 아니라 ‘폭력’에 무게를 두어야 할 문제다.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이유는 가해 남성이 여성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 여성을 자신이 폭행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여러 폭행 중 성폭행을 한 이유는 여성의 성이 사회적으로 순결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져 여성에게 더욱 큰 상처를 안겨주기 위함이다. 범행의 의도는 성기 삽입이나 성적 욕망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자신의 발아래에 두려는 심리에 있는데 정작 법은 성기 삽입에 초점을 맞춰 처벌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원인을 잘못 찾아 해결책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경력 평생 동안 직업 법관으로 일하는 법률가들로 법원을 구성하는 직업 법관제를 택하고 있다. 직업 법관제를 택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한국도 성문법을 가지고 있다. 법전이 정확하고 상세할수록 법관이 자신의 정치적, 개인적 선호에 빠져들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 법관의 폐쇄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자신의 전문화된 영역인 법리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법리들이 규율하는 제반 행위들 간의 관계, 법리들이 작동하는 세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법관들의 판단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자신이 평생 동안 경험하고 배웠던 것들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산드라 하딩은 “모든 지식은 상황적 지식”이라고 말하며, “가치중립적인 객관성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강한 성찰을 통한 강한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관들도 자신이 배우고 알고 있는 지식이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만 옳을 수 있는 지식임을 명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입장이 강자로서 특권을 누린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남성이라면 여성의 경험을 알고자 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하고, 평생을 직업 법관이었으니 다른 직업들의 경험과 지식은 어떤지 고민해야 한다. 강자로서의 특권은 눈에 띄지도 않고 실감 나지도 않는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밤에 택시를 탈 때 무섭지 않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경력 단절을 걱정하지 않았고, 늦은 밤 집 앞 골목을 걸으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가정폭력방지법과 가정폭력 처벌법은 고작 20여 년 전인 1997년에 제정되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가정에서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정의 문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율과 자치가 침해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존재했다. 하지만 가정 폭력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고 심지어는 가정 폭력을 당해 죽는 일도 발생하는 상황에서 가정 폭력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다. 가정폭력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 때문에 여성 긴급전화 상담을 이용하는 건수가 189,057건이나 된다. 가정폭력 외에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데이트 폭력 역시 상담 건수가 각각 27,683건, 13,289건이다. 아직도 가부장제, 젠더 권력으로 인한 범죄가 무수히 일어나는 사회에서 여성을 법 안에, 사회 안에 배치하고자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여성과 남성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지 못하면 여성은 계속해서 배제되고 법은 강자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여성 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입장이 필요하다.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가정폭력을 가정폭력으로 인식할 수 있는 포지셔닝을 할 필요가 있다. 법을 제정할 때도, 법을 바탕으로 판결을 할 때도 성인지 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강원랜드 사건’과 같이 그 외의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